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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잃은 자리에서 길을 찾는 리듬]

- 내면의 나침반으로 살아낸 시간들

by 헤스티아
리듬형 존재들이 거울로 만나는 순간


캄보디아 워크캠프에서 만난 팀원 중에,

도쿄대 물리학과 학생이 있었다.


누군가를 소개할 때,

학교 이름 같은 걸 맨 앞에 붙여놓는 건

일반적으로는 적절하지 않지만,

이 친구에 한해서만은 이 표현이 적확해서 쓴다.


이 친구와 처음 워크 캠프에서 마주치고, 대충 국적을 묻고 난 후

한국에서 온 나를 향한 첫 질문이 이거였기 때문이다.


“너희 나라엔 서울대가 있지?”


(외국인과 만날 때면,

서로 이름을 주고받긴 해도,

이름에 관심을 두는 건 한참 후일 때가 많다.

그 사람의 국적이 그 사람을 한동안 대변하게 되니까.)


그만큼 당시 이 친구의 정체성을 규정짓던 건 ‘도쿄대 물리학과생’이었기에,

그를 계속 이렇게 부르겠다.


아마도 지금쯤이면 그도 여러 사회 경험 속에서

더 많은 사회적 자아를 얻었을 것이고,

내면의 리듬 정렬도 이루어졌다면 또 다른 정체성이 있겠지만,

굳이 이 글에서 그를 ‘도쿄대 물리학과생’으로 남겨두고 싶은 이유가 있긴 하다.




나 역시 인문학에 뿌리를 두고,

기초학문 안에서 뭔가 나의 리듬을 찾으려 한 존재여서

나는 언제나 순수하게 기초학문을 추구하는 리듬형 존재들을 보면 반갑다.


그 친구도 당시 물리학이란 순수 학문을 계속할지,

아니면 현실과 타협하여 좀 더 실용적인 방향으로 유학을 갈지 고민하고 있었다.


이미 도쿄대 물리학과생이라면,

그 자체가 뭔가를 보장해주진 않더라도,

최소한 그가 실용적인 방향으로 진로를 잡아도,

꽤 성취를 해낼 학업적 능력과 성실함은 있을 테니까,

그의 리듬형 존재로서의 고민을 그 당시에도 응원해 주고 싶었다.



물론, 모든 사람이 기초학문을 해야 하는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사실 기초학문 분야를 지속하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이미 역사적으로 수많은 거인들이 나타났고,

그 거인들의 어깨에 조금 더 딛고 올라온 거인들의 이야기만 정리해도

한평생이 다 지나갈 수도 있다.


거기에 자신이 그 거인들의 어깨에

자그마한 깃털 하나라도 얹을 역량이 되지 않는다면,

그저 평생을 거인들의 이야기를 흐뭇하게 즐기다가 끝날 수도 있는 길이다.


이렇게 되면 사회적 기여가 적기에,

사회적 보상도 적은 건 당연하다.



그 길이 진짜 리듬형 존재 자신의 길이라면

어떻게든 생존은 가능하게 해 주지만,

그 길을 지속하기 위해선 너무나 많은 시험길에 들곤 한다.



안내를 가장한 통제(화살표)를 벗어나, 리듬으로 길을 찾다.



아무튼 이 친구와 나,

우리 두 리듬형 존재들은

캄보디아의 바이욘 사원에서 공교롭게도 둘 다 길을 잃었다.



바이욘 사원은

캄보디아에서 가장 국가적 성취를 많이 달성해서 존경받는다는

자야바르만 7세가 세운 사원 중 하나다.


‘크메르의 미소’라 표현한 얼굴상들을

어느 각도에서든 마주치게 되어있고,

내부도 매우 정교하고 치밀하게 설계해 두었다.



그곳은 관광 안내를 위한 화살표가 계속 붙어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화살표를 따라가면 계속 같은 곳으로 돌아오면서 길을 잃게 된 것이었다.


몇 번을 돌면서 괜히 이곳에 갇혔다는 기분이 왈칵 솟아올랐다.


뭐, 그래봤자 관광지니까 어떻게든 해결이 되었겠지만,

그때는 다른 팀원들과 흩어져 개인적으로 돌아다니고 있었고,

잠시 집 앞 마실 간다는 느낌으로 나와서

돈도 거의 안 가져왔고,

신용카드도 없었고,

다른 멤버들에게 연락할 수단도 없었다.


