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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월 moon May 05. 2024

그대들의 덕을 본 날

#예민함친구꼼꼼함#그럼에도결혼을장려합니다

글쓰기 수업을 시작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을 누가 시키지 않아도 해온 나의 취향과 수년 전 대안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던 경험이 더해졌다.


아파트에 광고를 해야 했다.


5월의 첫째 날. 온 가족이 외출하기 전 광고지를 붙이기 위해 집에서 출발했다.

전날 관리사무소를 통해 도장을 찍어두고, 당일 아침에 마스터키를 받았다.


처음에는 지하주차장을 통해 네 식구가 함께 다녔다.

시작이 즐거웠다.


"여기에 붙이자."

"그래, 여기가 제일 잘 보이네!"


두, 세동을 다닐 때쯤 남편과 첫째가 앞서 뛰기 시작했다.

결국 남편과 첫째 아이가 앞서서 다른 동으로 출발했다.

나와 둘째는 시원한 음료를 사러 카페로 갔다.


꽤 시간이 흘렀는데 마무리했다는 전화가 오지 않았다.

날이 더워서 마음이 미안했다.


차를 가까운 곳으로 주차를 하고 기다리는데 두 사람의 반가운 모습이 보였다.


"여보, 여기야! 다 끝났어?"


"아냐! 저기 저쪽에 있는 동 다녀올게!"


"엄마! 저기만 다녀오면 돼! 갔다 올게!"


남편과 첫째가 헉헉 거리면서 뛰어갔다.






광고를 붙이는 장소가 지하 3층인 동이 있고, 지하 2,3층인 동, 1층 혹은 로비만 있는 동 모두 제각각이었다.

다른 남자들이었으면 대충, 대강 붙이고 말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몇 장 남아서 손에 덜렁덜렁 들려왔을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도.


두 남자가 돌아왔을 때 정말 둘 모두 기진맥진이었다.

시간은 한낮을 향해가는 낮 11시가 넘어갔다.


고맙고 미안했다.


가족 중에 제일 예민하고 까탈스럽다고 항상 세트로 인식되어 면박을 주기도 했는데, 그 모든 시간이 미안해질 정도였다. 이 남자들처럼 꼼꼼한 사람들 아니었으면 이거 못했겠구나 싶었다.


돌아와서 영웅담처럼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니, 남편이 헷갈렸던 곳은 아들이 짚어주었단다.

정말 찰떡궁합이다!


이들의 예민함과 까탈스러움은 꼼꼼함으로 연결이 되었다.

그래서 이런 고난이도의 작업을 완벽하게 수행해 냈다.

두 남자에게 엄지 척을 백번이라도 해주고 싶었다.

궁둥이팡팡과 함께.


이들의 꼼꼼함에 덕을 본 날이다.


예민한 감각의 소유자들.

타인보다 많은 것을 보고, 느껴, 피곤하기도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작정한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꼼꼼하게 해내는 놀라운 남자들.


사랑하는 그대들,

가끔 나를 무척 피곤하게도 하지만 나는 그대들의 덕을 분명하게 보고 있는 중이라우.

몸과 마음을 다해 사랑합니다. 나의 남자들.


그나저나, 학생들이여~ 어서오라!

너희들을 위한 읽고 쓰는 수업이 준비되어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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