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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토리 Mar 23. 2021

깊은 나무 향을 좋아합니다.



인스타그램을 보다가 온라인으로 즐겨 찾던 (남의) 동네서점인 서점 리스본에서 서점의 오프라인 매장의 향을 개발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방문해서만 느낄 수 있는 그 향이 어떨지 무척 궁금했지만 아마도 가까운 시일 내에는 들러볼 수 없을 테니 상상을 조금 해보기로 한다.



리스본에서는 나무향기 꽃향기가 난다고 하고 포르투에서는 바다 냄새 연필 냄새가 난다고들 하셨죠.

서점 향기를 제품으로 만들기 위해 오래 준비해왔습니다....(중략)

출처 : @bookshoplisbon



나무향기와 꽃향기라면 어떤 향기일까? 오래된 고재에서 나는 나무향일까 아니면 옅은 컬러의 수종에서 맡을 수 있는 신선한 나무향일까.. 그럼 꽃은 또 어떤 꽃일까? 봄의 대표적인 향기로 기억되는 프리지어의 달큰하고도 풋풋한 향일까 혹은 라벤더의 익숙하고도 부드러운 향일까 아니면 장미처럼 진하고 깊은 향일까 그도 아니라면 라일락의 아련한 향이려나....?

아니면 서점 이름처럼 유럽의 어느 서점에서 맡을 수 있을 것 같은 상상 속의 어떤 향이려나..?


서점에 있는 책의 물성이 나무가  원재료라서 그런지 식물의 향기와 무척  어울리기 때문에 상상을 하다가 더욱더 궁금해져 버렸다. 물론 방문해서 직접 맡아보면  텐데, 온라인으로만 접하던 그곳의 신비로움을 나는 조금  남겨두기로 한다. 어쩐지 좋아하는 곳이니까 아껴두었다가 진짜 참을  없어지면   싶어지는 것이다. 나에게 이런 곳들이  군데 있는데, 그곳들은 진짜 좋아서 가지 않는 그런 곳이다. 마치 아련한 짝사랑 같은 거랄까? 진짜가 되기전의 설레임처럼.









아마도 브런치를 쓰는 많은 분들이 그러할 것 같은데 나도 책과 서점을 무척 좋아한다.

내가 좋아하는 서점 향의 이미지를 떠올려보았다. 가장 좋아하는 건 헌책방이나 도서관에 오래 보관된 책들에 쌓인 먼지가 섞인 종이의 냄새다. 오래된 건물 특유의 쿰쿰한 곰팡내 섞인 책과 오래된 나무가구가 또 한참을 다시 묵혀진 뒤 나는 숙성된 나무의 향기 같은 그런 것?


그렇다 보니 나는 이미 좋아하고 경험한 서점의 향이 있다.  

교보문고에서 출시한 시그니처 향인 'The Scent of Page'

서점에 방문할 때마다 이 향은 뭘까... 나무 냄새 같기도 풀냄새 같기도 한 이것은?!! 하며 궁금해했던 그 향기가 상품으로 나온 것이다. 유칼립투스와 편백나무의 향을 베이스로 했다고 하니, 풀냄새+나무 냄새로 완벽한 취향저격! 서점을 방문할 때마다 향에 익숙해지게 만든 뒤 그 향을 출시하다니, 무시무시한 마케팅이다. 의도한 대로 나는 이미 그 향에 매료되었기 때문에 얼마든지 나에게 상업적으로 접근해주세요.


서점 향 때문에 이런 일이 있었다. 교보문고 시그니처 향에 반해있던 어느 날, 나는 클라이언트와 미팅을 하려고 노트북을 꺼내던 중 가방에서 문제의 시그니처 향의 차량용 방향제 포장을 발견했다. 내용물이 없는 포장 껍데기만 말이다. 그런데 나는 그분도 서점을 좋아하신다고 했던 게 떠올랐던 나머지 그분에게 그 껍데기를 들이밀었다.


'대표님! 서점가는 거 좋아하신댔죠? 이거 향! 익숙하지 않으세요!? (킁킁)'


그 순간 그 대표님이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아 이거 교보 가면 나는 향이네요! 하고 응수해주셨는데, 미팅 후 혼자 돌아오며 생각하니 그제야 그분에게 한 내 행동이 얼마나 황당했는지 떠올라 매우 민망해졌다.

그래서 다음 미팅이 돌아오기 전 급히 교보문고 차량용 디퓨저를 두어 개 사두었고 늦지 않게 선물로 드렸다. 좋은 분이었기 때문에 거부감 없이 반갑게 받아주셨고, 게다가 그 향을 좋아하신다며 계속 구입하시며 차량에는 그 향만 쓰신다고 한다. 다행히 해피엔딩!





ⓒunsplash.com




어떤 여행에 대해 추억할 때에는 가장 먼저 눈으로 본 것, 그때 먹었던 음식 같은 것을 떠올린다. 하지만 나의 비루한 시각과 미각을 통한 기억은 종종 왜곡되거나 축약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그때 그 식당의 음식은 맛이 있었다 혹은 없었다 정도로.

그런데 향으로 기억되는 여행은 나의 생각보다 정말 늘 불현듯 갑자기 떠오르곤 한다. 갑자기 그 장소로 이동한 것처럼 말이다. 호텔에 처음 들어갔을 때 맡았던 좋은 향기라거나 지하철에서 맡았던 어떤 그곳 만의 냄새, 그 나라 혹은 장소 특유의 공기 내음 같은 것이 전혀 가보지 않았던 전혀 상관없는 어떤 낯선 곳에서 맡아지면(정말 타의에 의해 맡아지는 것처럼) 나는 순식간에 그 시공으로 이동해 버린다. 사실은 그 역시 기억의 왜곡이 없다고는 못하겠지만 내가 그러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냥 이동해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새로운 여행지에서 숙소에 들어섰을 때에 좋은 향기가 맡아지면 그 여행은 일단 시작이 꽤 좋았다고 기억이 되는 것이다. 여행뿐 아니라 사람 마다도 좋은 향기 나 체취가 있어서 어떤 날은 낯선 사람에게서 언젠가 어렸던 날에 좋아했던 남자를 떠올리게 하는 향을 맡아서 그리운 과거로 타임워프 하기도 하고.

휴우... 후각이 주는 자극의 예민함이란!


나무 향기에 대해선 진심인 나는 좋아하는 우드 계열의 향들을 찾아서 제품을 구입하게 되었다.

디퓨저, 향수, 핸드크림, 손소독제까지 어쩐지 거의 우드+머스크+스모키 계열의 중성적인 향 잔치가 되어버렸긴 합니다만...





아무튼 나는 서점 리스본의 향이 출시될 때까지 궁금증을 꾸욱~ 눌러 참으며 기다려보기로 한다.

나는 맛있는 건 마지막까지 아껴두었다 먹는 타입의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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