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운 날의 포르투
_ 에게
이곳 포르투에서는 삐걱이는 창문 틈새로 아침이 쏟아지고,
빼곡한 숲 아래로는 문양이 얼룩덜룩 져.
이런 계절이면 몸에도 여름을 새고도 한동안 가무잡잡할 그림자가 남지!
그러니 바다를 조심하자 두 발에 한 철은 갈 파도가 그을릴지 모르니까...
잘 지냈니? 나는 지금 세비야에 있어.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한다고 H 양과 야간 버스를 타고 새벽을 넘어 도착했어. 안달루시아 지방은 한겨울에도 10도 부근을 웃돌 정도로 따뜻해서 올리브와 오렌지가 무럭무럭 자라지. 어제도 오후 여섯 시가 넘었는데도 38도까지 올라서 올해 들어 처음으로 느끼는 후덥지근한 여름 날씨에 허덕였어.
그러니 이제 여름을 맞이했다고 말해도 되겠다. 첫눈도 내가 맞기 전까지는 내리지 않은 거잖아. 암스테르담은 봄이라기에도 무색할 정도로 쌀쌀맞은 날씨가 6월 초까지 이어졌고 얼마 전 다녀온 런던도 쌀쌀해서 감기 기운까지 얻어왔었으니까 남유럽에 도착한 7월 직전의 지금이 올해 첫여름인 셈이지.
포르투에 도착해서는 이탈리아 여행을 하다 온 H 양을 만났어. 이미 살을 그을려 여름의 한중 턱에 있는 모습이었지. 계단처럼 겹겹이 쌓인 포르투의 집들도 쏟아질 햇빛을 마중하듯이 창문과 테라스를 아기자기하게 꾸려뒀었어. 어떤 집은 벽이 타일로 돼 있어서 해가 기울 시간이면 빛을 번뜩 반사하면서 반짝였어. 대륙 서쪽에 있는 포르투는 낮이 끝나지 않을 것처럼 길었어.
바람이 불면 짠내가 났다. 바다가 강으로 들어오는 건지 강이 바다로 흘러가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걸 종으로 가로지르는 동루이스 다리에서는 작은 보트 가끔은 커다란 크루즈가 둥둥 떠다니는 게 보였어. H 양과 나는 도시가 한눈에 들어오는 담벼락에 앉아 허공에 발을 동동댔어. 그러다 해가 지고 얼굴들엔 벌건빛이 들고 잔디는 금빛으로 물결치지. 벼락처럼 감상에 젖어든 H 양과 나는 북적였던 주변이 한산해지고 바닷바람으로 살갗이 서늘해지고 나서야 발길을 돌렸어.
잊고 있던 계절의 감각이 하나씩 돌아오는 중이야. 뙤약볕 아래 살결의 진득함, 울창해진 나무 응달의 선선함, 열대야 거리의 웅성거림. 잊고 있던 계절의 것들도, 이르자면 여름 감기, 잘 익은 과일, 목축임, 빨래, 모래, 젖은 머리….
그리고 물속에 푹 잠기기. 너는 언제 마지막으로 바닷물에 몸을 담갔니? 언제가 마지막이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 바다수영! 포르투에서 나는 생애 첫 파도타기-서핑-을 했고 덕분에 아주 오랜만에 바다에 몸을 맡겼고 바닷물을(원치 않았지만) 많이 들이켰어. 숱한 시도 끝에 서프보드에서 일어서기에 성공했는데, 그러면서 서핑은 딱 파도만큼 나아가는 일이라는 걸 알았지. 전문서퍼라면 물결보다 더 전진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할 수 있던 건 오직 바다가 나를 밀어내는 만큼, 딱 그만큼 만 나아가는 일이었어. 조급하지도 느긋하지도 않은 속도로 보드 위에 두 발을 딛기. 양손을 앞으로 향해 균형 잡기. 몸에 너무 힘을 놓지도 주지도 않는 평형의 상태를 유지하기.
포르투에서 리스본으로 향하는 동안 두 권의 단편집을 읽었고 그건 바다와 여름이 가진 선득함을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목이 바싹 마르는 여름이든 몸이 축축 젖어드는 여름이든 이번 첫여름에 빈 소원! 물을 밀어내는 만큼, 딱 그만큼 밀려가기.
어릴 때 자주 하던 동물의 숲이란 게임에서 해안가에 가면 종종 떠밀려 온 유리병 편지를 주울 수 있었어. 사람들은 왜 그런 걸 쓸까? 참 이상한 마음이지. 보낸 사람도 받는 사람도 불명한 데다 언제쯤 읽힐지 읽히기는 할지도 알 수없는데.
그렇지만 나는 그런 편지를 직접 써서 바다에 실어 보내는 상상을 하곤 했어. 파도가 밀어내는 만큼 밀려지고 당기는 만큼 당겨지다 해변에 도착하는... 모래에 파묻혀서 혹은 몽돌에 끼어서 발신자도 수신자도 서로를 모르고 오 직언젠가 읽히기를 바라는 마음만 담긴 편지.
이번 여름을 맞이하기 전까지 네게 부친 편지들은 그런 작업이었을지도 몰라. 쓰는 만큼 써 보내기. 할 수 있는 만큼, 어떨 땐 넘친 마음을 주체하지 않고 잔뜩 쓰기도 했지만, 그것도 결국은 내가 하고 싶은 만큼의 쓰기였지. 열리기도 열리지 않기도 했지만 실어 보냈으니 그만.
칠월은 늦잠으로 늘어지다 여름의 중턱이 넘은 팔월, 그때 다시 또 밀려든 만큼 밀어내는 마음으로 편지를 부칠게. 선득하지만 텁텁하지 않은 여름을 보내길. 이만 줄일게. 잠시 안녕!
2024년 6월 24일
세비야 대성당 앞에서
감사의 마음을 담아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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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통상 항공서간 Volume 05 - 2024 JUN 24th
발행인 김가을
국제통상 항공서간은 8월에 다시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