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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말려있던 시기를 우아하게 통과하는 법]

by 헤스티아
반지의 제왕과 리듬형 존재의 여정


리듬형 존재가

자신의 고유한 리듬을 끝까지 정렬해서 살아내는 과정은

반지의 제왕 이야기와 비슷한 것 같다.


애초에 반지의 제왕 정도의 에너지를 가진 이야기는,

내면의 원형 에너지를 강하게 품고 있고,

내면 여정의 진리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시작엔, 여행을 떠나기 싫지만

삶이 엉덩이를 걷어차서 어찌어찌 여행을 떠나야 하는 상황이 나온다.


처음엔 거부해도,

결국 떠나게 된다면 의욕을 가지고 출발하기도 한다.

때로는 그 길에 동료들이 있기도 하다.


처음엔 연둣빛 꽃밭처럼 평탄한 길을 걸으며,

‘다 해치울 수 있어!’ 호기로 출발한다.


그런데 길을 가면서 종종 장애물들을 만나고,

목표했던 것을 이루기 직전엔 정말로 난이도가 증가한다.



영화에서도 그때쯤엔

주인공이 처음 함께 출발했던 동료들과 다 헤어지고,

혼자 길을 가야 한다.


얼마 남지 않은 비상식량은 골룸이 나타나서 벼랑 끝으로 던져버리고,

진짜 헐벗고 굶주린 상태에서 마지막 관문을 통과한다.


리듬형 존재로 마지막 관문을 통과하는 시기도 비슷하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경제적, 사회적, 혹은 건강적 자원 등이 바닥나고,

눈앞에는 해결해야 할 어려운 문제들만 던져진다.



불안을 넘어서는 훈련: 풍요의 시선 정렬하기


많은 사람들이 이 지점을 못 넘긴다.


정말 불안하기 때문이다.



가장 흔하게 겪는 상황은,

경제적으로 추가 수익은 보이지 않는데 예상치 않은 지출이 계속 생기는 것이다.


끌어당김의 법칙 류의 신비주의 계열이든, 일반적인 자기 계발서든,

이 지점을 두고 다들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데,

그때야말로 내면의 상태를 ‘풍요’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야 한다.



내면의 질적 성장이 완전히 이루어지기 직전에,

가장 큰 시험에 들게 하는 건 ‘두려움’이다.


누에고치 속 안전한 곳에 있다가,

그것을 찢어내고 밖으로 나오는 과정은 필연적으로 두려움을 동반한다.


인간 생으로서 사람들이 가장 흔하게 느끼는 두려움은

돈과 건강으로 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보통은 마지막 단계를 통과할 때도 돈, 건강 등의 두려움으로 흔든다.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걱정하면

계속해서 내면에서 불안 에너지가 자라나기 때문에,

내가 갖고 있는 것에 집중하면서 이 시기를 통과하는 것이 좋다.




정말로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는 시기에도

적어보면 내가 갖고 있는 것들이 많았다.


아침에 눈 뜨고 세수할 때면,

적어도 수돗물 나오는 집에서 나를 챙길 수 있구나 하고 한번 의식해 본다.


그렇게 시작하면

지금 난 적어도 옷도 입고 있고,

비를 가리고 잘 수 있는 공간도 있고,

눈 떠서 내가 어떤 행동을 하기까지

무엇이든 어떤 자원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들을 찾아내어 적을 수 있다.


도서관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그곳엔 필요한 책과 이야기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기도 하다.


그 어떤 것이 되어도 좋다.

오늘 하루 미세먼지 없는 공기를 마실 수 있게 되었든,

길가의 야생화가 한 번 눈에 띄든,

내가 누릴 수 있는 것들 뭐든 찾아서 풍요와 감사로 초점을 맞추고 있어야 한다.



진동수와 명상, 삶의 리듬을 고요히 높이는 방법



명상에서 내면의 온전한 통합을 이룬다는 것은,

높은 진동수를 늘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과 같은 얘기인데,

풍요와 감사는 진동수를 끌어올리고,

불안과 공포는 진동수를 끌어내린다.


그리고 불안과 공포는

내가 의도적으로 높은 진동수를 일정 시간 이상 유지하면 저절로 사라진다.


다만, 불안과 공포는

‘의식적으로 마음가짐을 갖춘다’고 넘어갈 수 있는 현상이 아니다.


