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평범한 하루에도 이야기는 있다.
하루를 시작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알람 소리에 깜짝 놀라 눈을 뜨고, 정신없이 외출 준비를 하며 아침을 시작한다. 또 어떤 사람은 창가에 앉아 조용히 커튼을 젖히고, 따뜻한 음료 한 잔으로 아침을 천천히 만든다. 예전의 나는 늘 전자에 가까웠다. 조직에 속해 있을 땐, 눈을 뜨자마자 쫓기듯 움직이고, 출근길엔 하루의 일정들로 복잡했다. 그런데 퇴직 후, 아침은 다르다.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시작을 한다.
그중에서도 여전히 나를 붙잡아주는 건, 커피 한 잔이다. 예전엔 사무실 출근을 하자마자, 지금은 주방 한편에서, 커피는 늘 나의 하루를 여는 신호가 되어준다. 잠에서 막 깬 몸에 활력을 주기 위해 찬물 한 컵을 마신다. 그리고 블랙커피 한 봉지를 연다. 얼음을 대여섯 개 텀블러에 떨어뜨리고, 스푼으로 천천히 커피를 녹여낸다. 코끝에 밀려드는 커피 향, 텀블러 벽을 타고 돌며 만들어내는 소리가 내 귀에 슬며시 들어온다. 하지만 그 소리는 고요하다. 그 어떤 소리보다 잔잔하고, 마음을 깨운다. 그렇게 하루를 준비한다. 오늘이라는 새로운 페이지를 조심스럽게 열어간다.
거제도로 향해야 하는 날이었다. 하루분의 에너지를 고요한 커피에 담는다. 강의 준비를 위해 노트북을 열며 차분히 시작한다. 이 날은 코칭을 진행하는 시간도 함께 있었다. 그 시간에 나라는 사람을 만난다. 상대의 말에 귀 기울이며, 그 안에 숨은 감정과 진심을 듣는다. 코칭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지만 매번 예상하지 못한 울림을 발견한다. 고객의 말을 들으며 나의 역할을 정돈한다. 나는 코치라는 이름을 가진 것이 아니라 있는 존재로 보는 사람이다. 지금 고객은 어떤 모습으로 서있는지를 보고, 나 자신은 어떤 모습인지를 바라본다.
코칭을 마치고, 거제도를 향해 차를 몰았다. 꽤 먼 거리지만 쉬지 않고 달렸다. 피곤할 법도 한데, 고속도로에 오르자 맑아지는 기분이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차창 밖으로 스쳐가는 봄빛의 풍경, 멀어지는 도시의 소음들이 나의 눈과 귀를 통해 들어온다. 도착할 즈음 창문 너머로 타이어가 과열된 냄새가 들어오며 아침에 커피를 젓던 모습이 떠올랐다. 여전히 나를 감싸고 있는 것을 느꼈다.
우리는 하루를 정신없이 살아내고 나서야, 비로소 ‘시작’이 얼마나 중요했는지를 깨닫는다. 하루가 건물의 완성이라면 아침은 기초공사이다. 처음의 감정이 튼튼하게 만들어지면, 웬만한 흔들림에도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시작은 커피 한 잔이었다. 그건 고요함, 안정감, 과정의 준비, 그리고 다짐이었다. 커피 한 잔의 여운을 품고 길을 달리고, 사람을 만났고, 생각을 나눴고, 그것으로 글을 쓰고 있다. 하루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는 종종 잊지만, 그 시작은 하루 전체를 만들어 간다.
"당신은 오늘, 어떤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나요? 그 시작은 지금, 당신에게 어떤 여운을 남기고 있나요?"
따뜻한 커피 한 잔, 창밖의 햇살, 조용한 차 안을 울리던 음악 한 곡. 그 작은 순간들이 오늘의 당신을 어떻게 이끌고 있는지를 살피는 것은 어떤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