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영국 문학을 빛낸 브론테 자매는 시골 목사의 딸로서 서로를 의지하며 『제인 에어』와 『폭풍의 언덕』 같은 걸작을 남겼다. 19세기 미국 소설 『작은 아씨들』 속 네 자매도 서로의 삶과 개성을 지지한다. 이처럼 ‘자매’는 현실과 문학을 아우르며 친밀함과 연대를 상징하고, 학교나 도시 이름에도 자주 쓰인다. 나는 지금 나의 언니를 생각하고 있다. 문학 속 자매들처럼 우리는 늘 가까이 있었지만 그렇기에 더 몰랐는지도 모른다. ‘언니’라는 이름 아래 나는 오랫동안 한 사람을 가려 보지 못했다. 내게는 두 살 터울의 언니가 있다. 어머니는 우리에게 똑같이 머리를 쫑쫑 땋아 주시고, 마치 쌍둥이처럼 같은 옷을 입히셨다. 내가 태어나자 두 살 터울의 오빠, 언니, 나 셋을 돌보는 일이 벅차셨던 어머니는 언니를 잠시 외할머니댁에 맡기셨다고 한다.
언니는 늘 공부를 열심히 했다. 그래서인지, 초등학교 시절 함께 신나게 놀았던 기억은 많지 않다. 언니가 늦게까지 과외 공부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어머니는 늘 계란 프라이와 따뜻한 우유를 따로 챙겨 주셨다. 조금 부럽기도 했지만 그래도 ‘언니니까’라며 나 자신을 스스로 달랬다. 열심히 공부한 언니는 다니던 초등학교에서 딱 두 명만 입학한 명문 여중에 들어갔다. 기뻐하신 부모님은 어렵사리 자줏빛 호루겔 피아노를 언니에게 사주셨고, 덕분에 우리는 동네에서 드물게 피아노 있는 집이 되었다. 우리는 자라면서 같은 방을 쓰며 책상을 딱 붙여놓고 지냈다. 언니가 하는 일은 뭐든 좋아 보였다. 같은 여고, 같은 대학교에 다녔지만 언니는 언니대로 나는 나대로 바빴다. 총명하고 수학을 잘하는 언니는 대학 시절 수학과 과학 학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철두철미하고 책임감이 강한 언니는 과외 준비와 강의로 매일 바쁘게 움직였다.
어느 순간 나는 깨달았다. 나는 언니를 한 사람으로서 바라보기보다 ‘나의 언니’라는 역할 안에 가두어 두고 있었다. 마치 오랫동안 어머니를 ‘나의 어머니’라는 역할 속에서만 보았던 것처럼 말이다. 어쩌면 우리는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이름을 가진 하나의 인격체로보다 먼저 ‘역할’로 부르며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언니 이름에 ‘미(美)’ 자가 들어 있는데도 나는 한 번도 언니를 ‘아름답다’는 기준으로 바라본 적이 없었다. 언니는 언제나 그저 ‘언니’ 일뿐이었다. 그러다 보니, 언니의 피곤한 얼굴을 '성실한 자세'로만 이해했고, 말없이 앉아 있는 뒷모습은 왠지 무게 있게 느껴졌다. 나보다 두 살 많은 한 사람의 외로움이나 두려움은 한 번도 상상하지 못했다. 나는 ‘언니니까’라는 말로 내 감정을 눌렀지만, 그 말은 때로 ‘언니도 사람이야’라는 인식을 막는 울타리였다. 그런데 나이 들어가며 요즘 문득문득 언니가 내적으로도 외적으로도 참 기품 있고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서로 친하고 서로를 위하기도 했지만, 어떤 면에서는 나는 언니에게 털털하게 속내를 드러내지 못했다. 우리는 대화를 시작하는 방식에서도 어긋나곤 했다. 언니는 내가 먼저 말을 꺼내기를 바랐고, 나는 언니가 내 형편을 먼저 물어봐 주기를 바랐나 보다. 언니가 언제나 바쁘고 모든 일을 완벽히 해내는 사람으로 보였기 때문에 내 부족함이나 어려움을 이야기하기가 어려웠던 것인지도 모른다. 물론 지금은 다르다. 살아가는 과정에서 서로 열렸고, 둘도 없는 지지자가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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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5월, 나는 이사를 했다. 이사한 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언니가 형제 집들이를 하자고 했다. 내가 고른 집을 언니가 정말 좋아해 주니 나도 기쁘고 안심이 되었다. 언니는 A4용지 한 페이지 분량의 이사 축복 기도문을 정성스럽게 써서 들고 왔다. 온 마음을 다해 쓴 글임이 단번에 느껴졌다. 언니는 내게 ‘여유’와 ‘쉼’의 은혜가 함께하기를 기도해 주었다. 또한 행복한 삶을 살고, 그 기쁨을 이웃과도 나누는 사람이 되기를 축원하였다. 좋았다. 그런데 그다음 문장이 마음 깊은 곳을 울렸다. 언니는 나를 위해 ‘삶의 모범이 되고 아름다운 신앙의 본이 되기를’ 축원했다. “삶의 모범이 되기를”…
그 말이 내 안에 오래 머물렀다. 언니의 글은 내 마음을 깊이 울리기도 했고, 불편하게 하기도 했다. 나는 그런 삶을 선택한 적이 없는데, 언니는 내가 그렇게 살아주기를 바라는 걸까. 아니면, 이미 그렇게 살아왔다고 믿는 걸까. ‘모범’이라는 단어는 내가 가장 멀리하고 싶은 단어였다 나는 내 삶과 신앙이 모범이 되고 누군가의 본보기가 되기를 바라고 살아온 적이 없었다. 그런 삶은 늘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내게 신앙은 무엇보다도 하나님과 나 사이의 관계였다. 그런데 언니의 축복은 하나님과 나의 관계는 결국 이웃과의 관계 속에서 드러난다는 사실, 좋은 믿음은 저절로 본이 된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주었다. 사도 바울도 사도행전 26장 29절에서 “오늘 제 말을 듣고 있는 모든 분이 이 쇠사슬을 제외하고는 저처럼 되기를 기도합니다”라고 말하며 자신을 본으로 삼았다.
언니의 삶도 누구나 그렇듯 아픔과 슬픔, 그리고 힘든 순간들을 품고 있을 것이다. 실제로 지금 언니는 가정의 우환으로 그런 회오리바람 속에 놓여 있기도 하다. 언니는 순전하고 돈독한 신앙심을 지녔다. 나는 그 신앙의 힘으로 언니가 삶의 어려움을 해석하고, 기다리며 이겨낼 수 있으리라 믿는다. 최근 내가 블로그를 시작한 걸 알게 된 언니는 내 글을 읽고 정성스레 답글을 남겼다. “생각이, 정서가, 삶이 묻어 나오길” 축원하며, “생명을, 남을, 그리고 특히 자신을 살리는 힘이 될 거라 믿는다.” 남도, 나도 살리는 글이라니! 부디 그렇게 되기를. 이제는 언니의 말 한마디, 글 한 줄도 내 글의 일부가 되는 듯하다. 아름다운 나의 언니에게 감탄과 찬사, 감사와 사랑을 보낸다. 오래도록 ‘언니’로만 불러온 언니의 이름을, 이제야 조심스럽게 되뇌어 본다. 그 이름 안에 내가 보지 못한 시간이 얼마나 많았을까. 우리에게는 지금도 너무 가까워서 잘 보이지 않는 얼굴이 있다. 어쩌면 관계란 늘 그렇게 뒤늦게 보이기 시작하는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