불안한 채로 ‘잘 될 거야’만 외쳐서는 진동이 바뀌지 않는다.

실제로 높은 진동수의 상태를 살아내야 한다.



언제나 내 의도대로 높은 진동수의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수련이 명상이다.


꼭 명상으로 풀어내지 않더라도,

누구든 삶의 문제들을 하나씩 넘어가다 보면 평균적인 진동수는 높아진다.


가끔 나의 어린 시절, 과거를 돌아다보면,

‘지금 보면 별 일 아닌데 그땐 왜 그렇게 동동거렸을까.’

싶은 지점들이 보인다.


지금 별 일 아니게 보인다는 말이,

이미 어떤 형태로든 그때의 불안을 넘어서 더 높은 진동대역에 올라왔다는 것이다.


내가 당시 원하는 일을 이뤄내서 넘어올 수도 있다.

아니면 내게 필요 없는 일을 괜한 불안과 집착에서 붙들고 있다가,

그것을 내려놓으면서 더 높은 진동대역으로 들어오는 경우도 흔하다.


‘이 일 아니면 안 돼’가

사실은 가짜 욕망이 흔드는 불안과 집착이었을 뿐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난 내 삶으로도 살아내고,

명상 수련도 오랫동안 해보았더니,

기회가 된다면 명상 수련의 길을 택하는 게 더 쉽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의 내면은,

질적 성장을 이루는 진동수의 단계에 이를 때까지

단계별로 과제를 내곤 한다.


그리고 그 단계가 과제를 풀어낼 때까지,

비슷한 일들을 반복해서 겪게 하기도 한다.


그 과제의 수준도 점점 높아지긴 하는데,

대신 과제를 해내면서 그걸 풀어낼 수 있는 나의 역량도 함께 높아져서,

힘들어도 어떻게든 내 삶에 진지하게 임한다면 풀어나가게 되긴 한다.



이러든 저러든,

어차피 특정한 진동수에 이르기만 하면 되니까,

명상이 조금 더 쉽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명상으로 특정 진동수에 머무는 게 또 쉬운 것도 아니긴 하다.


흔히 선불교 수련 전통에서

‘상相을 버리고 공심空心에 들라’는 상태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선불교 계통 스승 밑에서 수련을 하다 보면, 이 표현을 습관적으로 듣게 된다.


이 말의 의미나 체험이 무엇인지 알기 전에,

계속해서 이 말을 듣는다.


그리고 나의 명상 체험으로 이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하나하나 채워나가게 된다.



이론적으로는 ‘나’라고 믿고 있는 에고가 만들어낸 생각이나

탐진치 (쓸데없는 욕망에 붙들린 집착, 분노, 어리석음으로 인해 상황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는 것)를 넘어선 상태에 머무르는 것인데,


이 단계를 ‘머리로 의식적으로 지향’하면 오히려 닿을 수 없는 것이 아이러니다.


이 상태는, 나의 내면 진동수가 높아져 있으면 저절로 닿게 되어 있다.




이처럼 명상이 마냥 쉬운 길은 아니다.

그렇다고 ‘내면 진동수가 높아질 때까지 고생만 하자’는 삶도 권하고 싶지 않다.


그럴 때 제안하는 방법이,

앞서 말한 무의식 정화와 감사, 풍요의 상태 머무르기다.


불안은 ‘아이스블루 주인공’으로 고요해질 때까지 다스리면,

진동수가 더는 내려가지 않는다.


그리고 의식적으로 매 순간 감사하며, 내가 가진 것들을 풍요롭게 누리는 태도를 연습해야 한다.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 에는 아무 짝에 쓸모없어 보이는 세 가지 능력이 나온다.


사색할 줄 알고,

기다릴 줄 알고,

단식할 줄 안다.

- 밝은 지혜로 깨어있으면서, 매 순간 내가 탐진치의 어두운 욕망에 끌려가고 있는지 알아차리고,

나의 내면이 온전한 통합에 이를 때까지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내 삶에 진심이고,

있으면 있는 대로 먹고, 없으면 없는 대로 지낼 수 있는 능력.


이 능력만 갖추면 인생의 숙제를

덜 흔들리며 중심을 갖고 끝낼 수 있다는 걸 지금은 안다.


그리고 그 숙제를 끝내고 나면,

진짜 이번 생에 내가 설계하고 왔던 풍요로운 삶을 어떻게 살아낼 수 있는지 길이 보인다.