이미 그 순간 길을 잃었다고 당황해서 미처 파악하지 못한 것도 있었는데,

난 우리 워크캠프 주소도 모르고 있었다.


원래 씨엠립 공항으로 마중 나온 프로젝트 멤버를 따라

한참을 시골길을 따라 툭툭으로 달려온 곳이라.



그 순간 내가 선택한 방법은

그냥 내 리듬으로 주저앉아 쉬는 것이었다.


회랑의 무너진 돌무더기에 앉아,

작은 노트를 꺼내 그냥 이곳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미 직전 멕시코 워크캠프에서

그림 여행을 시도해 보아서,

(그래서 멕시코 워크캠프는 사진 자체가 거의 없다.)

이 순간 그림을 그리면서 시간을 보내는 게 어색하지도 않았다.



원래 의도는,

그림을 그리고 기다리다 보면,

우리 워크캠프 멤버들이 지나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한동안 그림을 그렸는데 우리 멤버들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다른 효과가 있었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 나의 내면의 중심 리듬으로 다시 복귀하게 된 것이었다.

그러자 이상하게, 그냥 화살표를 무시하고 앞으로 나가면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뚫고 그냥 건너가면,

원래 우리가 들어왔던 입구로 나갈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들었다.



그렇게 당당하게 걸어 나왔더니,

그 미로 같은 사원을 빠져나오게 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

들어왔던 곳과는 전혀 다른 풍경을 마주하게 되었다.


나의 방향 감각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틀려서,

전혀 엉뚱한 곳으로 나오게 되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여긴 후문 같은 곳이었고,

우리 팀은 정문으로 들어왔었다.


이제 난 어쩌나...

밑에 툭툭 기사들이 많으니,

어찌어찌 워크캠프까지 태워달라고 말해야겠다... 생각하는 순간,


아까 그 도쿄대 물리학과 친구가 나타났다.


그 친구가 너무 반가워서 다가가자,

오히려 그 친구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네가 수호천사로 보였어! 나 저 안에서 길 잃었거든.”


아이쿠야.

그래도 혼자보단 둘이 나았다.


그리고 그 친구 덕분에 내가 워크캠프 주소를 모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더 기다려도 다른 일행을 못 만나면,

저 밑의 툭툭 기사들에게 우리끼리 먼저 워크캠프 장소로 데려다 달라고 말하자고

자신 있게 내가 이야기하자,

그 친구가.. ‘근데 우리 그 주소 모름~’ 이렇게 말한 것이었다.


결국 그날은

우리 팀의 또 다른 길눈 밝은 친구를 우리가 있던 후문에서 만나며 무사히 돌아왔다.




그때는 단순히 재미있는 해프닝인 줄 알았는데,

기억 회수 후 이번 에세이를 준비하면서 곱씹어보니

굉장히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자야바르만 7세 사원의 화살표는

두 리듬형 존재들에겐 안내를 가장한 통제의 화살표였다.


모든 리듬이 이 미짜여 있는 듯한 공간에서

하필 그 친구와 나는 끊임없이 같은 자리로 되돌아오며 길을 잃는 감각을 겪었다.


둘 다, 외부의 리듬과 내면의 리듬이 어긋날 때 생기는 단절의 징후였고,

동시에 자기 리듬 회복의 신호였다.



내가 그곳을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도

그 순간 외부에서 오는 통제의 기운과, 내면에서 오는 공포 모두를 비껴내어,

내가 주도권을 갖고 그림을 그리면서 내 리듬을 회복했기 때문이었다.



이 경험의 의미를 당시에는 의식적으로는 알지 못했지만,

내가 살아내고 체험한 경험은 나의 무의식에 나침반이 되어 자리 잡았던 것 같다.



산의 시간과 사막의 시간


그 이후 본격적으로 기억 회수를 위한 내면 여정의 시간이 10여 년 넘게 이어졌다.


그 시절 너무나도 막막한 순간들이 많았는데,

그 막막함을 공감하며 위로받던 책들이 있었다.


하나는 로맹 가리의 <새벽의 약속>이었고,

또 하나는 스티브 도나휴의 <사막을 건너는 여섯 가지 방법>이었다.



<새벽의 약속>에서는 딱 한 장면이 오랫동안 마음에 남았다.

