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규민 Nov 18. 2022

단편소설_ 빛의 미로 #2

경찰이라는 단어는 잠을 깨우는 데에 효과적이었다. 나는 눈을 뜨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불 밖으로 빠져나와 민주를 따라갔다. 베란다에는 찬바람이 가득했다. 경찰이라는 소리에 놀라 일어났지만 막상 밖으로 나오고 보니 경찰이고 뭐고 춥다는 생각뿐이었다. 민주는 나를 계속 흔들어대면서 저기 보라며 골목의 어딘가를 가리켰다. 어디의 무엇을 보라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민주네 동네의 골목으로 말하자면 복잡한 도시 설계도를 세 개쯤 겹쳐놓고 그대로 본떠서 만든 것 같은 곳이었다. 가로등마저 어두워서 아무리 잽싼 도둑이라도 발을 잘못 들여놓으면 아침이 밝을 때까지 헤매게 될 듯했다. 저기라고, 저기! 마침내 민주가 가리키는 걸 발견했을 때, 나는 그녀의 관찰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모퉁이에서 작고 동그란 몸뚱이가 뒤뚱거리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웬 할아버지였다.


“맞지?”


“뭐가?”


민주는 답답해 죽겠다면서 내 어깨를 찰싹 때렸다.


“잘 봐봐. 토마스 어르신이잖아.”


나는 아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치매에 걸리기 전에는 저명한 신학자였다고 요양원에서 유명한 할아버지였다. 본인의 이름 옆에 꼭 괄호를 치고 ‘토마스 아퀴나스’라고 적어두어서 토마스 할아버지로 통했는데, 천주교 미사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았다. 직원들이 특별히 천주교를 싫어한 건 아니었다. 직원들은 모든 종교를 싫어했다. 요양원에서는 종교 행사가 성가신 일거리였으니까. 천주교 미사를 열기 위해서는 우선 강당에 있는 책걸상을 전부 창고로 밀어 넣어야 했다. 그곳에 성모상을 비롯한 종교적인 물품들을 세팅하고 나면 이제 미사에 참석할 노인들을 강당으로 이동시킬 시간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요양원에는 수백 명의 노인이 있었고, 그중에서 미사에 참석할 노인들을 휠체어에 태우고 엘리베이터 앞에 줄을 세우고 나면 꼭 피난길을 보는 것 같았다. 토마스 할아버지는 평소에는 말수가 적었지만, 미사를 갈 때면 제일 앞에 서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토마스 할아버지가 장수하는 이유는 다음 달 미사에도 참석해야 하기 때문이라는 짓궂은 농담이 직원들 사이에서 유행할 정도였다.


“근데 왜 여기 계시지?”


그때 내 목소리는 내가 듣기에도 멍청했다. 민주가 이번에는 뺨을 칠 기세로 노려보길래 나는 잠이 덜 깨서 그렇다고 변명했다. 상황은 간단했다. 요양원에 있어야 하는 토마스 할아버지가 밤중에 거리를 배회하고 있고, 우리가 할아버지를 발견한 것이다. 나는 그제야 민주가 왜 경찰을 입에 올렸는지 알 수 있었다. 요양원에 있어야 할 노인이 밖에서 배회하는 건 당연히 심각한 문제였다. 당장 신고하는 게 상책이었다. 하지만 나는 민주가 경찰을 불러야 ‘할지도 모른다’라고 말했다는 걸 간과하고 있었다. 내가 바로 방으로 돌아가 핸드폰을 찾고 있으려니까 민주가 내 팔뚝을 붙잡고 고개를 저었다. 좀 더 생각해보자고 했다. 무슨 소리야? 내가 외쳤다. 그 순간에도 토마스 할아버지는 열심히 걸어가는 중이었다. 곧 시야에서 사라질지도 몰랐다.