가장 우아한 손님 접대


나의 리듬 정렬 수련의 막바지 기간.

내 주변에서 일으키는 문제들을 수습하고,

타인을 위해 준비된 일반적인 취업의 길을 따르지 않으면서

나의 내면이 막연하게나마 가리키는 비전을 좇으려니,

계속 뭔가를 준비하고 시도하느라, 지출은 늘어가고 수입은 별로 없는 상태가 지속되었다.


그때도 뭔가 마감 기한이 있는 일을 준비하고 있어서,

시간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그리 많지 않은 상황이었는데,

하필이면 그 시기에 타지에서 중요한 손님들이 방문할 일들이 겹쳤다.


내가 초대한 상황은 아니지만,

일반적인 우리의 정서 상,

내가 있는 지역에 손님이 방문하면 어느 정도 대접을 하는 게 인지 상정이다.


중요한 시기에 시간을 빼는 것도 마음이 편치는 않았지만,

최대한 다른 일정들을 조절하면서 손님 접대를 위한 시간들을 빼놨다.


다른 시기였다면 좀 더 잘 대접을 해줄 수 있었을 텐데,

그때는 나와 내 주변을 지탱하기도 버거운 시기였다.

괜한 허세나 체면에 휘말려 무리하지 않기로 했다.



내 선에서 대접할 수 있는 괜찮은 식당들을 찾고,

우리 동네에 와서만 맛볼 수 있는 빵을 준비하고,

관광객들은 잘 안 가지만 내가 자주 들르는 아지트로 안내했다.


내가 가진 자원으로 가장 우아하게 대접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다행히 손님들도 만족해했고,

애초에 나에게 기대기 위해 이곳을 방문한 것도 아니었기에,

더 이상의 대접도 마다했다.


굳이 이 에피소드를 꺼내는 이유는,

내가 ‘내면의 우아함’을 의식적으로 내내 유지하려 애썼던 이벤트였기 때문이다.


일상에선 매일 일어나는 숙제를 해내기에 급급했으니...


우아함은 가진 자의 여유가 아니라,

아무것도 없을 때도 흐트러지지 않으려는

존재의 마지막 품격이기 때문이다.




우주는 가장 말린 시간에도 내 손을 놓지 않는다


리듬 정렬을 완성한 이후,

내게 펼쳐진 설계도에 따라 매일 예상할 수 없는 일들을 맞닥뜨리게 되었다.


좀 당황스럽긴 해도, 결과적으로는 행복한 경험들이긴 한데,

문제는 예측이 잘 되지 않고,

그 순간의 파동이 도착하면 급작스럽게 일이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어느 날도 급작스럽게 짐을 싸서 출장 비슷한 여행길에 오르게 되었다.


그때 옷장을 뒤져서 옷을 맞춰보니,

즐겨 입던 시기가 달라서 매치할 생각을 못했던 옷들이,

출장에 필요한 조합으로 딱 들어맞았다.


내가 살아오는 동안,

지금 이 순간에 필요한 것들은 하나씩 다 갖춰지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억 회수 이후, 나의 내면으로부터 받은 응원이 있다.

‘네가 너의 리듬의 중심을 지키고 사는 한, 우주는 너를 버리지 않는다.’




가장 말려있던 시기,

아웃렛 매장 같은 곳에서 정말 부담 없는 가격에 구하게 된 카디건이 있다.

반짝이는 금사가 함께 짜여있는 샴페인색 카디건이다.



그땐 별생각 없이 샀는데,

출장 갈 때 가지고 갔던 옷들에 전부 이 카디건이 어울렸다.


그리고 기존에 갖고 있던 옷들의 멋을 한층 더 살려주게 되었다.



그래서 내게 이 카디건은 우주의 응원을 담은 옷이 되었다.

가장 말려있던 시기에도,

우주는 늘 내게 가장 필요한 것을,

내가 닿을 수 있는 범주에 놓아주었던 상징 같은 것이다.



내가 헤르만 헷세의 싯다르타처럼,

사색하고,

기다리고,

내 수입 수준에 맞게 적게 쓰면서 우아함을 유지할 수만 있다면,

그때도 필요한 것들은 어쨌든 다 구해졌다.



존재의 고유한 리듬을 지켜오고,

파동의 질서를 따라 가장 정직하게 살아오면,

어쨌든 우주는 우리 리듬형 존재의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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