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로 고꾸라져도 괜찮아

스승님의 좋은 영향력

by 밤 비행이 좋아




그날 나는 유독 산만했다. 옆사람 팔이 보이고, 앞사람 뒤통수가 보였고, 수련이 끝나고 있을 작은 이벤트가 생각났다. 자꾸만 다른 생각이 치고 들어왔고 결국 시르사사나(물구나무, 머리서기)를 하다 뒤로 넘어갔다. 내가 두세 번 뒤로 고꾸라져봐서 아는데 물구나무는 생각보다 천천히 무너진다. 등, 허리, 엉덩이가 차례대로 닿는 게 느껴질 정도다. 왠지 무너질 것 같은 불안한 마음에 그만 내려올까 싶은 순간 몸은 벌써 뒤로 넘어가고 있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생각보다 고통은 덜하지만 소리가 너무 크게 나 당황하고 만다.

쿠웅 (할 수만 있다면 글씨 크기를 키우고 진하게 강조했을 거다)

멀쩡히 물구나무 잘 서고 있는 다른 분들께 미안할 정도로 큰 소리가 났다. 민망해지려는 찰나 멀리 계시던 스승님이 말씀하셨다.

괜찮아. 괜찮아.

아,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갔다. 근데 사실은 괜찮지 않다. 집에서 혼자 연습하다 넘어갔더라면 스스로에 대한 실망과 분노로 인해 매트를 내리쳤을지도 모른다. 또 넘어가면 어쩌나 두려운 마음에 다시 도전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경험상 '누구나 넘어진다, 별 일 아니다, 한번 더 해봐라'처럼 용기를 북돋아 주는 듯한 끝이 내려간 괜찮아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다급하게 다가와 전하는 끝이 올라간 괜찮아 보다 훨씬 힘이 된다. 신기하게도 ‘괜찮아’라고 말씀하시는 낮은 톤에 정말 괜찮구나 넘겨버리고 다시 물구나무를 섰다.

뒤로 고꾸라지더라도 스승님 앞에선 괜찮다.


instagram @sasintipchai


나에게는 미루는 버릇이 있다.

이건 내일 마무리하자, 이건 조금 이따가 시작하고, 이 기사 괜찮네 저장해 두자.

나중에 읽으려고 저장만 해둔다. 나약한 의지로 습관적으로 미루는 내가 수련실을 묵직하게 울리며 뒤로 고꾸라져도 미루지 않고 수련을 지속할 수 있는 이유는 좋은 스승 덕분이다. 나에게 들어오는 그녀의 좋은 영향력과 그로 인해 변화하는 스스로를 인지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코로나 여파로 전국의 모든 체육시설이 강제로 문을 닫아야 했던 지난달, 집에서 자율 수련을 이어갔다. 물론 의지를 시험하는 나날이었지만 왠지 방문 근처에서 누군가가 보고 있는 것 같아 포기할 수 없었다. 가르침을 떠올려 가며 차분히 수련을 해 나간다.




요즘 들어 약속이라도 있는 날이면 요가 지도자 과정을 듣고 있다고 은근슬쩍 흘리곤 한다. '요가 철학도 배우고, 해부학도 배운다. 맨날 수련해야 하는데 나중에 지도자 과정 따면 내가 몸 한번 쫙 풀어주겠다.' 허세도 부려본다. 친절한 사람들은 재미없는 나의 이야기에 의외로 귀 기울여 잘 들어준다. 종종 깊은 관심을 표현하며 질문을 던지는 이도 있다. 하루는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진지하게 물었다.

아니, 나도 물구나무를 서보고 싶어서 유튜브 보고 시도해 봤는데 머리가 너무 아프더라구요.
잘하면 1시간도 서 있는다면서요! 어떻게 그래요?

나는 진지한 얼굴로 답했다.

물구나무 머리로 서는 게 아니에요. (엄격, 근엄, 진지)


그리곤 재빠르게 머리를 굴려 바로 며칠 전 내가 했던 1차원적인 질문을 생각해 냈다.

'선생님, 물구나무 설 때 머리가 더 아파요, 팔이 더 아파요?'
'둘 다 아니에요. 가볍게 서기 때문에 머리도, 팔도 아프지 않아요. 물론 처음엔 다 그렇죠. 반다를 조이는 힘과 전거근의 힘으로 몸을 가볍게 드는 거예요. 대신 안은 단단하죠. 그래서 항상 발끝 포인트 하고 다리 안쪽을 꽉 붙이라고 하는 거예요'

지인에게 똑같이 얘기해줬다. 마치 나는 이미 깨달았기에 머리에 고통 따위는 느끼지 못하는 수련인처럼 아는 척 좀 해봤다. 스승님이 보셨다면 피식하셨을 거다.




며칠 전 스승의 날이었다. 정규 교육 12년, 대학 4년 그 외 각종 학원을 다니며 ‘선생님’이라고 불렀던 수많은 분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불특정 다수에게 선생님이라고 불리는 기분은 어떤 건지 잠시 상상해보다 나는 몇 분의 선생님을 기억하고 있나 떠올려 봤다. 배은망덕하게도 어떤 얼굴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왜 선생의 날이 아니라 스승의 날이라고 하는지 궁금해졌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선생'과 '스승'의 정의가 달랐다.

선생은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 스승은 가르쳐서 인도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스승이라는 단어에는 무게가 느껴진다. '나는 선생이고 너는 학생이야!'처럼 어쩌다 만난 사제관계라던가 '어머니 저를 믿으셔야 합니다.'와 같이 뚜렷한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만난 관계와는 결이 조금 다르다고 믿는다. 스승은 단순히 새로운 지식을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길을 제시하고 안내해주는 인도자로서 누군가의 삶에 좋은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다. 인도에서는 요가 지도자를 구루(guru)라고 부른다. 산스크리트어로 정신적 스승을 의미한다. 물론 모든 요가 지도자를 구루라 칭하는 건 아니다. 끊임없는 육체적, 정신적 수련을 통해 자신을 갈고닦는 사람만이 구루라고 불릴 수 있다. 유네스코에서도 요가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요가는 스승(Guru, 구루)과 제자(Shishya, 시스야)의 관계를 통해서 전수되고 있으며, 구루야말로 관련된 지식과 기술의 주요 관리자라고 할 수 있다. (2016년 유네스코 무형유산으로 등재)


어쩌다 만난 관계라고 생각했는 데 운이 좋아 매년 스승의 날이면 떠올릴 스승을 만나게 되었다. 덕분에 요가 철학과 아사나를 배우며 언젠가 나도 좋은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매일 요가 수련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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