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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utumnlim Nov 29. 2022

커피의 힘을 빌리지 않은 내 보통의 몸과 정신을 위하여

커피를 더 이상 마시지 않기로 결심했다!

다행히도 나는 물 마시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라 물 외의 음료를 많이 마시지 않는 편인데, 그래도 하루에 한 잔 정도는 맛과 향이 나는 음료를 즐긴다. 그 '한 잔'은 보통 '커피', 특히 '아이스 아메리카노'였다. 상대적으로 칼로리도 낮고 달지도 않아 갈증해소에 좋고, 무엇보다 카페인이 들어 있어 내 몸속 어딘가 늘어져 있는 부분을 팽팽하게 당겨주기 때문이다. 그렇게 습관처럼 마시던 커피를 더 이상 마시지 않기로 결심했다.


어느 순간부터 카페인의 노예가 된 듯 커피를 안 마시면 머리가 개운하지 않고, 하루 종일 쳐지고 피곤하다. 피곤할 이유가 없는데도. 작은 피곤이든 큰 피곤이든 카페인으로만 일방적이고 획일적인 강력 대응을 하다 보니 이제는 내 보통의 컨디션이 어떤지 잘 모르겠다. 어쩌면 피곤은 내 몸이 주는 쉼의 신호일 텐데 피곤할수록 커피를 마시며 더 몸을 깨우고 에너지를 불태워 '나는 쉼이 필요 없어, 아직 에너지가 충분해!'라고 착각하게 만든다. 착각이 착각을 낳고 결국 나는 내 꽤에 내가 넘어가 결국 무리를 하고 내 몸은 파업을 선언한다. 그 파업을 몇 번씩이나 경험하고 난 후 이제야 내 보통의 때가 그리워졌다. 커피의 힘을 빌리지 않은 내 보통의 몸과 정신은 어땠더라?


커피를 마시지 않기로 결심한 이후로부터 음료 선택이 꽤나 다채로워졌다. 그 '한 잔'을 무엇으로 할지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카페에 가면 디저트 고르기에만 심혈을 기울이고 음료는 늘 '아이스 아메리카노'였는데, 이제는 음료 메뉴판을 정독한다. 사실 이름은 다 기억하지 못한다. 무슨 이름이 그렇게 길고 어려운지... 대충 감을 잡아 도전해 본다. 오늘은 리치 어쩌고를 마셨다. 리치 주스 같은 느낌이었는데, 꽤 맛있었다. 어제 마신 딸기 요거트 스무디도 달콤하고 시원했다. 배가 불러서 다 마시진 못했지만 아주 만족스러운 맛이었다.


집에서는 커피 대신 차나 우유를 마신다. 요즘 베이킹에 맛이 들려서 휘낭시에와 당근 케이크를 굽고 있는데, 예전 같으면 우아하게(?) 커피 한잔하며 먹었을 것을, 우유와 함께 먹는다.(응애) 오늘은 크래커에 체다 치즈를 두툼하게 썰어 얼그레이 티와 함께 먹었다. 이건 와인 안주인데... 술도 끊었기 때문에... 아무튼 얼그레이 티를 마셨다. 얼그레이티에도 카페인은 들어 있지만 커피에 비해서는 낮으니 살짝 눈 감으려고 한다.(ㅋ)


고민 없이 늘 똑같았던 나의 '한 잔'의 자리에 우유, 얼그레이 티, 딸기요거트스무디, 리치 주스 등이 자리했다.


커피를 마시지 않아도 나는 어느 정도의 피곤함을 견디며 일상을 무리 없이 보냈고, 많이 피곤할 때는 소파에라도 잠시 누워 쉬었다. 아이 없는 주부의 일상은 몇 분 늦어져도, 며칠 미뤄도 큰일이 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여유가 없을 때에도 여유는 만들어내야만 하는 것인데, 여유가 있는 때에도 여유를 누리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가 돌아본다. 있을 때 잘 해주자. 지금 내 일상의 여유. 언제 다시 쟁취해야 하는 몸값 높은 양반이 되실지 모른다.


그리고 애초에 나는 하루 종일 누워 있는 스타일이 아니다. 아픈 때가 아니라면 내가 누워 있어봤자 한 시간을 넘기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게으름, 나태함과 피곤함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나는 피곤한 것을 나태해지는 것이라 생각해 두려워했다. 내가 커피를 찾을 때는 보통 나태해진 때가 아니라 피곤한 때다. 그리고 우리가 달고 다니는 피곤함은 어쩌면 10분의 온전한 휴식으로도 충분히 해소되는 정도인데 너무 과한 방법으로 대응해 왔던 것은 아닐까 싶다. 커피 없이 못 살 것 같았는데, 막상 끊어보니 걱정이 무색하게 아주 잘 살고 있다.


인위적으로 흥분되지 않은, 보통의 내 텐션과 컨디션을 조금씩 되찾아 가고 있다. 하루 '한 잔'을 선택하는 작은 모험의 과정이 즐겁고, 음식과의 새로운 궁합과 다양한 풍미를 누릴 수 있어 기쁘다. 그리고 커피 없이도 꽤 흥분되고 쫄깃한 것이 현생이기에... 당분간 커피가 꼭 필요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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