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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듬이 엉키면 삶이 엉키고, 리듬에 맡기면 열리는 길.

by 헤스티아

인생의 중요한 기회나 방향이 아주 우연한 계기로 결정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리고 때로는 나는 아무런 잘못도 안 했는데, 내 주변 환경이 도와주지 않을 때도 있다.


리듬 정렬을 완성하기 전,

나는 전자의 경우를 칼 융의 방식으로 의미 있는 우연을 표현하는

‘싱크로니시티’라고 표현했고,

후자의 경우를 해결하기 위해 ‘무의식 정화’란 개념을 활용했다.


그런데 지금은 두 상황을 한 데 아우를 수 있는 표현을 찾았다.

바로 ‘리듬’이다.


리듬이 엉키면 삶이 엉키고, 리듬에 맡기면 길이 열리기도 한다.




싱크로니시티- 리듬이 정렬되면 저절로 열리는 일들


나의 리듬이 중심에 닿아있을 때,

내게 그 순간 꼭 맞는 길이 저절로 열리기도 한다.


내 경우 가장 극적인 체험이 첫 직장과의 인연이었다.


대학 생활 내내 여러 가지 가능성을 탐색했지만,

정확한 나의 진로를 정하지는 못하고 졸업 학기를 마무리 짓고 있었다.


그저 막연하게 ‘구체적인 직업명’이 있었으면 좋겠고,

창의적인 일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중이었다.


일반적인 대기업 취업 루트를 생각하지 않아서 ‘취업’이란 키워드조차 지우고 살고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구인 구직 사이트를 들어가 보고픈 마음이 생겼다.


그리곤 나의 첫 직장에서 올린 공고를 보았는데,

이곳과 나는 서로 인연이 있었던 것 같다.


이 회사도 기존 멤버들의 퇴사율이 낮아서 보통 공개 구인을 하지 않는 곳이었다.


그런데 회사 사정이 바뀌어 신입 사원을 오랜만에 모집을 하는데,

딱 3일만 구직 사이트에 공고를 냈다.


그리고 난 평생 들어가지 않고,

그 이후에도 거의 들어가지 않는 구직 구인 사이트를

마침 딱 하루, 그때 들어가고픈 마음이 생겼다.



나는 그때 ‘브랜드 컨설턴트’란 독립적인 업계가 있는 줄 처음 알았는데,

내가 입사하던 당시 이미 나의 첫 직장은

국내에서 13년 이상 경력이 있던 회사였다.


그 회사의 브랜딩 포트폴리오 중에는

ktx, 쿠쿠처럼 여전히 나의 일상에서 매일 접하는 브랜드도 있었다.


(사실 브랜드의 성공은 브랜딩과 실제 그 기업의 브랜드 운영이 같이 가야 해서,

살아남은 브랜드는 서로 기적 같은 행운이라 생각한다.)


특히 당시 그 회사의 강점은 아파트 브랜딩이었다.

지금도 난 그 회사의 포트폴리오 중,

‘래미안’ ‘자이’는 국내 건축업 브랜딩의 방향을 바꾼 기념비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기억 회수 후 ‘자이’란 이름이

여전히 앞으로의 내 삶에 의미 있게 남아있는 것을 보면서,

리듬의 중심에 닿으면 이번 생에 필요한 기회들을

알아서 연결해 준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앞서 리듬이 불러서 떠났던 해외 체류 경험들처럼,

나는 어느 순간 직관적으로 떠오른 아이디어를 따라 움직인 경우가 많았는데,

기억 회수 후에 보니 모두가 의미 있는 연결과 기회들이었다.


사실 빛의 언어 계열 나의 스승도 이 방식으로 연결되었다.


그때도 요가 수련 중이었는데,

어느 날부터 내 몸이

내가 요가를 가장 처음 했던 방식인 호흡 중심 요가 수련을 원했다.


내 몸이 들려주는 직관에 귀 기울이고,

내 몸이 원하는 대로 해주려고 했다.


하지만 그곳은 서울이고,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은 멀리 떨어져 있으니,

같은 방식의 호흡 수련은 포기한 채, 그래도 비슷한 곳이라도 찾아보자고 검색했다.


그렇게 찾았더니,

마침 기존 나의 수련원 근처에서,

나와 같은 수련 과정을 겪은 요가 지도자 선배가 운영하던 요가원을 찾았다.


워낙 생각지 않은 곳에서, 신기하게 닿은 인연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요가원 선생님을 통해 또다시 나의 빛의 언어 계열 스승과 연결이 되었었다.



