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이크는달았습니다만...네, 제 아들입니다.
"도대체 픽시는 왜 사주나요?"
"픽시 사주는 부모도 제정신이 아니에요."
"자기만 죽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도 죽일 수 있다고요."
"제발 사주지 마세요."
내가 사는 지역 온라인 카페에서 자전거 '픽시'를 검색하면 나오는 내용이다.
이 정도로 픽시 자전거에 대한 인식이 안 좋고, 위험천만하다는 평이 일색이다.
그만큼 아이들은 브레이크 없는 경주용 자전거인 픽시를 타고, 음악을 크게 튼 후 도로 위를 질주한다.
근래에는 브레이크를 달고 판매하는 경우가 많아졌지만, 아이들이 이 자전거를 구매하는 이유는 오로지 '멋'이기 때문에 브레이크 없는 픽시, 픽시를 타고 하는 묘기가 가장 인기인 듯하다.
내 아이도 제외가 아니다.
역시나 유행이 시작되자마자 픽시타령에 들어갔다.
이미 작년에 사준 MTB자전거도 있으면서 말이다.
아이의 눈에는 오직 픽시였다.
자전거에 전혀 관심이 없던 나는 아이가 아니었다면 하지 않았을 자전거 공부를 반 강제로 하게 되었다.
남편과의 대화도 자전거가 주를 이루었다.
픽시는 실내에서만 타는 경주용 자전거다.
브레이크가 없기 때문에 도로에서 타는 것은 불법이다.
더군다나 아이들은 헬멧도 쓰지 않으려고 한다.
오직 멋과 폼으로 픽시를 택한 아이들은 헬멧과 브레이크가 거추장스러운 것일 테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금 우리 집에는 픽시가 들어왔다.
픽시는 비싸다. 그리고 내 기준에서는 정말 위험한 것이었다.
그런데 우리 집에 들어왔다.
아이가 간절히 원하는 것을 어느 부모가 사주고 싶지 않을까.
아이가 자라면서 원하는 것을 손에 쥐어주고 기뻐하는 아이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큼 부모가 누릴 수 있는 기쁨은 또 없다.
그 순간 더할 나위 없이 기쁘고, 기쁘다.
나도 똑같은 부모다.
두 달을 꼬박 씨름한 것 같다.
브레이크가 없으므로 그만큼 위험한 까닭에.
그리고 아이에게 사주기에 지나치게 고가라는 이유로.
시간이 지나도 아이는 간절히 원했다.
나도 아이도 고민에 고민을 하고, 조언을 구하고. (아이는 픽시를 사기 위한 고민이었겠지만.)
우리 부부가 찾은 합의점은 키에 맞는 자전거로 브레이크가 부착되어 있는 픽시를 알아보는 것이었다.
시간을 들여 자전거 판매점을 직접 가보고, 온라인을 뒤졌다.
(이 과정에서 아이와의 입씨름, 의견 충돌, 감정 대립은 말로 다 적을 수가 없다. 아이가 이해되지 않는 순간이 많아졌고 저 아이가 내가 낳은 아이가 맞는지에 대한 후회가 밀려왔다. 한편으로는 자전거를 사주고 내쫓아버리고 싶을 만큼 아이가 밉고 싫었다. 간신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진정하고 다시 대화를 시도하면 날카로운 말로 부모를 찌르고 비난하고 자신의 욕구만을 이야기하는 아이와의 반복되는 대립이 반복됐다.)
수많은 대화 끝에 픽시를 사주었다.
자그마치 부산에서 왔다.
지금 내 아이가 탈 수 있는 사이즈의 유일한 크기였고, 브레이크를 장착해서 보내주는 것이었다.
가격은 상당히 비쌌다.
아이는 세상을 다 가진 듯 기뻐했고, 주문을 완료한 사람은 나였으나 나는 반포기 상태였다.
그 후로 아이와의 대립과 씨름은 줄어들었을까?
아니, 그렇지 않다. 결코.
픽시는 아이의 사춘기를 알리는 종이 었다.
아이는 그 후 다른 소소한 문제들로 날을 세웠다.
생활습관의 문제에 대한 일상적인 잔소리에 나라 잃은 사람처럼 목소리를 높였고 통하지 않는다 싶으면 울며불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자신의 논리를 끝도 없이 펼쳤다.
그 논리 속에 가장 힘든 순간은 나를 비난하는 말이었다.
일상의 순간에도 나는 논리적인 사고를 자주 펼치는 까닭에 남편은 장난기 섞인 말로 "그래, 당신은 정말 논리적이야."라며 나를 놀린다.
그런 내가 듣기에 아이가 펼치는 말들은 전혀 앞뒤가 맞지 않고, 매우 자기중심적이었다.
본인의 잘못으로 일어난 일들에 부모의 반응이 친절하거나 따듯하지 않으면 백 프로 부모에게 그 원인을 찾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 처음에는 '어디가 아픈가' 싶었고, 이 모습이 성격이 될까 하는 염려가 찾아왔다.
처음에는 바로잡아주어야 한다는 생각에 당연스레 훈육했고, 매를 들기도 했다.
꺾어야 할 고집인가 싶어서 아이를 따로 방으로 불러서 감정을 받아주고, 경계를 명확하게 그어주었다.
어떤 부분은 잘 듣는 것 같았지만, 어떤 부분은 벽을 마주하는 것 같았다.
여러 번 고비를 지나고, 지지부진한 씨름의 시간, 아픈 갈등의 시간을 지나면서 지금 아이의 이 시간이 내가 받아들여야 할 '시기' 임을 깨닫고 있다.
이 브런치북을 연재하면서 아이의 시간과 나의 시간을 건강하게 지나가는 방법을 발견하고 싶다.
이전보다 성장하고 우리 안의 평화를 다시 찾고, 마음과 마음이 연결되기를 기다리고 싶다.
조금 더 어른이고 싶다.
애증의 픽시가 알려준 내 아이의 시간이 안전하게 지나갈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