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란 무엇일까. 속내를 나누고 서로를 친밀하게 아는 사람, 아무 말이 없어도, 오랜 시간 떨어져 있어도 그 존재만으로 든든한 사람 아닐까. 친구는 서로 내밀한 자아의 소망과 흥망성쇠를 드러내 보이고, 그것을 받아주는 이다. 서로의 성장을 도우며 자아실현을 가능하게 하는 관계. 미겸 언니와의 만남은 그런 친구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했다.
14시간의 시차를 두고 카톡이 왔다. “고마워. 나 뉴욕에 돌아왔어. 너와의 만남이 참 좋았고, 가방 고를 때 함께해 줘서 고마웠고, 사진도 예쁘게 찍어 줘서 정말 고마웠어. 다시 만날 날 벌써 기대된다. 네 얼굴이 참 행복해 보이더라.” 뉴욕에 사는 선배 미겸 언니가 일주일 일정으로 다녀가셨다. 그 만남을 두 달 전부터 기대하고 기다렸다. 한국에 도착했다는 전화를 받자 가슴이 뛸 정도였다. 우리는 오래전 비행기 안에서 우연히 만났다. 둘 다 서울에 방문 중이었다. 긴 비행시간, 처음엔 말이 없었지만 차츰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같은 여고와 대학교 출신이라는 사실이 인연이 되었다. 언니는 14년 선배였다. 공항에서 스쳐 갈 수도 있었던 만남은 서울에서 다시 이어졌고, 얼마 후엔 뉴욕에서도 만났다. 자주는 보지 못했지만 만날 때마다 이야기는 끝없이 이어졌고 신뢰와 애정이 점점 깊어졌다. 우정이란 자주 만나는 데서만 생기는 게 아니다. 시간이 흘러도 이야기가 술술 이어지고 서로의 존재가 마음속에 남아 있는 관계, 그런 우정이야말로 진짜다. 미겸 언니와의 만남은 드물었지만 늘 활력이 되었고, 내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다. 그 만남이 친구란 무엇인지 다시 묻게 했다.
부랴부랴 약속 장소로 갔다. 찾기 쉽게 스타벅스로 정했는데, 언니는 입구 가까운 자리에 앉아 있었다. 짙은 회색 모자를 멋스럽게 쓴, 거의 변하지 않은 모습이 반가웠다. 처음 만났을 때도 언니는 빨간 가죽 재킷에 모자를 썼었다. 점심은 강남역 근처 한정식집에서 먹었다. 다채로운 반찬에 언니는 “이게 다 웬 반찬이냐!”라며 감탄했다. 배고팠던 우리는 불고기, 주꾸미볶음, 잡채, 전, 김치를 맛있게 먹었다. 외국인들이 한국 식당의 반찬 수에 놀란다고 말하며 둘 다 웃었다. 그날도 밀린 이야기들을 나눴다. 서로의 근황, 요즘 읽은 책, 건강 이야기, 뉴욕 이야기, 서울 이야기. 떠들고 웃고, 공감하고 끄덕이며 시간을 보냈다. 나는 언니의 모습을 예쁘게 담고 싶어 애써 사진을 찍었다.
언니는 여러 일정을 소화해야 해서 오래 함께 있지는 못했다. 그런데 가방을 사야 한다고 했다. 나는 핸드백인 줄 알았는데, 여행용 소형 캐리어였다. 서울에서 산 물건들을 넣을 짐가방이 필요했다. 고속버스터미널이나 남대문에 가면 많겠지만 우리는 강남역 근처에서 해결하기로 했다. 지하상가를 헤매며 의류, 신발, 액세서리 가게 틈에서 어렵게 가방 가게를 찾았다. 검정 캐리어 앞에서 망설이다 진청색 단단한 캐리어를 보고 언니는 바로 마음에 든다며 기뻐했다. 이리저리 돌려보며 영화배우처럼 자세를 잡기도 했다. 상점 주인은 언니의 공손한 말씨에 선뜻 가격을 깎아주었다. 언니는 새 캐리어를 끌며 씩씩하게 걸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함께 가방을 고른 일은 작은 모험 같았다. 웃으며 돌아다니고 결국 마음에 드는 것을 골랐을 때 우리 사이엔 또 하나의 추억이 쌓였다. 그렇게 우리는 대륙을 사이에 둔 꿈같은 한나절의 만남을 뒤로했다.
함석헌 선생은 <그 사람을 가졌는가>에서 친구는 존재만으로도 삶을 지탱해 주는 이라고 말한다. 온 세상이 나를 버려도 ‘저 사람만은’이라고 믿을 수 있는 사람. 그런 친구가 있다면,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함께 웃고, 놀고, 추억을 만드는 친구들. 꼭 위대한 희생을 나누지 않아도, 그저 같이 있는 것만으로 서로를 지지할 수 있다. 친구는 기쁠 때 함께 기뻐해 주는 사람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친구는 같이 ‘놀아주는’ 사람이다.
다섯 살 때 조카 웅희는 “친구는 같이 놀아주는 거지!” 하며 딱지치기를 하자고 졸랐었다. 요즘엔 함께 놀 수 있는 친구들이 많아져서 새삼 고맙다. 아직 예수님처럼 친구를 위해 목숨을 바치거나, 함석헌 선생님이 말한 “꺼져가는 배 위에서 마지막 구명대를 서로 사양하는” 우정의 경지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그래도 지금 내 곁의 친구들과 잘 놀 수 있음에 마음이 든든하다. 놀이는 단순한 유희가 아니라, 존재를 나누는 방식이니까. 인간은 호모 루덴스, 놀이하는 동물이니까. 삶을 지지해 주는 친구, 미 겸 언니와 다시 만나 또 한 번 웃을 날을 기다리고 있다.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글은 "환한 날, 제자의 결혼식에 갔다"입니다. 다음 글에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