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마후문
저의 막내 동생은 참 순해요.
한번 울면 고집이 세서
아주 오래오래 우는 것 말고는
자라면서 특별한 이슈도 없었습니다.
성질 있는 언니들 틈에서
자신의 목소리도 높이지 못하고,
그저 묵묵하게 자신이 할 일을 하며,
엄마를 도우며 자란 아이였어요.
공부도 곧잘 했고요.
정말 말썽 한 번 피운 적 없고,
불평불만 한번 내뱉지 않는 착한 동생이에요.
동생이 대학을 들어가고 어느 날,
엄마에게 말합니다.
돈이 필요하다고...
돈을 빌려달라고 엄마에게 말하더군요.
무슨 일인지 저희는 놀랐습니다.
몇백의 돈이 왜 필요한지...
자신의 목소리를 가족에게 한 번도 높이지 않았던
동생이 말합니다.
여행을 떠날 거라고.
그런데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이 부족하다며,
여행 다녀와서 다시 갚을 테니
엄마에게 몇백을 빌려달라 하고는,
그렇게 여행을 떠났습니다.
엄마는 안돼라고 말하지도 않았고,
갓 20살 넘은 여자아이가
혼자서 한 달이 넘는 기간 동안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떠나는 것에 대해서
위험하니 가지말하는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건강하게 잘 다녀와서 돈 갚아라!"
이 한마디만 하셨죠.
그리고 사실 엄마와 저희는 뒤에서
엄청 걱정했습니다.
솔직히 저도
왜 동생이 갑자기 그렇게
여행을 떠났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저의 추측은
동생이 건축학과를 다니고 있어서,
가우디의 건축물은 꼭 보고 싶다 했기에
그렇게 유럽을 돌며
오래된 건축물을 보고 싶어서 그러나...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도 그것은
동생 나름의 돌파구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오랫동안 자신이 안고 살았던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고 싶은 마음..
동생은 6살에 아버지를 보냈기에
아버지 얼굴을 모릅니다.
시장에서 장사하던 엄마를
그 누구보다 열심히 도우며,
할 말도 안 하고 살았어요.
아니 살아냈다는 표현이 맞겠습니다.
그 오랜 시간 동안
6살부터 차곡차곡 마음속에 묻어놓았던
응어리가 얼마나 컸을까요?
지금 생각하면 그 당시의 동생의 용기가
너무 기특합니다.
스스로 찾아내려는 용기.
그리고 자신의 여린 마음을 뛰어넘으려는 의지.
그렇게 동생은 용기와 의지를 더해서
자신을 찾는 여행을 무사히 잘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물론 약속도 지켜 열심히 아르바이트해서 엄마에게
돈도 갚았고요.
동생이 항암을 위해 요양원에 있을 때,
그때의 이야기를 종종 했습니다.
너무 좋은 시절이었다고.
그리고 지금도 간혹 힘든 순간에 이야기합니다.
그때 여행에서의 추억을...
그리고 젊은 자신의 용기와 의지를...
그 뒤로 동생은
그 누구보다도 최선의 삶을 살았고,
지금도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루하루를 허투루 살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어서,
솔직히 너무 안쓰럽기도 합니다.
그런 동생은 아마도
자신을 누구보다 잘 알았을 것 같아요.
그때가 아니면 자신을 돌아볼 그 여행을 다녀올
시간이 없을 거라는 것을 말이에요.
아니, 시간보다는 자신의 용기와 의지.
쉽게 불쑥 나오지 않는 그 용기와 의지 말이에요.
아마,
다음에 가지...라고 했다면
결코 떠나지 못했을 거예요.
저는 자녀가 한 명입니다.
그래서 미안한 마음이 들 때도 있습니다.
혹여나 성장하면서
자신의 마음 나눌 형제가 없어서 외롭지 않을까.
물론 형제가 있다고 외롭지 않은 것은 아니며,
모든 형제가 서로 관계가 좋은 것도 아니며,
결국 형제가 여럿이어도
부모 옆에서 부모 마음 살피는 이는
특정한 한 명이라는 점도 알 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혼자보다는
홀로 선 나뭇가지보다는
얽히고설킨 가지가
덜 외로운 경우를 보아왔습니다.
사실 미안함보다는 더 큰 걱정이 있습니다.
저희에게 아이는 한 명이니,
오롯이 혼자서
자식의 역할을 다하려는 마음으로
자신이 가야만 하는 길을
걸어가지 못할까 봐 두렵기도 합니다.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어느 순간 그 아이에게 벽이 되지는 않을까.
훗날
차마 나이 든 부모를 두고
가야 할 길을 가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멈추지도 못하고 방황하지는 않을까.
그런 아이에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아이야,
너는 용기와 의지의 마음을 아끼지 말고
살아가고, 걸어가라."
아이야, 너는 그랬으면 좋겠다.
"너는 너의 인생을 살아가라."
살아내는 것이 아니라,
부디 살아갔으면 좋겠다.
우리는 너를 낳고 기르면서
충분히 감사했고 행복했다.
그러니 때가 오면
뒤도 돌아보지 말고 너의 길을 가렴.
우리가 진정 바라는 것은 그것이란다.
행여나 살면서 부모라는 이름으로
너의 용기와 의지를
꺾으려 했던 순간은 없었는지
엄마 스스로에게 물으면서,
엄마는 그렇게 늘 너와 함께 할 테니,
걱정 말고,
단 한치의 미안한 마음도 품지 말고,
하나뿐인 너의 인생,
부디 고맙고 소중히 여기며
웃으며 당당하게 길을 나서거라.
그렇게,
용기와 의지의 마음을 아끼지 말고
살아가고,
걸어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