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중년이다

중년의 나이

by 오로라

나는 중년이다.

몇 년 후면 환갑이다. 예전 같으면 잔치를 벌일 나이지만 이젠 어르신들이 많아 명함도 못 내민다.

65세부터 노년이라는데 아직은 더 젊게 살고 싶은 마음이 크다.


중년은 청년과 달리 무게감이 느껴진다.

몇 살부터 중년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보통은 40세부터 60세 정도라고 말한다. 청년기와 달리 신체적, 심리적, 사회적으로 많은 변화가 일어나는 시기다.


신체적 변화는 정말 마흔이 넘어가자 느낄 정도다. 지금은 안경을 써도 초점이 안 맞는다. 근거리와 원거리용 안경을 따로 장만했다. 특히, 운전할 때는 별도의 안경을 착용한다. 쉰 살이 넘자 조금만 움직여도 더 쉽게 피로하다. 예전처럼 장거리 운전으로 이동하는 것도 힘들어 휴게소에 자주 들려야 한다. 화장실도 더 자주간다. 가끔은 청력이 떨어졌는지 옆 사람의 말을 정확하게 못 알아듣기도 한다.


“엄마, 안 들려?”


하지만 그런 아들의 목소리는 또렷하게 들린다. 민망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얼굴이 혼자 빨개질 때가 있다. 종종 이마와 등에 식은땀이 난다.


갱년기 증상이다.


사전을 찾아보니 '인체가 성숙기에서 노년기로 접어드는 시기. 대개 마흔 살에서 쉰 살 사이에 신체 기능이 저하되는데, 여성의 경우 생식 기능이 없어지고 월경이 정지되며, 남성의 경우 성기능이 감퇴되는 현상이 나타난다.'라고 나온다.


운동보다 노동하는 시간이 많아도 좀처럼 체중은 감소하지 않고 기운만 빠진다. 이제 나를 포함한 친한 친구들 대부분은 생리가 중단된 지 몇 년씩 지났다.


"아이고, 그건 편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다. 대부분 신경 쓰면 잠을 못 자곤 했다는 경험을 나누었다. 나도 한동안 신경 쓸 일이 없는데 잠 못 드는 날이 있었다. 친구들과 만나서 웃고 떠들다 보면 우울했던 기분도 좋아진다.


"뭐 말하려고 했는데."


누군가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괜찮아. 나도 그래."


수다를 떨다가 하려는 말이 가끔 생각나지 않아서 멈추는 친구를 다 이해하는 모양이다.


‘어휴!’


늙어가는 게 분명하다.




은퇴를 앞둔 우리 시대 중년기를 '베이비붐 세대'라고도 부른다.


베이비붐 세대(Baby Boom Generation)란, 1950년부터 1953년 한국전쟁 이후에 태어난 사람들을 말한다. 1차는 1955년부터 1963년까지, 2차는 1964년부터 1974년생을 말한다.


폐허가 된 전쟁 이후 인구는 다시 증가했다.

내 형제와 사촌들도 그 무렵에 거의 태어났다. 초등학교때 한 가정에 대여섯 명 이상의 형제들이 기본이었다. 1960년생들은 대부분 공감할 것이다. 매년 100만 명이 넘는 아이들이 태어났다니 요즘 같은 저출생 시대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중년기 모습1.png


그러고 보니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 저학년 때 오전과 오후반으로 나눠 등교했던 기억이 난다. 과밀 학급임에도 학생들에게 수업을 제공하지 못한 탓이다. 훗날 인근 동네에 신설 학교가 생겨 졸업하기 전년도에 일부 친구들은 전학을 갔다. 당시 한 반에 약 60~70명 정도 배정한 것 같다.




그 시대 태어난 아이들이 지금 우리나라 기득권의 중심에 서 있다. 대학 진학률이 높지 않은 시대라 공부하면 서울과 수도권 대학에 입학했다. 물론 당시에도 학비가 없으면 아예 생각도 못했다.


국가 주도 산업화 시기여서 졸업 무렵이면 취업 정보를 보고 서너 개 기업 중 마음에 드는 곳을 선택해 취직도 가능했다.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경제 활동은 할 수 있었다. 실업계로 불리는 상업과 공업고등학교 출신도 대기업, 은행, 증권사에 당당히 입사하여 자리잡았고 실력만 있으면 임원에도 올랐다.




사회가 급성장한 탓에 가정 환경도 급변했다. 일하는 가족이 많아질수록 살림살이가 빠르게 좋아졌다. 우리 집도 어느 날부터 빨래의 물기만 제거하던 짤순이가 통통이 세탁기로 바뀌고, 커다란 흑백 텔레비전이 칼라 TV로 바뀌었다.


