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보다 아름다워

한장여행그램 010. From Melacca, Malaysia

by 키만소리


한장여행그램 010. 꽃보다 아름다워


꽃다운 청춘 어느새 다 사라지고

거울 속엔 세월을 잡아먹고 늙어버린

엄마라는 사람만 남았네

딸이라는 새로운 꽃을 피워내느라

자신의 꽃이 지는지도 몰랐네

볼품없이 고개 숙인 꽃이지만

내 눈엔 우리 엄마가 꽃보다 아름다워라

내 눈엔 그 어떤 꽃보다 아름다워라.



한장여행의 열 번째의 글을 쓴다. 지금까지 써왔던 글들을 쭉 읽어보니 후회와 반성 그리고 미련을 가득 담은 글이 주를 이루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추웠던 혹독한 겨울의 날씨 탓이었으려나 아니면 조금 딥한 우울한 내 감성 때문이었을까. 아무튼 오늘의 글은 따뜻해진 날씨에 맞춰 화사하고 아름답고 예쁜 글을 써보려고 한다.


따뜻한 봄날처럼 내 안의 예쁜 꽃을 피워준 엄마에 관한 글을 짧게 쓰기로 했다. 그래서 오늘의 주제는 제목도 내용도 반짝반짝 예쁜 '꽃보다 아름다워'다.




사실 우리 엄마는 꽃처럼 예쁜 얼굴을 가지지 못했다. 전형적인 한국 아줌마들의 그런 투박함이 묻어있는 얼굴에 가깝다. 나는 가끔은 엄하고 때로는 야박한 그런 표정도 짓는 엄마의 그런 얼굴이 싫었다.



"왜 우리 엄마는 소연이네 엄마처럼 예쁘지 않을까?"



초등학생 시절 자주 놀러 가던 소연이네 엄마를 기억한다. 여리여리한 골격의 따뜻한 말씨를 품은 소연이네 엄마는 늘 생그럽게 웃는 미소로 나에게 보리차를 주셨다. 소연이도 엄마를 닮아 봄날의 미소를 가진 아이였다.

나는 소연이네서 마시는 보리차를 참 좋아했다. 무더운 여름날이면 보리차 한 컵으로는 턱 없이 부족해 소연이가 가져다주는 주전자를 기다렸다. 너무 많이 마시면 민폐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아껴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난 늘 소연이네 갈 때마다 부러운 마음과 아쉬운 마음을 한가득 품고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오니 저녁상을 차리는 엄마가 보였다. 엄마를 도와 수저와 젓가락을 놓고 아빠 밥공기를 이불 밑에 가져다 놓았다. 밥상이 얼추 다 차려지자 엄마가 말했다.


"냉장고에서 물 꺼내서 컵에 따르렴."


우리 집 냉장고엔 보리차 대신 맛없는 결명자가 있었다. 보리차에 비해 색깔도 예쁘지 않고 맛도 없는 결명자가 난 싫었다.


"엄마 결명자 말고 다른 거 없어?"

"결명자가 몸에 얼마나 좋은데, 눈도 좋아지고 맛도 있지."


엄마가 결명자 예찬을 늘어놓을 때마다 내 입은 삐쭉 튀어나오고 있었다. 된장찌개에 올릴 파를 썰던 엄마의 칼질이 멈췄고 엄한 표정으로 입을 내밀고 있는 나에게 불호령이 떨어졌다. 엄마는 혹독한 겨울의 차가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눈 좋아지기 싫어! 결명자는 쓰단 말이야! 너무 써서 밥이랑 먹기 싫단 말이야. 나도 보리차가 먹고 싶어. 왜 우리 집엔 보리차가 없는 거야. 엉엉."


나는 결명자를 앞에 두고 대성통곡을 했다. 엄마가 싫었다. 엄마의 무서운 얼굴이 싫었다. 소연이네 엄마가 내 엄마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눈물을 계속해서 재촉했다. 왜 우리 엄마는 시장 도떼기 같은 사람일까. 억울하고 억울해서 울었다.


다음날, 우리 집 냉장고엔 보리차가 세 통이나 가득 담겨있었다.





나는 지금도 보리차를 볼 때마다 소연이네 엄마가 생각난다. 하지만 예전처럼 소연이네 엄마가 우리 엄마가 아니라는 사실에 억울하지 않다. 소연이네 엄마가 봄꽃 같던 사람이었다면 우리 엄마는 차디찬 겨울바람을 이겨내고 피는 겨울 꽃 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겨울바람에 맞서기 위해 억센 줄기와 잎을 가졌지만 눈 속에서 피어나는 결단을 가진 겨울꽃을, 엄마는 꼭 닮았다.


그런 아름다운 꽃을 몰라보고 억울하다 떼쓰던 딸을 둔 우리 엄마는 진짜 억울하겠다. 꽃다운 청춘 다 바쳐 딸이라는 새로운 꽃을 피워내느라 정작 자신의 꽃이 지는 줄도 모른 채 살아온 엄마의 인생은 진짜 억울하겠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지금이라도 엄마의 꽃을 찾아낸 딸이 있다는 사실이 아닐까. 허허.


거울 속엔 세월을 잡아먹고 늙어버린 엄마의 모습이 보이겠지만, 내 눈엔 그 어떤 꽃보다 아름답게 피워낸 엄마의 겨울 꽃이 보이니깐. 그 어떤 꽃들과 비교할 수도 없이 아름답게 핀 엄마의 꽃이 내 눈엔 가장 예쁘다. 내 눈엔 우리 엄마가 꽃보다 아름다워라.


그러니 억울하지 마시라. 꽃보다 예쁜 우리 엄마야.




한장의 사진 속에 숨겨진 이야기를 찾아 여행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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