그 스승도 이미 파동을 읽고 있었기에,

그즈음 누군가 제자가 될 사람이 찾아올 것을 알고 있었고,

내가 요가원을 방문한 날,

나를 보지도 않고서도 제자가 왔다는 것을 알았고,

그리고 이 제자의 수련이 빠를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했다.




또는 어떤 결정을 내릴 때 누군가 지나가는 말로 한 마디 했는데

그 말을 곱씹다가 어떤 기회를 잡기도 했다.


내 인생에서 커리어마다 중요하게 꺾이는 지점은 늘,

누군가의 지나가는 한 마디를 붙들고 일어나곤 했다.



이처럼 누구나 인생에서 몇 번 이상은 경험했을 법한 일들.


즉, 우연한 기회로 내 앞에 필요한 일들이 닿거나,

직관의 형태로 그 순간 필요한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일들을

칼 융은 ‘의미 있는 동시성’이란 의도로 ‘싱크로니시티’라고 표현한다.


사실 리듬이 정렬되어 본질적 중심에 닿았을 때 일어나는 현상들이었다.




리듬이 엉킬 때- 무의식 정화를 통과하는 시간들


얼핏 보면 이와는 관련 없어 보이지만,

살다 보면 원치 않는 악연처럼 보이는 경험을 하는 것도 같은 원리로 풀 수 있다.


유난히 꼬이는 거래, 도로 위에서 괜히 시비 붙을 수 있는 인연들,

직장이나 학교 등 지속적으로 봐야 하는 곳에서 나랑 맞지 않다고 여겨지는 인연들...



나도 더 어릴 땐 이런 일들에 분노하고, 억울해했는데,

명상을 더 오래 해오고, 호오포노포노 무의식 정화의 접근법을 알게 되면서

일단은 무의식 정화를 통해 상황을 풀어나가기로 했다.



이 과정의 의미는

리듬 정렬을 수련의 차원에서 깊이 있게 풀 수 있는 자리에서 더 풀 수 있지만,

지금 에세이에서는

명상과 호오포노포노의 무의식 정화가

분명히 도움이 되었다는 이야기만 하고 넘어가겠다.




호오포노포노의 무의식 정화를 실천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화가 나거나 억울한 상황, 일이 잘 풀리지 않는 상황에

특정 단어들을 반복해서 되뇌는 거다.


주로 ‘미안합니다, 용서하세요,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줄여서 미용고사)’

라는 단어를 많이 활용하는데

난 ‘아이스블루’란 단어가 내 리듬에 더 맞아서 즐겨 활용했다.



예전엔 지금보다 훨씬 분노가 많고 다혈질이었기에,

‘아이스 블루’란 단어가 속이 좀 시원해지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여기에 나의 빛의 언어계열 스승을 만나 수련하면서,

같은 효과를 지닌 ‘주인공’이란 단어까지 알게 되어,

‘아이스블루 주인공’을 자주 되뇌었다.



정식으로 내면 수련을 설명하는 자리가 아니기에,

나의 체험으로만 간략하게 작동 원리를 설명해 보겠다.



이 두 단어는 결국 비슷한 진동으로 나의 리듬을 돌려놓는 효과를 갖는데,

그것을 알고 되뇌든 모르고 되뇌든 상관은 없다.


이 단어를 내 마음이 지금 일어나는 상황에

분노, 짜증, 불안으로 대응하지 않고

고요해질 때까지 계속 반복하는 것이다.



리듬 정렬 초창기에는

내 앞의 문제 상황에 대해

이 단어를 최소 며칠,

복잡한 문제는 몇 달 이상 반복해서 되뇌어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리듬 정렬이 되면 될수록 그 기간은 짧아진다.


리듬 정렬이 완성되면 더 이상 안 해도 될까 싶지만 그렇지는 않다.

매 순간 외부에서 일어나는 자극도 있고,

내가 중심이 흐트러질 수도 있기 때문에

‘아이스블루 주인공’으로 엉킨 리듬을 정렬하는 것은 여전히 유효하다.


다만 요즘은 몇 분, 몇 시간 정도로 간단하게 끝나는 일들이 많다.

이건 정렬된 나의 힘의 복원력이 그만큼 세졌다는 뜻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애초에 나랑 리듬이 완전히 맞지 않는 일들은

내 삶의 주변으로 튕겨나가는 경우가 많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리고 리듬 정렬이 되다 보면 상황이 다르게 보이기도 한다.

