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톤헨지 방문기
_ 에게
지금은 옥스퍼드로 향하는 기차 안이야. 아침 일찍 일어나 바지런히 채비하고 나섰더니 피로하다. 한 시간 반 여정 내내 차창엔 잔디 숲 밭 같은 초록 풍경이 가득! 도착하기 전까지 편지를 다 쓰고 싶었는데 몰아서 이것저것 하다 보니 내리기까지 십 분도 채 안 남았네.
도시를 돌아보다 어느 카페에 들어와서 잉글리시 브랙퍼스트 티와 스콘을 주문하고 앉아 있어. 나는 여름이면 올드 팝을 듣는데 지금 막 빌리 조엘의 Uptown Girl에 이어 레드 본의 Come and Get Your Love가 흘러나온다!
어제는 스톤헨지에 다녀왔어. 나는 유적에 가는 걸 좋아하는데, 그건 우주를 탐험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야. 과거는 다른 행성 사람들의 이야기란 구절을 읽은 적이 있어. 같은 땅에 있었다는 이유로 우리는 옛날과 오늘을 하나의 궤도에 얹히고는 하지만…. 명명하고 추측하기가 전부일 때가 많지. 부질없는 일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다.
영화 화양연화는 앙코르 와트에서 끝나. 남자는 사원의 벽에 대고 무언가를 속삭이지. 먼발치에서 바라보는데 아주 거대한 과거의 어드메에 파묻힌 사람. 속삭여진 무언가는 영화에서 벌어진 소동일 수도 있고 그 소동을 감싼 비밀일 수도 있고 비밀로 가려진 마음일 수도 있을 거야.
스톤헨지에는 까마귀가 많았고 개중 몇은 돌 위에 올라앉아 있었어. 거석들이 세워진 곳은 지반이 물렁물렁해서 사람들이 다녔다간 죄다 쓰러지거나 무너질 위험이 있대. 그래서 일 년 중에 하지와 동지, 춘분을 제하고는 출입이 금지돼 있다고 하더라. 한 열흘만 늦게 왔으면 들어갈 수 있었겠지만, 아무튼 어제 그곳에 간 나는, 스톤헨지를 둘러싼 원형 둘레길을 걸었어. 기념사진으로 다들 스톤헨지를 손으로 쥐거나 발을 얹거나 그런 식의 포즈를 취하고 있어서 슬쩍 따라 해 보기도 했어. 근데 곳곳에는 땅에 앉아서 눈을 꼭 감거나 돌들 쪽으로 손을 휘적여 보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스톤헨지가 지어진 이유는 아직도 알 수 없고 명명과 추측만 무성하지만 그중 유력한 하나는 치유를 위한 기원의 장소였다는 거야. 주변으로 무덤들이 많은데 치명적인 질환을 앓고 있던 몸들인 경우가 많다고, 당시에 신묘하다고 믿어진 청석으로 세워진 이 돌들 앞에서 어떤 회복을 기도한 걸지도 모른다는 얘기였어. 드루이드라는 영국 고대 켈트 교는 과거 사제들의 사원이라고 믿어서 아직도 그곳에서 의식을 치르기도 한대. 믿을 것이 필요한 사람들 혹은 믿고 싶은 사람들이 종교를 가리지 않고 찾아와 기도한다고도 했어.
나는 돌을 봤어. 거칠고 울퉁불퉁한 표면. 천체를 따라 놓인 배열. 기원전 이천 년으로부터의 침식. 밤하늘에 대고 온갖 별자리를 만든 것처럼 우리는 과거에 대고 점을 이어 어떤 이야기와 믿음을 만들지. 유적에 가는 건 어땠는지는 몰라도 있었다는 것만은 확실한 별을 관측하는 일인 것만 같아.
돌아와서는 두 번째 런던 방문 때 H 양과 함께 왔던 브릭레인을 걸어 다녔어. 골목에는 그라피티가 이전 그림 위로 얹히고 또 칠해지기를 반복해 두껍게 그려져 있었고 골동품 가게에는 녹슨 물건들이 빼곡히 쌓여 있었어. 역사는 현재가 과거에 대고 속삭이는 비밀! 유적은 그 비밀을 전할 포트 키 같은 것…. 1930년대에 지어졌다던 역에서 기차를 타고 16세기에 지어진 대학에 도착했어. 여기저기 다니며 속삭일 비밀을 만들어야겠다.
내일부터는 현재에 밀착할 예정! (살아있는) 록스타의 음악을 듣고 최신의 미술을 보러 가거든. 다음 주엔 동적인 런던이야기를 할 수 있기를. 한 주도 잘 지내렴.
추신.
꼭 가고 싶은 유적이 있니? 나는 피라미드에 가보고 싶어.
2024년 6월 10일
옥스퍼드에서
속삭이며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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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통상 항공서간 Volume 05 - 2024 JUN 10th
발행인 김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