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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t yet Oct 09. 2024

어중간한 어느 지점.



"요즘 뭐가 재미있어요?"



이런 질문에는 말들이 입안에서 주춤한다. 재미있는 게 없다고 말하려다 또 재미있는 게 많은 것 같아서. 그렇다고 재미있다며 홀라당 꺼내버리면 재미없는 게 돼버릴까 봐 오물오물 거린다.


내게는 쉽게 꺼낼 수 없는 조심스러운 재미가 있나 보다.



그날은 엉뚱하게도 "할 수 있는 걸 못하는 재미가 있어" 라고 답했다. 그의 표정은 '그게 무슨 소리야?'였지만 크게 신경 쓰이진 않았다.


보통의 경우에는 대답하지 않고 ‘너는 요즘 어떤 게 재미있어?’라고 되묻게 된다. 답을 피해 도망치려는 게 아닌데, 그럼에도 내 것은 숨기고, 상대의 것으로 퉁치곤 했다.


그의 답은 "재미있는 게 없어요"였다. 늘 호기심 가득했던 그의 얼굴에 그날따라 파란 눈이 흠뻑 내리고 있었다.



너처럼 재밌게 사는 사람이 재미가 없다니까 이상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다행이다 싶었다.


모든 게 완벽한 건 슬픔으로 다가온다.


슬픔이 없는 세상엔 기쁨도 없다던데, 재미있는 게 없다니 오히려 빈틈이 있는 것 같아서. 혹 그 틈으로 기쁨도 슬픔도 자리 잡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안도감이 들었다.


재미없음 뒤에 너만 모르는 재미가 숨어있지 않을까.



그와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오며 나에게 슬그머니 물어본다. 


‘요즘 어떤 게 재미있어?’


무언가 길게 늘어놓다 지워 버린다. 나의 재미는 단정하게 꺼낼 수 없도록 구석구석 숨어 있나 보다.


어쩌면 구분되는 순간 소멸될 정도의 이름 없는 재미들인지도 모르겠다.


아니, 이렇게 답할 수도 있겠어.


'재미없다가도 틈틈이 재미있는데 그게 어떤 재미인지는 잘 모르겠는 거지. 재미가 없는 것도 재밌으니까, 뭘 못하는 것도 재미없게 재밌더라.'



종종 제정신이 아닌 나는 미지근하고 어중간한 어느 지점에 나만의 재미를 숨겨 놓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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