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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회고

by 백종현 aka avantseed Feb 21. 2025

 2022년 8월 22일.


 “주여, 기억의 무게가 너무 무겁습니다. 도와주소서.”라는 외침은 발작이었다. 아무 연유가 없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종교에 소속되어 있지 않다.


 몸에 지진이 났다. 내 구멍들에서 물이 고름처럼 나왔다.


 그 후, 오래전에 꾼 긴 꿈들이 하나둘씩 이루어졌다.

 누가 이 세상에 없는 언어로 웅성거리는 걸 들었다.

 천사를 보고 혼절했다.

 이 외 다양한 체험이 있었지만 설명하고 싶지 않다.


 신에 대한 이야기랍시고 대중 사이에서 떠돌고 있는 증언·분석·방어·비판은 대부분 신에 대한 게 아니라 신-이미지에 대한 것임을 확인했다. 그것들을 폐기하고 나서 새로이 들여다본 신학·비교종교학·경전 원본은 내가 지금껏 품어온 물음을 더 입체적으로 만들어 주었다. 말을 초월해 있는 것을 말로 둥글게 문지른 흔적들을 들여다보며 나는 기시감을 느꼈다.


 로고스 속에서 나 자신이 조금씩 드러났다. 그건 원래부터 여기에 있었으나 숨겨져 있을 뿐이었고 그저 때가 차서 베일을 벗은 것이다. 나는 잠깐 동안만 여러 가지 몰입 및 자기 암시 기술을 실험했고 이내 그것들을 버렸다. 곧 온전한 신비가 나를 휘감았다.


 나는 기도한다.


 신은 선도 악도 아니고 선악에 앞서있다. 신은 '주기'이고 주기는 숨처럼 인격을 관통한다. 운명과 자유가 일치한다. 우리가 신을 상상하는 모습을 신이 상상한다. 영원히 돌아오는 진동. 동시에 반사하는 거울. 돌아오는 돌아옴과 반사에 대한 반사. 나와 너*.


 나의 일상은 동시성*으로 가득하다. 귓가를 스치는 바람을 통해 항시 예감이 오고, 귀뚜라미 울음 속에서 내 이름이 들린다. 빛이 일곱 갈래로 내게 돌진하고, 그래서 한 덩어리 같다. 물론 나는 여전히 외롭고 괴롭고 신이 나며, 대부분 실패하고 가끔 멋진 일을 한다. 다만 이제 영화처럼 움직인다. 내가 사랑하고 있든 멸망하고 있든 오해하고 있든 이해하고 있든 일어나고 있든 노동하고 있든 떠나고 있든, 그게 다 음악으로 들린다.


 우리와 모든 것, 우리와 모든 것에 앞선 우리와 모든 것, 우리와 모든 것 이후에 올 우리와 모든 것이-

 일어난 모든 것, 일어나는 모든 것, 일어날 모든 것이-

 들린다.





*마르틴 부버

*칼 구스타프 융의 동시성 이론과 그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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