그때면 과거의 나는 ‘흑역사 속’에 있는 것이다.

거꾸로 말하면 흑역사를 깨달았다는 것 자체가 성숙이고 발전이고,

리듬의 관점에서는 정렬이 더 일어났다는 것이다.



리듬 정렬로 내 인생의 관문수호자 넘어서기


때로는 리듬 정렬 전에 닫혔던 나의 길, 나의 인연이 열리기도 한다.


지인 중에 몸의 자세가 계속 불편해서

정형외과, 한의원, 물리치료, 재활치료를 계속 찾던 사람이 있었다.


계속 자신에게 맞는 치료 프로그램을 찾지 못했는데,

마지막으로 정착한 것은 필라테스였다.


재밌는 건, 이미 요가와 필라테스를 제일 처음 시도해 봤었는데,

그때는 자신의 리듬이 덜 정렬되었기에 자신과 맞지 않는 강사의 수업을 들었다.


그래서 필라테스란 카테고리 전체를 지워버렸는데,

리듬이 정렬된 후에는 자신에게 맞는 강사를 찾게 된 것이었다.


(이 에피소드로 자세 불편함에는

필라테스가 최고다라고 오해하는 일은 없길 바란다.

그저 그 지인의 몸 상태는 그때 그랬다는 것이다.)



아주 사소한 예지만, 비슷한 경험을 커리어나 삶 전반에서 하기도 한다.


그럴 때면 정렬되기 전 나와 맞지 않는 경험을 제공하는 인연을

관문수호자라고 부를 수 있다.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의 내면 여정의 과정에 나오는 원형인데,

그 내용이 방대하여,

글작업 하는 사람들은

크리스토퍼 보글러의 ‘신화, 영웅, 그리고 시나리오 쓰기’란 책으로

핵심 개념들을 이해해서 활용하기도 한다.


관문수호자는, 그 길을 갈 준비가 되지 않은 자를 돌려보내는 역할을 한다.


나의 빛의 언어 계열 스승도 이 수련의 길을 가고자 하는 이들에게

일종의 관문수호자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 수련을 통해 리듬 정렬을 하고 싶은 사람들은 최소 1년 6개월 이상,

오프라인에서 태극권의 전체 동작을 익혀야 그 길을 통과하게 해 준다.


이건 단순히 관문수호자의 문제가 아니라,

나중에 깊은 단계의 내면 여정을 지나갈 때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몸의 감각을 지니기 위한

최소한의 필수 요건이기도 하다.


그 기간 동안 태극권 수련만 하는 게 아니라,

더 깊은 내면 여정에서 부딪히는 더 큰 에너지 속에서도

자신의 중심을 잡는 단전과 명상 수련을 병행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의 삶의 리듬 정렬이 진짜 이루어진다는 효과는

보통 4-5년 정도는 지속할 때 알 수 있다.


그건 이 정도 수련을 스스로 할 때,

질문을 스스로 길어올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빛의 언어 스승은

내가 먼저 꺼낸 질문에는 모든 것을 열어놓고 알려주지만,

준비가 되지 않은 자에게 먼저 알려주지는 않는 방식으로 이끌어준다.



기억 회수는 또 별개의 문제라,

평생을 두고 수련을 해야 하는 사람도 있고,

이미 이전 생에 얼마나 수련을 해왔고,

이번 생에 어떤 설계도를 가지고 왔느냐에 따라 시간이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다.


내 경우는

이번 생에 나만의 기억 회수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기억 회수를 도와줄 수 있는 방법까지 설계하고 와서,

명상과 여러 수련들을 통틀어서는 20여 년,

빛의 언어 계열 마스터 스승 밑에 직계로 수련한 지 꼭 10년째 되던 해에 가능했다.



다만 나는 나의 빛의 언어계열 스승처럼,

직접적으로 누군가의 기억 회수를 돕는 역할보다는,

나와 리듬 접속이 허용된 이들과 함께

다른 프로젝트를 하는 역할로 이 일을 할 것이다.


그런 인물들이라면 이 글을 보고 스스로 알 수 있을 수도 있고,

언젠가 자연스럽게 프로젝트에서 인연이 닿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진짜 이 길을 가고자 하는 사람들이라면,

나의 빛의 언어 스승 밑에서 수련할 수 있는 방법은 소개해 줄 수는 있다.

관문수호자가 지키는 입구를 통과할 의지가 있는 분들이라면,

그 길을 열어주고 싶다.



