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 마후문
"언어가 끝나는 곳에서 음악은 시작된다."
E.T.A. Hoffmann
쌀쌀하고 깊은 계절이라
저에게 특별한 음악이 떠올랐습니다.
고3, 어느 여름밤이었다.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밤 10시가 넘어서 집에 왔다.
책가방을 던져놓고, 컴퓨터를 켰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음악의 CD를 넣었다.
노래를 들으면서 어두운 창밖을 바라보며,
그렇게 나는 그 노래와 함께 꿈꾸었다.
누구나 시절의 곡이 있다.
힘든 고3 시절 나에게 위안이 되어준 곡은
"somewhere over the rainbow"였다.
"somewhere over the rainbow"는
영화 오즈의 마법사의 주디 갈란드가 부른 곡 이외에도 하와이 원주민 출신 뮤지션인 이즈라엘 카마카위올레의 버전, 코니 탤벗이 꼬마 숙녀일 때 불렀던 버전까지 다양하게 커버되었다.
위의 버전도 물론 좋지만,
그 시절 나에게 꿈을 꾸게 해 준 곡은
"Impellitteri"의 전자 기타 연주곡이었다.
크리스 임펠리테리의 연주는 그야말로 환상이었다.
이 곡을 들으며 상상했다.
19살을 넘긴 나의 꿈과 20대를 상상하며
그렇게 그 시절을 보냈다.
Somewhere over the rainbow way up high,
저기 저 높은 무지개 너머 어딘가에,
···
And the dreams that you dare to dream really do come true.
당신이 꿈꾸는 일들이 이루어지는 곳이 있어요.
대학생 새내기 시절. 친구의 친구를 알게 되었다.
어느 날 그 아이가
내가 아르바이트하던 카페로 찾아왔다.
그러고는 수줍게 CD 한 장을 건네고는 돌아갔다.
그 친구 덕분에 나는 또 하나의 시절의 곡이 생겼다.
Cleo Laine의 아래 앨범에 수록된
"How, Where, When"이다.
파헬벨의 캐논 D 장조를 재즈풍으로 편곡하여
Cleo Laine의 목소리로 재탄생한 곡이다.
깊고 풍부한 그녀만의 독특한 음색이
나의 감정을 깊게 파고들었다.
이 곡은 나와 20대 시절의
나와의 대화이다.
어떻게, 어디서, 언제
나는 다시 나의 20살을 마주할까?
How, Where, When
···
Oh, how, where, when
we will touch again?
P.S. 그 아이와 썸은 없었다.
일방적으로 그 아이가 나를 좋아한 것이라.^^::
하지만 고맙다. 덕분에 이렇게 아름다운 곡을
마음에 품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어딘가에서 마음 따뜻한 이와 함께 누군가의 남편으로 아버지로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기를 바라본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는 서울로 올라왔다.
그 시절 알게 된 지금의 내편.
내편 덕분에 나의 20대의 서울에서의 생활이
너무도 따스했다.
그렇게 그 따스한 마음을 담은 또 하나의 시절의 곡이 나에게 왔다.
Steve Barakatt의 "Rainbow Bridge"
아름다운 피아노 연주곡.
처음 나와 손을 잡은 날,
감동의 눈물을 흘렸던 내편.
새해 1월 1일,
누구보다 눈부신 한 해를 보내라며
나에게 선물해 준 다이어리와 꽃 상자.
화이트데이에
이쁘게 사탕을 장식해서 선물했던 내편.
우리가 처음 만난 날부터 해서 결혼하고서도 3년이 넘도록 함께 한 날을 헤아리던 내편.
그렇게 나는 시절의 곡을 들으며 회상해 본다.
누구보다 눈부셨던 나의 20대를 기억하며.
누구에게나 아름다웠던 시절의 곡이 있다.
그렇게 언어가 끝나는 곳에서
음악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