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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한 날, 제자 J의 결혼식에 갔다

by 작가서당


한 제자의 결혼식에서 삶의 시간과 관계를 다시 떠올렸다. 스승의 마음은 조용히 환하게 웃는다.


제자 J가 결혼을 했다. J는 “좋아하는 분만 모신다”며 정중히 청했고 나는 기쁜 마음으로 참석했다. 아름다운 결혼식이었다. 라움 야외 정원에서 2025년 4월 26일 토요일 오전 11시 30분부터 결혼식이 진행되었는데 날씨는 맑고 햇살은 밝게 빛났다. 뜨거운 햇볕을 막기 위해 하양 양산이 준비돼 있었다. 하얀 양복의 신랑이 2층 발코니 문을 열고 나와 계단을 내려 왔다. 떨린다던 모습은 어디 가고, 환한 웃음을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곧이어 눈부신 드레스를 입은 신부가 같은 문을 열고 나와 나선형의 계단을 내려오며 신랑을 만났다. 신부는 화사하고 아름다웠다. 햇살보다 눈부신 신부와, 담담히 미소짓는 신랑, 이 결혼식의 모든 빛은 두 사람에게로 모였다. 신랑은 의젓하고 신부는 사랑스러웠다. 이제 세상에 지금까지 가꾸어 온 사랑을 선포하고 잘 살아갈 일만 남았다. 이들은 만난 이후 1년여를 사귀었다고 한다.


결혼은 두 사람이 만들어가는 새로운 공동체의 탄생이다. 이 새 공동체와 그 구성원인 두 사람에게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축하와 축복을 보냈다. 신부의 여동생과 친구들이 경쾌한 음악으로 축하를 했다. 신부는 나를 만나자 상냥하게 “말씀 많이 들었어요. 꼭 같이 찾아뵐게요.”라며 인사했다. J를 축하하러 모인 제자들과 다 함께 기념사진도 찍고 축하했다. 가정을 이룬 제자들을 결혼식장에서 오랜만에 만나게 된 것도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푸르른 청춘 때 만난 제자들이 이제 자신만의 자리에서 책임을 다하며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학교 다닐 때 J를 포함한 열 명 정도의 학생들이 친한 그룹을 이루고 있었는데 이들을 거의 다 만났다.


J는 수업 중엔 조용했지만 가끔 던지는 질문이 날카로워 인상 깊었다. 그는 할머니께서 돌아가셨을 때 내가 따뜻하게 해 주었다고 말했다. J는 모바일 청첩장을 보냈지만 직접 청첩장을 전달해 주고 싶어 했다. 결혼 준비로 바쁠 테니 그럴 것까지 없다고 했으나 뵙고 싶어서 반드시 내게 먼저 인사드리고 싶다는 것이었다. 나는 감동했다. 제자의 연락은 항상 기쁘다. 제자가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잊지 않고 연락해 오는 것만큼 벅찬 일은 없다. 오래 연락 못 드려서 죄송하다고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새로운 환경과 상황에 적응하며 사느라고 바쁜 것임을 다 안다. J를 만나서 좋은 이야기를 들었다. 지금 우리나라 나이 38세인 J 자신은 사랑할 만한 사람을 못 만나고 있어서 결혼하지 못하는 줄 알았단다. 그런데 지금의 신부를 만나고 결혼 결심을 할 수 있을 만한 사람이라고 확신이 들었다니 참 좋은 이야기이다.


J와 오랜만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대학 시절엔 좀 빈둥거렸어요.”라고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지금 그는 직장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었고, 앞으로의 인생에 대한 계획도 구체적으로 갖고 있었다. 나는 그의 말속에서 그동안의 시간이 전혀 헛되지 않았음을 느꼈다. ‘빈둥거렸다고’ 느껴지던 시절은 어쩌면 청춘의 성장통이자 암중모색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겉으로 드러나진 않았지만, 안에서는 묵묵히 차곡차곡 무엇인가를 품고 있었을 것이다.


그날 저녁 라보나 쿠치나라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식사했다. J와 함께 또 다른 제자인 S도 인사를 드리겠다며 나왔다. J와 S는 1년 차이의 선후배 사이이다. 유쾌한 대화 속에 직장 생활 이야기, 신혼 생활 이야기, 앞으로의 계획을 나누었다. 신혼여행 이야기가 나왔다. S는 2주 동안 이탈리아의 시골 마을을 찾아 둘러보는 신혼여행을 했다. J는 신부는 자연을, 자기는 전시나 예술 같은 문화를 선호하는데 이번에는 신부 쪽 취향에 좀 더 맞추어 하와이로 신혼여행을 갈 예정이었다. 살아가면서 같이 취미도 나누고 다양한 경험을 할 참이었다.

제자들과의 식사 자리 분위기는 따뜻하고 생기 있었다. 질문이 이어지고, 웃음이 터졌고, 서로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우리는 말보다 표정에서 더 많은 것을 읽을 수 있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의 시간도 조용히 되짚어 보게 되었다. 제자들의 청춘의 때에 만난 것이 축복이라 여겼고 한 번의 만남이나 가르침이라도 소중하다고 생각했다. 내 기억 속에 여전히 선명한 청춘들이 이제는 자기 삶과 누군가를 책임지는 자리에 서 있었다. 이제는 가르치기보다 조용히 응원할 시간이다. 그 거리는 서운하다기보다 오히려 감사하게 느껴졌다. 스승은 늘 언제나 제자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그 뒷모습에 담긴 담대함과 따뜻함을 믿는다. 그리고 인생의 다음 장으로 가는 그들을 바라보며 박수와 응원을 보낸다. 언젠가 다시 만나더라도 지금, 이 순간은 다시 오지 않을 시간임을 알기에 스승의 마음엔 조용한 환희와 묵직한 여운이 함께 남는다.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글은 7/15(화)에 발행되는 동화 <이불 요정> 입니다. 다음 글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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