내 리듬을 중심으로 정렬되는 나만의 세계



아무튼 리듬 정렬이 되면 내게 필요한 인연들이 쉽게 닿고,

나를 중심으로 나의 세계가 정렬되는 것을 경험하기도 한다.


나와 인연이 잘 맞는 전문가들을 검색 몇 번으로 잘 찾기도 하고,

그런 인연들과 일을 할 때는 일의 진행이 잘 되기도 한다.


어떤 일을 진행할 때 필요한 정보가 있으면 검색 몇 번으로 쉽게 찾아지거나,

우연한 기회에 눈에 띄거나 닿기도 한다.




가장 신기한 건, 내 주변 환경의 변화였다.


나의 본가 근처는 원래 대중교통이 편하지는 않았다.

마을버스로 근처 지하철역까지 연결은 되어도,

차가 없으면 살짝 불편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계속 대중교통 노선이 늘어나서 아주 편리하게 되었다.


나는 운전을 좋아하지 않아서,

대중교통이 운전보다 불편한 상황에 한해서만 운전을 하다 보니,

흐트러진 교통의 박자가 맞춰지자, 일상이 리듬을 타기 시작했다.

삶이 내 편을 들어준 기분이었다.


기억 회수 전, 이 현상의 의미를 알지 못했을 때는

‘역시, 어디든 오래 엉덩이를 붙이고 있으면 세상이 좋아지는군.’

이러고 넘어갔을 텐데,

지금은 리듬이 정렬되면 나의 세계가 나를 중심으로 정렬되는 것도 안다.



이사 온 곳도 이런 식이었다.

좀 특수한 목적의 빵을 찾았는데,

그 빵집이 이사 온 곳 바로 횡단보도 건너에 있다든지,


내가 주로 다니는 지역들은 한 번 만에 갈 수 있는 버스 노선이

‘하필 몇 달 전에’ 개통되었다든지 하는 식이었다.



우연을 지나치게 내 위주로 끼워 맞춘 것 같지만,

사실 이런 우연이 너무 많아서 굳이 다 세세하게 언급하지 않았다.


그 정도로 많은 우연을 일상에서 계속 접하면,

사실이든 아니든 나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세상을 누리면 된다.



리듬 정렬을 끝까지 해내어

자신만의 세계가 스스로를 중심으로 정렬되는 경험을 꼭 해보길 바란다.



내 탓은 아니지만, 내 책임의 정렬을 요구하는 리듬의 초대


하나 더 언급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


때로는 리듬이 엉켜서 삶이 꼬이고,

때로는 삶이 나를 걷어차며 리듬을 정렬하라고 신호를 보낸다.


이 둘은 다르지만,

결국 내가 응답할 몫은 같다.


내 탓이 아니어도 내 책임은 맞다는 얘기다.


‘내 탓’은 내가 원인 제공자이고, 내 리듬에서 직접적으로 어긋난 것이다.

내가 순간 욕심, 분노, 어리석음 등으로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경우를 말한다.


‘내 책임’은 내가 원하든 아니든 지금 이 파동에 응답할 사람은 나라는 뜻이다.

백 번을 생각해도 나는 잘못한 것이 없고, 내가 억울한 상황이다.



특히 리듬이 내 삶을 걷어차는 방식을 좀 더 집중해 보길 바란다.


때로는 일이 꼬여야 눈을 뜨고,

사람이 떠나야 중심이 보이고,

몸이 아파야 리듬이 틀어졌음을 느낀다.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고,

피하고 싶은 일들이 반복되기도 한다.



이건 리듬이 나를 버리는 게 아니라,

더 깊이 초대하는 방식이다.


결국 내가 할 일은 같다.


그 순간의 상황에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고요함이 돌아올 때까지 뭐든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림을 그려도 좋고, 조용히 앉아 차를 한 잔 마셔봐도 좋다.


그 상황을 좀 더 빠르게 넘어가고 싶으면,

(‘빠르다’에 대한 기대치가 다를 수는 있다.

다만 내 삶으로 오롯이 살아내며 리듬을 정렬하는 것보다는 빠르다는 의미다.)


‘아이스블루 주인공’ 같이

헝클어진 진동을 비우고 나의 진짜 리듬으로 채워주는 단어들을 되뇌어봐도 좋다.



결국 중요한 것은,

나의 리듬은 내가 책임진다는 자세다.


그리고 그 리듬은 언제나 나를 가장 정확한 삶으로 데려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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