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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월 Nov 23. 2023

친구집에 빤쓰를 버렸다

빤쓰런을 한 건 아니고요

친구집에 빤쓰를 버리고 왔다. 빤쓰런*을 한 건 아니다. 치를 것(이에 대해선 다른 글에 쓰겠다)은 다 치르고 왔다. 오히려 가지고 간 전부를 두고 왔다.



어찌 된 일인가 하면, 미니멀리스트가 되고 싶은 맥시멀리스트는 필리핀에 사는 친구 K를 만나기 위해 만 7세와 만 0세(당시 8개월), 둘을 데리고 7박 8일간의 여정을 떠나기로 했다. 연령이 전혀 다른 두 아이들을 위해 가져가야 할 것이 너무 많았다. 게다가 보호자는 한 명이므로 짐을 이고 지고 가야 했기에 어떻게든 캐리어에 많은 것을 쑤셔 넣어야 했는데 문제는 이유식이었다. 조금이라도 낯선 식재료에 대해 모험하고 싶은 생각도 없고(게다가 출발 이틀 전 아몬드가루를 먹고 알레르기 반응을 보여 병원에 다녀왔다) 놀러 가서 이유식을 만들고 싶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8일 치 이유식을 싸가야 했다. 만드는 건 별 문제가 되지 않았는데 그 부피와 무게가 문제였다. 부피는 24인치 캐리어의 1/4, 무게는 무려 3kg이었다.


애들 옷을 경우의 수에 따라 계산해 가며-조금 더울 때, 많이 더울 때, 에어컨을 켰을 때, 물놀이를 할 때 등- 넣었다 뺐다 하는데 출발 전까지 답이 안 나왔다. 안 되겠다. 친구야, 거기 날씨는 어떠니, 나는 뭘 챙겨가야 하니 물었더니, 날 설레게 했던 그녀답게(남편이 아닌 사람에게 설렘을 느꼈다 (brunch.co.kr)) 속옷만 가지고 오라는 것 아닌가.



그래서 정말 속옷만, 고르고 골라서 가지고 갔다. 어떤 걸로? 버릴 걸로.



몇 해 전 사각팬티를 입어본 뒤로 너무 편하여 삼각팬티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몇 개의 삼각팬티를 가지고 있었는데, 너무 새것이라 아까워서 버리지 못했던 것이다. 집을 정리하며 냉정하게 던져 버리자니 왠지 자꾸만 필요할 것 같고(?) 너무 상태가 좋은데 팔 수도 없고(?) 하여 어영부영 한 번 더 입게 되지 않을까 하며 버리기를 미루고 있었던 그것들이었다. 그놈들을 4개 정도 가져와서 여행 4일 차쯤부터 한 개씩 훌렁훌렁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원정 1일 1 비움이었다. 그렇게 친구집에 빤쓰를 버렸다.






생각해 보니 이렇게 버리고 온 게 처음이 아니었다. 물건을 한 번 사면 굉장히 오래 쓰고 잘 버리지 못하는 나는 고등학생 때부터 줄곧 써오던 우산을 대학교 1학년 때 도둑맞은 경험 1회 빼고는, 우산을 잃어버린 적이 없다. 우산을 너무 잃어버리는 것도 난감하지만 우산을 전혀 잃어버리지도 않고, 새로 사지도 않는 경우에도 퍽이나 난감했다. 이유는 우산이, 정확하게는 우산 겸 양산이었던 그것이 여러 번 접었다 펴는 바람에 닳아서 비가 샐 때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비가 아주 많이 오지 않는 이상 또 우산의 역할을 못하는 것은 아니므로 버리지 않고(사지도 않고) 계속 쓴 것이다. 무려 7년여간.



그리하여 결혼 전 베트남에 갔을 때, 그 우산을 부러 놓고(버리고) 왔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비가 새는 우산을 계속 쓸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서 같은 우산을 샀다(지겨운 것). 살 때 1단 장우산도 함께 샀는데 그 우산 두 개를 여태껏(아마도 10년째) 쓰고 있다. 운전을 하게 되면서 우산을 쓸 일이 줄어서 그런가, 두 개를 번갈아가며 써서 그런가. 더 오래 썼는데도 아직까진 다행히도 비가 새진 않는다.



새는 건 오히려 내 정신머리 같다. 신혼여행 때도 이런 자세(?)로 임했던 거다. 버릴 티셔츠, 버릴 속옷을 챙겨가서 매일매일 호텔방에 옷을 버렸다. 가지고 있는 것 중 제일 좋은 것을 가지고 가서 분위기를 내도 모자랄 판에 제일 후줄근한 것을 챙겨가 버리고 오는 배낭여행 바이브. 신발은 편하게 삼선쓰레빠, 가방은 이니스프리에서 받은 에코백이다. 그래도 신혼여행인데 어쩜 저랬는지, 신혼여행지에서 찍은 사진을 보면 헛웃음이 나온다.








그런데 정신은 나갔어도 젊다 못해 어리니 피부도 광이 나고 살도 안 쪘을 때라 여러모로 참 예뻐 보인다. 중요한 건 사람을 감싸고 있는 물건이 아닌 것인가. 거지꼴로도 환히 웃을 수 있었던 스스로를 보며 나 자신에 대해 두 가지 생각을 했다.



하나는, 나는 물건이 중요한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브랜드나 사용 연한이나 그런 것들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물건이면, 사용하는 데 불편함이 없고 만족스러우면 그걸로 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더 많은 물건을 소유하게 되면서 그런 마음과 태도를 좀 잃어버린 것 같다. 후줄근한 것을 둘러도 예쁠만한 나이는 지났으니 어느 정도의 체면치레는 할 수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그 마음과 태도의 자리에 들어와 있는 듯하다. 그러면서도 본성적으로 즐기는 사람이 아닌지라 불편한 그런 상태다. 스스로 기준을 세워 좋아하는 물건 중 좋은 것들을 남길 줄 알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또 하나는, 나는 일부러 버려야 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입지 않는, 그리고 입지 않을 것 같은 삼각팬티도, 구멍이 나 비가 새는 우산도 처분하고 필요하다면 새로 사야 하는데 그게 굉장히 어려운 사람이다. 그래서 물건이 이리도 많이 쌓였나 보다. 추억을 정리해야 진짜 다 정리하는 거라는데 조금만 새것 같거나 조금만 필요할 것 같거나 상태가 엉망진창이라도 오래 써서 정이 들면(질리는 게 아니라) 버리는 게 너무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경계하고 버리고 정리하지 않으면 물건에 압도되는 삶을 살며 '정리해야 하는데'만 말하다 끝날 것이다. 따라서 보다 산뜻하고 담백하게 물건을 던져버릴 줄 알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가지고 간 전부를 놓고 왔더니 나에 대한 생각이 그 자리를 채운다. 정리는 계속되어야 한다.






*팬티를 뜻하는 빤스와 달아나는 것을 뜻하는 런(Run)의 합성어로 자존심과 책임감을 내다 버린 채 자기만 살겠다고 도망치는 모습을 조롱하는 신조어다. 옷도 제대로 못 갖춰 입고 빤스 바람으로 뛰어갈 정도로 다급하게 도망친다는 뜻이다. 상황이 발생했을 때 맞서서 대응하지 못하고 망신스럽게 허겁지겁 도망가는 굴욕적인 모습을 희화화하는 데 주로 쓰인다. '스'에 강세를 둬서 빤쓰런으로 표기할 때가 많다. 짧게 줄여서 그냥 런이라고도 많이 쓰는 추세가 되었다. (출처: 나무위키)



*제목 사진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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