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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래 Feb 24. 2021

번역의 세계에 입문하다


‘글’에는 생각보다 강력한 힘이 담겨 있다. 비밀스럽게 새어 나오는 신비로운 힘이 읽는 이로 하여금 글자 사이에 숨겨진 존재의 비호를 받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게 한다. 언어의 세계는 광활한 우주와도 같아 손끝에서 탄생한 단어는 창작자의 의지를 훌쩍 뛰어넘어 무중력 상태를 유영하듯 퍼져 나간다.     


오후 5시, 망리단길에 있는 카페 한 곳에 들어가 자리 잡았다. 푸르스름한 어둠이 깔리는 시간에는 유독 집중이 잘 된다. 번역 과제 마감이 내일까지인데 아직도 초벌 번역을 붙잡고 있다. 번역을 업으로 삼아야겠다고 마음먹자마자 번역아카데미에 등록했는데 결과적으로 매주 과제에 허덕이는 중이다. 결코 많은 양은 아닌데 마감일에 허덕이며 당일까지 노트북을 붙잡고 읽고 또 고친다. 


기본적인 번역 ‘기술’과 ‘규칙’을 배우면 문학 번역쯤은 금방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본인의 영어 실력에 대한 근거 없는 자신감과 언어 능력에 대한 자만심으로 낭패를 보고 있다. 큰 착각이었다. 번역의 세계는 냉혹하다. 애초에 내 것이 아닌 작품을 읽고 주관적인 해석을 최대한 배제한 채 그대로 옮기는 일이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내 글을 쓸 때 무한대로 펼쳐나가던 상상력은 하등 도움이 안 된다. 본격적으로 번역이란 장르와 마주하면 단계별로 난관에 부딪히게 된다. 국어는 나의 첫 번째 난관이었다. 유치원 입학 전부터 한글을 배우고 정규과정으로 국어만 12년 배운 한국인으로서 허무해진다. 띄어쓰기와 맞춤법은 엉망진창이었고 부족한 어휘 때문에 ‘생각했다’로 모든 문장을 끝내고 있었다. 형편없는 국어실력과 표현력에 국어공부를 새로 하고 있는 중이다.      


지금도 쉼표와 접속사 ', and'를 옮길 적당한 단어가 생각나지 않아 미간 사이에 힘을 주고 있다. 영어를 우리말로 변환하는 ‘기술’이 번역의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언어에는 한 사회의 문화가 집약적으로 들어가 있는데 사회적, 문화적 이해 없이 온전한 의미를 옮기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번역 기초 수업을 듣게 되면 가장 먼저 동·서양의 사고 차이에 대해 배우게 된다. 번역 수업에서 기술보다 인문학적인 내용을 먼저 배우다니 웬 말이냐! 이는 어쩌면 수천 개의 영어 단어를 외우는 것보다 더 중요한 부분일지도 모른다. 언어와 문화의 상관관계는 실로 복잡하다. 단순히 다른 언어를 써서 문화가 다르다거나 문화가 달라 언어가 달라졌다는 문제가 아니다. 문화, 지리, 기후, 언어 등 모든 요소가 혼재된 세계를 받아들여야 한다. 따라서 사고방식이 다른 집단의 언어를 적절한 단어로 대체하기 위해서는 그 언어의 뼛속까지 파헤쳐야 한다.          

     

외국에서 살던 시절, 미친 듯이 한국이 그리웠던 적이 있다. 삼겹살, 대창, 곱창, 떡볶이 따위의 표상적인 것들 말고 나와 같은 문화에서 성장해 비슷한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 그리웠다. 한국어가 그리웠다. 별도의 배경 설명 없이 바로 함축적 의미를 잡아내는 한국인과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언어는 단순히 손으로 쓰는 글자 혹은 입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다. 그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번역은 매력적으로 다가온 이유다. 영어권 문화에서 성장하지 않은 사람이 새로운 언어를 배워 모국어로 ‘변환’하다니 얼마나 멋있는 직업인가! 나도 우아하고 맛있는 언어로 독자를 사로잡는 번역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모든 도전이 그러하듯 문학 번역은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6개월 정도 연습하고 나면 얇은 소설책 한 권쯤은 쉽게 번역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1년이 되어가는 지금, 한 권은커녕 한 챕터도 힘들어서 허덕이고 있다. 기술의 문제를 벗어나서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이러다가 언어학자가 되겠다고 나설 판이다.     


따지고 보니 고려와 조선시대 역관은 엄청난 능력자였다. 지금처럼 인터넷도 없고 원어민 선생님도 없는 시대에 어떻게 공부를 했는지 직접 만나 그 비결을 물어보고 싶을 정도다. 문헌에 의하면 조선시대 궁궐 안 우어청에서 하루 종일 외국어로만 대화를 하도록 역관들을 배려했단다. 현대판 영어마을이었던 셈이다. 정치, 문화, 경제적으로 교류할 때 (심지어 전쟁할 때도)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존재였으니 과거부터 지금까지 통역과 번역은 매우 막대한 임무(!)를 띤 업이다. 과거에도 신문물을 제일 먼저 접하고 전파하던 역관들의 역할은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번역가는 제일 먼저 읽는 사람이다. 다른 나라에서 출간된 해외 신작을 제일 먼저 읽는 혜택을 누리는 사람이자 제일 빨리 읽어야 하는 사람이다. 혜택이자 부담이다. 매주 주어지는 짧은 번역 과제도 버거워하는 주제에 번역이란 무엇이며 번역가의 역할은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한다. 내가 과연 잘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번역이 단순 기술이라면 누구나 똑같은 번역을 할 텐데 같은 작품이라도 내가 한 번역과 내 옆자리 수강생이 한 번역은 같지 않다. 번역하는 사람의 손끝에서 나온 의지가 담겨 있는 글에는 저마다 다른 기운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 at 5, the curtain of darkness has been drown는 내가 번역한 대로 '오후 5시, 푸르스름한 어둠이 내렸다'가 될 수도 있고 옆자리 짝꿍이 번역한 대로 '어두운 도시의 오후 5시'가 될 수도 있다. 같은 글이지만 개인의 경험과 이해에 따라 다른 번역이 탄생한다. 번역의 세계는 참 오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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