공중전화 앞에서 길게 줄을 서기 위해 기다리지 않아도 되는 날이 제일 좋았다. 버스탈 때 더 이상 토큰을 집어 넣지 않았다. 서서히 현금보다 카드를 써도 눈치보이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 기성세대로 확고하게 자리를 지키며 부와 명예, 권력을 높였다. 그들이 지금 우리나라의 중년들이다. 나도 그 중의 한 사람임이 틀림없다.





앞으로 해마다 은퇴를 앞둔 사람들이 많아진다. 꽃중년들이다. 이들은 학력과 문화자본을 갖추고 경제력까지 탄탄하다. 건강하고 활동적인 중장년을 일컬으며 ‘액티브 시니어(Active Senior)’라고 부른다. 소극적으로 노년을 기다리기 보다 말 그대로 ‘경제력을 바탕으로 문화 소비 생활에 적극적이며 활동적인 노인 세대’이다. 자기 계발에 투자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이런 중장년은 자유로운 해외여행을 선택할 수 있고, 자녀들을 데리고 외식 자리에서 먼저 지갑을 열 수 있다. 친구들 모임에서 임원 출신으로 은퇴한 누군가는 밥과 술값을 기분좋게 계산할 수 있을 정도로 우정애도 보여준다.


국민연금으로 노년기에 쓸 돈도 마련해두었다. 자가 부동산도 하나쯤은 있으며, 가기 싫다는 자식 빼고 대부분 대학 졸업까지 시킨 이들이 많다. 지금도 열성적으로 시민대학이나 취미활동을 찾아 배움의 끈을 놓지 않는다. 여전히 활발하게 움직이며 살아간다. 계속해서 부모 세대보다 더 활기찬 노년을 보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이런 중년과 다르게 힘들게 살아 온 이들 역시 동년배 중년이다. 대학은커녕 가정 형편상 중학교도 졸업하지 못했다. 농어촌이나 지방 소도시에서 태어나 서울로 무작정 상경해 공장 노동자가 된 이도 있다. 기술을 익혀 사업을 한 사람은 학력은 낮지만 사장 소리 듣고 건물주가 되기도 했다. 작은 여관 심부름꾼에서 모텔 사장이 된 사람도 있고, 정비 기술을 익혀 정비소 주인이 된 경우도 있다. 하지만 계속 일하지 않으면 여전히 생계를 걱정해야만 하는 이들 역시 우리 시대 중장년이다.




서로 다른 환경에 처하더라도 같은 속도로 중장년기를 지나고 있는 이들은 1980~90년대 공통의 문화를 공유하며 살았다. 적어도 1980년대 민주화의 현장에서 20대 젊은 날을 함께 보냈다.


누군가는 대학교정에서 '독재 타도'를 외쳤고, 또 다른 누군가는 '노동자의 인권'을 위해 공장 옥상에서 투쟁했다. 대학이든 공장이든 모두 탄압의 시간엔 뜨거운 종로 거리와 명동성당 앞에서 목숨을 내걸고 싸웠다. 서로를 위해서. 대학을 다닌 이들은 대학 신문을 만들어 독재를 알렸고, 노동자들은 노동 신문으로 부당한 착취에 맞섰다. 때로는 숨어야 했고, 때로는 외쳐야 했다. 그렇게 한 탓에 지금 우리 사회는 더 건강해졌다. 민주주의 헌법을 토대 위해 대통령 직선제를 이루어내며.



앞으로 이들은 다시 같은 시대 다른 모습으로 늙어갈 것이다. 어느 곳에서 서로에게 필요한 이야기를 외칠 줄 모르지만 건강하다면 또다시 활동할 것이라 믿는다. 작년 겨울, 젊은이들과 함께 누군가는 여의도 국회 앞에 있었고, 광화문 광장에서 외치기도 했다.


대한민국 격변의 소용돌이 속에서 국가의 발전을 위해 저마다 역할하며 살아왔다. 이들이 동시대를 같이 걸어 온 것처럼 다시 노년기까지 함께 할 것이다.





서로 다른 무대에서 펼쳐질 ‘마처 세대’의 새로운 인생을 따라가 보자.


백 세를 바라보는 연로하신 부모라도 당연히 부양하려고 애쓰는 이들의 생각은 유교적이다. 자녀에겐 부양받지 못하는 처음 세대로 취급받을 수 있다는 사실도 알지만 괜찮다고 한다. 손해보는 것 같지만 젊은 날처럼 가족을 위해 자기 앞가림을 할 것이다. 그 시절 열정으로 일어나면 어떤 환경에서든 살아낼 수 있는 이들의 삶이 궁금하다. 푸르른 솔잎을 자랑하는 소나무처럼 곧은 인생을 살아가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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