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하 Nov 17. 2024

그렇게 나는 용서가 그리움이 되는 순간을 마주했다

첫 번째 마후문



그가 걸어온다.


나는 그를 10년, 아니 20년이던가?

헤아릴 수는 없는 시절이 지나서야 마주쳤다.


내가 그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았던 것이 언제인가.

어린 시절이라 기억도 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를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늘 내가 그리워한 이와 너무나도 닮은 모습에,

그래서 저 멀리서 걸어오는 그를 

단번에 알아보았다.


고향 집으로 내려가 집 근처 바다를 돌고 있었다.


너무나 그리운 실루엣.


가슴이 두근거렸다. 

욕을 할까?

원망을 할까?

아니면 내가 누군지 아냐고 물어볼까?


멀리서 걸어오는 그가 가까이 다가오는 순간, 

마음이 두근거렸다.


터질 것 같은 눈물을 애써 참았다.


그리고 그는 나를 스쳐 지나갔다.

나는 그를 보고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는 나의 그리움이었고, 

또한 원수 같은 이였기 때문이다.


나는 학교를 마치면 종종 아버지가 입원해 계신 

병원으로 갔다.

지금도 사진처럼 흐릿하게 그 장면이 떠오른다.


병실의 창문으로 나와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창밖의 바다를 함께 바라보았다. 

너무나도 고요했다.


그 순간을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전후 사정을 알 수가 없는 일이 벌어졌다.

그들이 우리 집을 덮쳤다.


그들은 아버지의 형제자매였다.

아버지가 아프고 나서부터 돌변한 그들,


병원으로 찾아가 

아픈 아빠에게 막말을 쏟아내고, 

우리 집으로 찾아와 소란을 피웠다.


나는 그 광경을 직접 보지 못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집에는 울고 있는 엄마와 막내 삼촌뿐이었다.

막내 삼촌은 아버지의 이복동생이다.


삼촌은 그들과 함께 할 수 없었다.

이복 남매라는 이유로 늘 무시를 당했다.


어렸을 적부터 유난히 나를 이뻐했던 착하디 착한 

막내 삼촌만이 우리를 지켜주었고,

그 뒤로도 막내 삼촌 가족들하고만 왕래가 있었다.


아빠는 배를 하셨지만, 워낙 성실하셨던 탓에,

우리 집이 동네에서 가장 잘 살았다.


그들이 원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우리 집 재산이었을까?

그래서 엄마를 쫓아내고 다 가져가려고,

병원에 누워있는 아픈 아빠를 찾아가 

막말을 했던 것일까?


그리고 그들,

아버지의 누나. 바로 밑의 삼촌,

그들과 함께 우리 가족을 궁지에 내몰려고 했던 

아버지의 사촌들,,


그들을 마지막으로 본 것은 

아빠의 장례식에서였다.


그렇게 형제의 연은 끊어졌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수업이 많은 밤을 

복수하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 채워 보냈다.


조금 더 크면, 

조금 더 크면,,,

그렇게 세월은 흘러버렸다.


나의 증오의 마음도 서서히 바래져 갔다.


그가 걸어온다.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났음에도 

나는 그를 단번에 알아보았다.


목 끝까지 차오르는 눈물을 삼켰다.

그리움의 눈물이고 원망의 눈물이었다.


단 한 번,

꿈에서라도 보고 싶었던 나의 아버지와 그는 

너무나 똑 닮은 얼굴이었다.


멀리서 걸어오는 그에게서 아버지를 보았다.

단 한 번 간절히 보고 싶었던, 

나의 아버지의 나이 든 모습을 

그에게서 보았다.

그렇게 나의 증오의 마음은 사라지고, 

그리움만 남았다.


그 그리움에 나는 아무런 말도 내뱉을 수가 없었다.


그저 내 옆을 스쳐 지나가는 그를 보며 

부디 건강하기를 바라며 속으로 눈물을 삼켰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몇 년이 지났다.


나는 알게 되었다.

용서와 그리움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첫 번째 마후문 


" 용서는 그리움의 또 다른 이름이다."



나는 당신을 용서했으니,

당신의 형으로

때로는 당신의 아버지로 살아온 

나의 아버지에게 용서를 빌고,


그곳에서 

나의 아버지와 

부디 못다 했던 이야기를 나누며 

다시 우애 있는 모습으로 지내기를 바라봅니다.


나에게 당신을 용서할 수 있었던 그 시간,


당신은 그저 스쳐 지나갔던 그 바다에서,


우리의 

우연일지 필연일지 

모르는 그 시간에, 

나는 감사합니다.


당신 덕분에 

용서가 그리움의 또 다른 이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 마후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