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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월 moon Apr 30. 2024

모녀관계

#나의못갖춘마디#내삶의빈자리#생각보다,다정한세상

내가 어쩌자고 브런치북 연재 제목을 이렇게 지었을까?

여전히 말하고 싶지 않은 이 관계에서 매듭짓고자 하는 무언가가 있었으려나.






보편적인 관계의 모습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만 유독 강하게 작동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가족관계든 친구관계든 스승과 제자 관계든 우리가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관계의 모양이 있다.


이제껏 나는 그 보편적인 관계의 모습 중 '가족'이 제일 불편했다.

그 보편적인 가족의 모습을 조금도 느껴보지 못했고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에게 가족은 언제나 무거운 짐이었다.

이유를 매번 설명해야 했고, 그 설명은 나에게 피곤하고 구차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나니 특히 모녀관계가 그렇다.

엄마와 딸의 관계는 시간이 지날수록 좋아진다고 하지 않던가?

특히 딸이 자식을 낳고 난 이후에는 엄마와 더 각별한 사이가 된다고들 하더라. (도대체 어느 포인트에서)


그 보편의 관계는 그저 보편의 관계여서 모든 이에게 똑같지 않음이 씁쓸했다.

내 삶의 결핍, 나의 부족함으로만 여겨졌다.

지금도 가끔은 그렇다. 나의 모자람으로 느껴져, 아무 이유 없이 나 스스로가 부끄럽기도 하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이었음에도 나는 이 관계를 놓기가 쉽지 않았다.

보편의 관계 속에서 살아온 주변인들의 말도 마음으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웠다.


'그래도 부모인데..'

'돌아가시고 나면 후회한다.'와 같은 종류의 말들.


나를 무언가에 옭아매는 것 같았다.

나를 더 무거운 책임감으로 누르는 것 같았다.






올해 봄이 시작될 무렵, 시어머니께서 오랜 고민 끝에 말씀을 건네셨다.


"내가 사돈에게 전화를 한번 해볼까 해. 손주들이 많이 보고 싶으실 거야. 내가 손주들 볼 때마다 마음에 걸려."


"아...."



무어라 대답을 하기가 힘들었다.

그렇게 하시라고 하기도, 그러지 말라고 하기도.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계절이 지나서 여름이 가까워 오고 있는 얼마 전 어머님이 다시 말씀을 꺼내셨다.


"엄마에게 전화드려봤어."



심장이 덜컹 내려앉을 줄 알았는데, 그 말을 듣는 내내 덤덤했다.


"아, 괜찮으셨어요? 잘 지내고 계신데요?"


"전화를 받으시기는 했는데, 말을 한마디 밖에 못했어."


"... 네? 왜요?"


"전화를 했는데 답을 좀 늦게 했더니 엄마가 대답을 하라고 소리를 치셔서, 죄송하다고 하고 끊었어."


"아..."



어머님과 엄마의 통화는 이랬다.

어머님의 전화를 받기는 했단다.


엄마. "여보세요"


어머님. "아 여보세요"


엄마. "네 누구세요?"


어머님. "아 네 저..."


엄마. "전화를 거셨으면 말을 해야지, 왜 말을 안 해요!!"


어머님. "아. 네... 저 죄송합니다..."



난 헛웃음이 났다.

어머님께 죄송하고 민망했다.


엄마가 어떤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을지 그림처럼 그려졌다.

엄마는 젊을 때부터 힘이 셌다. 목소리도 크고.

활화산 같은 엄마는 아직도 그대로인 것 같았다.

언제나 화가 잔뜩 나 있던 엄마. 언제나 나를 노려보던 눈빛.

엄마는 몸이 아픈 날도 기운이 셌다. 몸이 아픈 날도 누워서 몸을 쉬게 해 주면 좋으련만, 엄마는 끝없이 원망의 말을 쏟아내며 집안일을 했다. 살림을 부수는 것처럼.

엄마는 그만큼 화가 많이 나 있었다. 매일을.


엄마 나이가 이제 일흔이 되셨다.

이제 많이 기운이 없어지실 때도 되었는데, 여전히 엄마는 힘이 센가 보다.

시어머님은 놀란 마음에 대화를 채 이어가실 수 없으셨던 것 같다.

그 짧은 통화가 이해가 되었다. 아주 잘.


"어머님 죄송해요. 제가 너무 민망하고 좀 부끄러워요. 죄송해요."


"아니야. 뭘 네가 죄송해. 내가 대답을 빨리 못해서.. 그런데 화가 많이 나신 목소리여서 너무 놀랐어."







내 마음을 살펴보려고 했다.

시간을 두고 천천히.


놀랍게도 마음이 크게 힘들지 않았다.

화가 나지도 않았고, 마음이 슬프지도 않았다.


아, 여전히 엄마는 그렇구나. 여전히 화가 나 있는 채로 살아가고 있구나.

여전히 힘도 세고, 목소리도 크고...


어떤 계기를 만들어서 이 관계를 가장 좋은 것으로 매듭을 지어보고자 했던 마음을 내려놓게 되었다.

내 삶의 결핍인 채로, 내 모자람이라면 모자람으로 그대로 두어도 괜찮을 것 같다.


내가 바꿀 수 없는 내 삶의 어떠함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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