잘릴 거야, 라고 민주는 말했다. 누가? 그렇게 물어보면서도 나는 민주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래서 화가 났다. 우리는 사무실에서 직원 능력 평가에 관한 서류를 정리하기도 했다. 거기에는 요양원의 모든 직원이 우수 직원부터 저성과자까지 점수순으로 정리되어 있었다. 목적이 분명한 서류였다. 물론 우리는 어디까지나 서류를 정리할 뿐이었고, 서류의 내용은 상사들이 결정한 것이었지만, 직원들의 능력이 1부터 10까지의 숫자로 표현된 꼴을 컴퓨터 화면으로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이곳에 매달린 밥줄이며 자녀의 미래며 안정된 생활을 함부로 다루고 있다는 느낌이 어쩔 수 없이 들었다. 그러나 그것도 한두 달 해보니 익숙해졌다. 다들 그런 줄 알았는데, 민주는 아닌 모양이었다. 토마스 할아버지의 담당자가 이번 달 저성과자 중의 하나라는 걸 민주는 기억하고 있었다. 경찰에 연락하면 원장도 이 사건을 알게 될 테고 담당자는 밥줄이 끊길 것이었다.


그래서 뭐? 그래서 이해해주자는 건가. 우리가 발견하지 않았더라면 할아버지는 이대로 실종될 뻔했다. 가족들 입장을 생각해보면 용서가 안 될 일이었다. 예전에도 치매 노인 한 명이 요양원 바깥으로 이탈했다가 동네 주민의 손에 이끌려 돌아온 적이 있었는데, 그때 하필 노인이 발목을 접질러서 선의를 베푼 주민까지 책임을 지게 되었다. 그렇게 여러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는 인간이라면 별로 불쌍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민주의 생각은 달랐다. 그녀는 담당자를 개인적으로 안다는 둥 그 사람에게 중학생 딸이 있다는 둥 무의미한 말을 늘어놓다가, 결국 경찰에 신고하지 말고 우리가 직접 할아버지를 요양원으로 데리고 가자고 했다. 아침이 밝기 전에만 원상복귀하면 다 없던 일이 될 거라고. 황당한 소리. 민주에게는 차도 없었고 지금은 지하철도 버스도 없었다. 가는 도중에 할아버지가 넘어지기라도 하면……. 우리는 언성을 높이며 싸웠지만 시간이 없다는 건 알고 있었다. 민주가 먼저 문을 박차고 나섰고 나는 뒤를 따랐다. 골목에 나가서도 나는 입을 다물지 않았다. 지금 당장 경찰에 신고하든지 아니면 아예 모른 척하든지 둘 중에 하나라고. 저성과자 요양사 하나 지켜주려다가 네가 잘린다고. 솔직히 그 정도로 무능력한 아줌마는 밥 굶어야 하는 거라고.


마지막 말이 정적을 낳았다. 민주는 입을 꾹 다물고 나를 응시했다. 그 순간은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우리는 어두운 가로등 아래 서 있었다. 저 멀리 골목의 끝에 토마스 할아버지가 보였고, 민주는 갑자기 눈물이 터져 나와서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으며, 나는 완전히 잠에서 깬 참이었다. 그러니까 변명이 불가능했다. 민주는 자기 울음을 감당하지 못하는 것처럼 어깨를 심하게 들썩였다. 그리고 말했다. 네가 그런 말을 해선 안 되지. 적어도 오늘은 안 되지. 방금 그 사진을 봤잖아. 내가 보여줬잖아. 나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우리가 아까 술을 더 많이 먹었더라면, 그래서 민주가 도중에 잠에서 깨지 않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런 일은 애초에 일어나지 말았어야 했다. 토마스 할아버지의 뒷모습이 점점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모른 척할까. 적어도 우리에게는 아무 문제도 없을 텐데. 하지만……. 나는 결국 울고 있는 민주를 내버려 두고 할아버지에게로 뛰어갔다.


(다음 화에서 계속)


이전 16화 단편소설_ 빛의 미로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