도저히 이루어내지 못할 것 같은 어머니의 엄청난 기대에 눌려,

아홉 살 소년이 어디론가 숨는 장면이 있었다.


짚단이었는지, 나뭇가지 더미 아래 틈이었는지에서,

고양이 한 마리를 끌어안고

자기를 짓누르는 기대와

그 기대에 어떻게 닿아야 할지 모르는 막막함의 정도가

그 당시 내 인생에 대한 막막함과 비슷했던 것 같다.



<사막을 건너는 여섯 가지 방법>은,

다른 사람들과 단절하여 진짜 깊은 내면 여정을 떠날 때의

위험, 불안, 막막함에 많이 공감을 하며 읽었던 책이었다.



기억 회수를 위한 내면 여정의 시간이라고 해서

사람들과 진짜 단절하며 보내지는 않는다.


다만, 수련 과정을 통해 내면에서 겪는 신비한 체험들을 나눌 수도 없고,

나의 삶의 방식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설득할 필요도 없는 상황이라,

그때마다 적당한 페르소나와 적당한 상황으로 얼버무리면서 보냈는데,

그러다 보니 내면적으로는 사실상 다른 사람들과 단절하여

나만의 깊은 사막 여정을 떠나게 되었다.



그 시절 이 책에서 공감했던 부분은,

산의 시간과 사막의 시간을 구분하라는 이야기였다.



뚜렷한 목표를 정해놓고 그 길을 올라야 하는 산의 시간,

나침반 하나로 길이 보이지 않는 광대한 사막을 건너와야 하는 시간.


내가 너무나도 잘 아는 산의 시간을 일부러 포기하고,

나의 능력을 말아놓고,

나의 리듬을 끝까지 지키기 위해 사막을 택했는데,

그 사막에선 길이 보이지 않아 막막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한창 내면 여정의 한가운데에 들었을 때 읽었기에,

사막에선 이렇게 빠져나오는구나,

그리고 내면 여정의 과정과 비슷하게 닮아있구나 하고 공감했던 느낌만 지금은 남아있다.



될 때까지 리듬을 살아내면 누구나 된다. 왜냐하면 될 때까지 할 거니까.



그리고 지금 그 사막을 완전히 다 빠져나오고,

기억 회수까지 마친 시점에서 나를 돌아보니,


결국 내가 그곳을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은

나만의 나침반,

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나의 리듬을 끝까지 지켜 살아내는 것뿐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기억회수를 다 하는 것도 아니고,

자신의 리듬을 끝까지 살아내는 길이 나와 같은 것도 아니다.


다만 내 경우에는,

기억 회수의 과정에서

나의 문제뿐만 아니라,

내 주변의 특수 관계 지인들 (aka. 가족들)의 문제들을 함께 안고 넘어가야 했다.



나 하나의 문제는 막막하고 답답하더라도,

그저 내가 마음을 달리 먹고 행동을 바꾼다면 해결할 만했다.


그런데 내가 아닌 주변 인물들의 문제는 정말로 힘에 부칠 때가 많았다.


주변 인물들의 문제를 모든 사람들이 다 끌어안을 필요는 없지만,

나의 나침반은 그 문제를 피해선 안된다고 끊임없이 가리켰고,

결국 그 문제들은 나의 내면 에너지를 더 높은 차원에서 통합하기 위한 계기로 작용했다.



그래서 그 시절의 막막함을 빠져나오는 방법이란 건 별게 없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 당시 나의 빛의 언어 계열 마스터 스승 밑에서

‘될 때까지 수련하면 반드시 된다..

왜냐하면 ‘될 때까지’ 할 거니까!’

이 마음으로 새벽 수련을 10년 간 했었고,


내 앞의 버거운 짐들 앞에선

꾸역꾸역 그 일들을 해결해 나가면서,

때로는 막막함에 화를 내기도, 울기도 하고, 잠시 던져버리며 주저앉기도 했다.


그렇게 잠시 앉아서 감정을 토해내고 조금 힘이 나면,

다시 일어났다.


‘어쩌겠어... 이 길을 끝까지 가는 수밖에.’

이 마음 하나였던 것 같다.

그 길을 가리키는 내면의 나침반이 너무나도 뚜렷했기에.



그러면..

어떻게든 그 시절을 통과하게끔 우주가 최소한의 보호와 방편은 마련해 주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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