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바라기 샤워기 혹은 레인 샤워기
영화 <쇼생크탈출> 포스터에서 한 남자가 쏟아지는 비에 온 몸을 내맡기고 있다.
폭우, 맨몸, 탈출, 자유. 포스터가 떠올리게 하는 단어들이다.
일을 마치고 지친 밤, 해바라기 샤워기(왜 해바라기라는 이름이 붙었을까. 레인샤워기라고도 함)에 맨 몸을 맡기며 나도 '탈출'을 생각한다.
해바라기 샤워기를 쓰기 전에는 손으로 들고 쓰는 샤워기를 사용했다. 해바라기가 설치되어 있어도 핸드형 샤워기가 익숙했다. 핸드형 샤워기는 수압도 쎄서, 온 몸 구석구석, 발까지 내리맞는 그 시원함이 있었으니까.
핸드형 샤워기가 있을 때 어쩔 수 없지만, 해바라기가 같이 설치되어 있다면, 9:1의 비율로 해바라기 샤워기로 몸을 씻는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맨 몸으로, 머리부터 맞은 적이 없다.
우산으로 상체는 보호하고, 바지 가랑이만 조금 젖었다.
그런 날엔 뭔가 모르게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퇴근하며 지친 몸을 이끌고 방에 돌아오면,
관계와 일에 매달린 사회적 복장을 벗는다.
그리고, 욕실에 바로 들어가 레인 샤워기를 틀어 맨 몸에 비를 맞는다.
위에서 내리는 비를 머리로 맞으며 잠시 눈을 감는다.
시원한 해방감. 어떻게든 연결된 사회적 관계에서의 탈출.
폭우에 맨 몸을 내맡길 용기 없는 자는 레인샤워기를 통해 탈출감을 맛 본다.
레인샤워기는 어쩌면 지극히 현대화된 물건이지만,
사람이 비를 맨 몸으로 맞을 때 느끼는 오래된 해방감을 잠시나마 일깨우는 특별한 도구다.
레인샤워기를 만든 사람은 분명 쏟아지는 비에 온 몸을 맡긴 경험이 있지 않을까.
퇴근 후 욕실에서 비를 맞는 시간만큼은 <쇼생크탈출>만큼의 큰 희망을 떠올리는게
레인샤워기에 대한 예의다.
고된 마음은 비로 씻어내고, 그렇게 잠시나마 하루를 해방했다.
가끔은 비를 맞고 싶다.
버튼을 돌리면 언제든 맨 몸으로 비를 맞을 수 있다. 레인샤워기, 나의 묵은 감정을 일부러 해방하는 도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