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장바닥에서 요가 해보셨어요? 아마 전 세계에서 저 하나뿐일 거예요.’
울퉁불퉁한 바닥에 돗자리나 좌판대를 깔아 놓고 없는 거 빼고는 다 파는 장터에서 무슨 요가란 말인가! 10만 원 준다는 소리에 혹해서 시원하게 ‘오케이!’를 외친 내 잘못이다. 안계는 1일, 6일에 장이 열린다. 작은 면 소재지라 장터가 열리는 날이면 복작복작해 축제나 다름없다. 사실상 1차선이나 다름없는 언덕배기 주도로는 틈만 나면 정체된다. 장터의 본부는 전통시장 아케이드가 있는 골목이라고 볼 수 있다. 처음 장날이 섰을 때는 어찌나 정신이 없던지 익숙하지 않은 길이 더욱 복잡하게 느껴졌다. 분명 편의점이 이쪽이고 빵집이 저쪽이었는데 눈앞에 편의점이 있었다. 지금이야 눈 감고도 골목길을 찾아다니지만 첫 일주일은 정말 헷갈렸다.
안계 오일장에는 제철 과일, 마늘, 갓 튀긴 통닭, 화려한 옷, 선글라스, 모자... 정말로 없는 게 없다. 햇볕이 따가운 봄철에는 목까지 길게 덮어주는 모자가 필수품인데 장터에서 아주 좋은 가격에 구할 수 있다. 주머니에 가방까지 뒤져가며 현금을 긁어모아 장터에서 처음으로 구매한 것도 모자와 몸빼바지였다. 굳이 살 게 없어도 장날 분위기를 느끼고 싶어 괜히 자전거 타고 근처를 뱅뱅 돌아 아케이드를 걷는다. 도시에 사는 친구들도 시골 장터를 매우 궁금해한다.
“거기 언제 열리는데?”
“거기 마늘 유명하잖아. 마늘 좀 보내봐!”
날이 좋을 때는 동네 귀촌 청년들이 함께 나와 플리마켓을 열고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참여형 행사를 진행하기도 한다. 바로 그 행사에서 요가를 하게 되었다. 처음엔 아무 생각 없었는데 현장에 도착해서 울퉁불퉁한 콘크리트 바닥과 참여 예정인 연령대를 보고 나니 퍼뜩 정신이 들었다. 큰일 났다! 배꼽 주변이 살살 아파왔다.
‘여기서 도망가면 어떻게 될까?’
정말로 도망가고 싶었다. 퀴즈 대회가 성황리에 막을 내리고 청년들의 노래 공연이 이어졌다. 어르신들 호응도가 최고인 나훈아 노래만 끝나면 바로 내 차례, 아니 요가 차례다. 곧이어 1인용 은갈치색 돗자리가 깔렸고 사회자는 지원자를 받고 있었다. 어르신들이 한 자리씩 차지하고 짝꿍으로 청년들이 옆으로 붙어 앉았다. 스트레칭에 가까운 동작을 이어가다가 경품을 소진하라는 진행자의 명령에 발란스 잡기로 경품을 걸었는데 큰일 날 뻔했다. 선풍기 한 대로 장터의 평화를 헤칠 수 있다니 새롭게 배운 아주 중요한 지혜였다. 침착하게 대응했다고 생각했는데 엄청 당황스러웠던 모양이다.
‘누나 아까 표정 완전 안절부절못하던데?’
그렇게 티 났니? 겨우겨우 요가를 마치고 돗자리를 걷었다. 아무래도 원기보충이 필요했다. 시골장터의 묘미는 뭐니 뭐니 해도 먹거리다. 규모가 좀 크고 관광객이 많이 찾는 오일장이라면 국밥도 있고, 잔치국수도 있고, 뻥튀기나 떡볶이 등 다양한 먹거리가 있을 텐데, 아무래도 동네 시장이라 종류가 많진 않다. 몇 안 되는 먹거리 중 갓 튀긴 통닭의 위상은 하늘을 찌른다. 시골에서 자유분방하게 자라서 그런지 닭 크기가 어마어마하다. 커다란 닭에 얇게 튀김옷을 입혀서 기름 솥에 통째로 들어간 통닭은 냄새부터 다르다. 고소하면서 짭짤한 냄새에 배꼽시계가 먼저 반응하기 마련이다.
장터 요가를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장터 통닭을 한 마리 사 왔다. 검은 봉지에서 여전히 하얀 김이 펄펄 났다. 조심스레 기름에 절어 있는 흰 종이봉투를 꺼내 길게 찢어 조심스레 닭을 해체하기 시작했다. 혹시나 얇은 껍질이 벗겨질세라 아주 조심스러웠다. 허기짐과 당혹감으로 얼룩진 뱃속에 바삭한 껍질과 부드러운 살코기는 아주 반가운 손님이다. 기름진 껍질에 질려 느끼할 때 시원한 맥주를 한 모금 마시면 그야말로 천국이다. 장터 요가 한 판 더 할 수 있을 것 같은 용기가 차오른다. (물론, 다시는 하고 싶지 않습니다.) 장터에서 집으로 돌아와 사람들과 치킨과 맥주를 나누며 생각했다.
‘퇴근 후 치맥은 전국 어디서나 통용되는 만병치료 약이로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