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타민 먹듯 하루치 행복 흡수하기.
어제 그제 일이 터지고 난 뒤로 내내 정신이 없었다.
심리적인 타격이 큰 게 당연한 상황인데 꾹 참는 버릇이 있는 나는 그럴수록 정신을 제대로 붙잡으려고 늘 간절하게 노력하고 상황이 점차 진정되고 나면 그제야 몸이 조금씩 아프다. 바들바들 떨리는 기분.
이럴 땐 그렇게 좋아하는 책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냥 느린 음악을 틀어두고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수밖에 없다.
오늘도 맑은 하늘. 호주에서는 이렇게 드넓은 하늘, 드넓은 바다를 보다 보면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사람의 마음은 하늘, 바다와 같아서 날이 흐리다 한들 그게 내 마음은 아니고,
파도가 거세다 한들 그것도 내 마음은 아니라고.
날의 흐림, 맑음과 상관없이,
파도의 거셈, 잔잔함과 상관없이
내 마음은 그 밑바탕인 하늘과 바다일 뿐이다.
나를 내가 느끼는 그 감정과 동일하다고 착각해선 안된다. 다 지나가니까.
내가 너무 좋아해서 나 혼자 정신적 지주로 삼는 요가 스튜디오 Soba에서 운영하는 인스타 계정.
거의 매일 좋은 문구들을 일러스트와 함께 예쁜 폰트로 올려주는데 마음에 확 와 닿아 꽂히는 문장들이 종종 있다.
주로 보면서 드는 생각은 이런 것.
나쁜 마음 말고 사랑하는, 품어주는 마음으로 살자. 그리고 내가 가진 그 사랑에 당당하자.
정말 추천하는 계정이다.
꽃이 좋아 꽃꽂이를 꽤 오래 배운 적이 있다. 그때 내가 만지고 다듬은 꽃들을 항상 집으로 가져와 화병에 잘 담아두었는데 집에 꽃이 있으면 분위기가 새삼 다르더라.
집에 꽃을 둔다는 건 그만큼 마음의 여유가 있다는 뜻이라는 것도 그때 알았다.
꽃을 고르고 사서, 집에 와 다듬고 장식할 만큼의 여유.
푸릇푸릇한 화분들도 좋지만 언젠가 시들 것을 알면서도 사두는 꽃은 훨씬 더 의미가 크다.
브리즈번 카페는 보통 새벽 6시쯤이면 문을 열어 오후 3시면 문을 닫는다.
그래서 조금만 집에서 느긋하게 보내다가는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는데, (스타벅스, 맥도날드 같은 곳은 갈 수 있지만.)
오늘은 집에서 많이도 밍기적대다가 느지막이 나왔다.
CBD 근처에 있어 집에서 가깝고, 빌딩의 반지하층에 위치해 있는 Duce&Co. Espresso.
사람 10명 정도면 공간이 가득 찰 아기자기한 카페.
아무래도 업무빌딩들 틈에 있다 보니 바깥쪽 카운터에서 커피를 사서 테이크아웃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인 것 같았다.
작은 공간을 잘 살려 테이블 위마다 예쁜 전구로 빛을 밝혀주는 곳.
이 작은 공간도 결국 나만 남으니 충분히 큰 공간이 됐다.
가끔은 카페 와서 나 말고 다른 사람들 구경하며 하염없이 앉아있는 것도 좋지만
이런 날은 이렇게 조용히 나 혼자 시간을 보내면서 이 큰 공간을 누리는 것도 행복이다.
이럴 땐 가방에서 일기장을 꺼내 노래를 들으면서 오늘의 상태를 잘 기록해두곤 한다.
어느새 카페 문 닫을 시간. (뒤에 대걸레를 본격적으로 갖다 놓기 시작했다.)
밍기적대다가 나오느라 제대로 식사를 못해서 맥도날드에 가서 햄버거를 먹을까 생각 중.
우리나라에만 파는 불고기 버거가 있듯이 맥도날드는 나라마다 특화된 메뉴가 있다고 해서 메뉴판을 찾아봤더니 Aussie Angus Burger가 바로 그 메뉴인 것 같다.
호주산 앵거스 비프로 만드는 패티인 것 같은데 지금도 정말 인상 깊은 게, 저 버거 정말로 퍽퍽했다.
쿠크다스처럼 바스락거릴 만큼 튀겨진 베이컨도 한몫한 것 같은 느낌.
그래도 첫 시도에 만족하고 잘 먹었어요..
실컷 먹었으니까 저녁 운동을 하러 웨스트엔드로 가는 길.
이렇게만 보면 마치 자기 관리가 대단하고 운동 자체를 너무 좋아하는 사람 같지만,
호주 요가 스튜디오에서는 늘 그렇듯 자기 몸 상태에 맞게 운동하고 호흡하는 걸 가장 중요시하기 때문에
몸에 별로 무리가 안된다. 심리적 부담감 자체가 없다.
그냥 오늘도 풀밭에서 야외 요가하면서 선선한 저녁 바람맞아볼까 하는 그런 가벼운 마음으로 임하는 것.
때로는 그런 가벼운 접근법이 사람에게 큰 위안을 준다.
뭐든지 '작정하고' 하면 너무 힘드니까. 시작은 가볍고 산뜻하게.
그래서 이렇게 운동하러 걸어가는 길이 나는 너무 행복하고 좋더라. (버거 먹고 가는 거여도.)
이런 마음의 안식처는 언제나 찾고 싶고 갖고 싶다.
예전엔 그게 사람이었으면 했는데, 요즘엔 그게 공간인 게 더 나을 것 같다.
사람 관계는 늘 변하니까.
호주에 올 때마다 느끼는 건데 유독 야외 인테리어에 알전구를 많이 쓰는 것 같다.
덕분에 요가를 하다가 누워서 하늘을 보는 자세를 하고 있을 때는 하늘에 많은 별이 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오늘 하루치의 행복도 운동하며 마음껏 흡수했다.
다시 배가 고파서 오는 길에 사 온 모짜렐라 치즈와 디저트로 먹을 포도. 오늘은 냉장고에 있는 재료를 써서 치즈 넣은 오믈렛을 만들어 먹어야지.
마음 같아서는 여행 다닐 때 호텔 조식으로 먹은 치즈 오믈렛처럼 만들고 싶었는데 다소 괴리감 있는 비주얼이 나왔다.
그래도 뭐 먹을까 심도 깊게 고민하면서 장보며 재료도 내 손으로 고르고, 부엌에서 이렇게 저렇게 칼질도 해보고, 모양도 잡아보고, 이왕 먹는 거 예쁘게 담아 먹자 싶어 요리조리 고민하는 순간이 즐겁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에 최선을 다하되, 너무 많은 거 바라면서 살지는 말자' 하고 다짐하지만
늘 내 맘 같지 않게 흘러가는 게 나의 하루하루.
잘 이겨내 보자 해봐도 가끔은 지고 만다.
그런 나에게
내 마음의 안식처들은 늘 안식처로 남아주길 기도하는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