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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월 moon Jun 18. 2024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

#책이야기 #떠나는아내를위한레시피 #강창래작가

작년에. 지나가다가 한석규 배우가 나오는 드라마를 얼핏 보았다. 잔잔한 느낌의 서정적인 드라마 같길래 그냥 십여분 보다 말았는데 몇 주 전에 남편이 보고 싶은 드라마 시리즈가 있다고 켰는데, 그 내용이었다.

책이 먼저고 드라마로 만들어진 거라며.

나에게도 저런 작가를 한번 해보라며. 하하하하.

'여보, 나도 간절히 원하는 바야.'


암으로 세상을 떠나는 아내를 위한 남편의 레시피다.

레시피 위주로 기록을 했지만, 담담하게 쓰인 레시피 속에 남겨진 남편의 슬픔이 흐른다.


두 사람의 일상을 덤덤하게 적어 내려갔지만, 드라마에서 두 사람은 별거 중인 상태로 등장한다.

서로의 차이를 더 크게 느끼고, 그 차이는 좁아질 수 없는 것으로 매듭을 지은 두 사람은 그렇게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으려 했다. 남편이 먼저 서류를 작성하고, 아내에게 그 서류를 넘기고 그 후에 두 사람은 아내의 암 투병기를 함께하게 된다. 아내가 그의 병을 알리고, 치료의 과정을 보내면서 집에서 식사를 담당해 주기를 남편에게 부탁하면서 두 사람의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그려진다.


요리에 문외한이었던 남편은, 아픈 아내가 먹고 싶어 하는 것은 무엇이든 좋은 재료로 최상의 맛을 내기 위해 애쓴다. 시간은 흘러가고 아내는 점점 먹을 수 있는 것이 적어진다. 병이 깊어 가는 과정이다.

글도, 드라마도 참 덤덤하게 그리고 있는 이들의 일상은 그래서 더 깊이 슬픔 그대로 전해지는지도 모르겠다.


드라마에서도 그랬는데, 책에서도 예고 없이 아내의 장례 후 이야기가 등장한다.

아니, 예고 없다는 표현은 적절치 못하다. 끊임없이 아내의 병을 이야기하고 있었으니까.

바로 직전까지 살아있던 아내는 결국 아들과 남편을 남기고 떠난다.

죽음을 준비했지만, 죽음을 준비했다는 말이 무색하게 죽음은 언제나 갑작스럽다.

나 역시 드라마에서도 책에서도 깜짝 놀랐다.


삶과 죽음은 이토록 가까운데…

영원을 살 것처럼 살아간다.

죽음을 실감하고 살아야 지금의 일상이 소중해진다는데, 죽음은 먼 훗날의 이야기가 될 것처럼 나는 지금도 사랑을 유보하고, 용서를 멀리하고, 감사를 무감각하게 만들어버리는 일에 익숙하다.


살아있다는 것은 먹을 수 있다는 것.

먹을 수 있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것..

병이 악화될수록 점점 먹을 수 있는 것이 줄어가는 아내를 위한 남편의 레시피는 절절하다.

아내를 떠나보낸 후의 글들은 눈물이 차오른다. 


다시 한번 가족을 돌아보게 만들었다.

부부의 관계를 다시 들여다보게 했다.

성격차이를 이유로, 매듭짓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나의 못된 습관들이 "죽음"이라는 커다란 문제 앞에서 아무것도 아닐 수 있음을 깨닫는다.

나와 다르다는 것은, 정말 중요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책 속에서, 드라마에서 이 부부는 함께 투병생활을 해나간다.

이혼하기로 했던 부부가 맞나 싶을 정도다.

투병생활하는 중에 갈등이 없었을까? 그렇지 않았다.

두 사람은 종종 목소리를 높였고, 서로의 다름으로 인해 뾰족한 말들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래도 함께 살아갔다.

약속처럼 찾아올 죽음이 조금이라도 더디게 오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어느 날에는 일상처럼 밥 한 그릇 뚝딱하고, 소파에 앉아서 웃는 아내를 보며 남편은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기뻐한다.

백년해로를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아내는 곧 마약성진통제가 아니면 견딜 수 없는 고통을 또 마주한다.

고통 앞에서 함께 고통스러워하는 것 외에는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는 남편은 절망하고 슬퍼한다.


모두에게 주어진 유한한 시간과 가족이라는 존재를 다시 고민하게 하는 책이다.

그래서 더 사랑하기로, 그래서 더 용서하기로 주저 없이 결정하게 한다.

고통이 없어서 삶이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고통스러워도 살아가고 있기에 삶은 아름답고 가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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