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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규민 Sep 18. 2023

단편소설_ 피식자의 만찬 #2

고백하건대 나는 정의로운 사람을 좋아하지 않아요. 다들 마찬가지일 줄 압니다. 존재만으로도 우리를 나무라는 것 같으니까요. 하지만 우리는 결국 정의로운 사람들에게 매혹되고 말죠. 한번은 책에서 이상한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나치 점령기의 이야기입니다. 그때 유대인을 비롯해 여러 사람을 수용소에 몰아넣지 않았습니까? 그 수용소 생존자 증언 중 자주 등장하는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이타적인 수형자입니다. 아무 희망 없는, 매일 인간 이하 대접을 받아 정말 모두가 인간 이하가 되어 생존하는 곳―그런 곳에서조차 윤리를 지키고, 자신보다 타인을 먼저 챙기며, 인간적 존엄을 지켜내는 수형자가 있었다는 이야기지요. 적잖은 생존자가 그 천사 같은 사람을 보았다고 증언합니다. 그런데 내가 읽은 책의 해석이 흥미롭습니다. 생존자 중 누구도 그 천사의 죄수번호나 이름을 말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어쩌면 그는 상상의 산물인 게 아닐까요? 누군가 나를 대신해 존엄을 지켜준다는, 그러니 우리는 짐승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믿음 말입니다.


더미와 마주 앉아 나는 천천히, 하지만 무력하게 나 자신의 죄를 깨달아갔습니다. 주제 넘게 천사 역할을 했던 셈이랄까. 요즘 세상에 영상의 파급력이란 실로 엄청납니다. 드라마 속 내 모습은 십 분 내외의 짧은 영상들로 나뉘어 인터넷을 배회했습니다. 문제아로 낙인 찍힌 학생들과 소통하는 장면, 권위적인 선배 교사 앞에서 당당히 의견을 내는 장면, 친구를 왕따시키는 학생을 불러내 혼쭐을 내는 장면……. 그렇게 보니 꼭 공익광고 같아서, 언젠가부터는 내 영상이 꼴도 보기 싫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점점 더 널리 퍼진 모양입니다. 이른바 알고리즘이라고 하죠? 더미의 동영상 알고리즘에도 내 모습이 끼어 들어간 겁니다. 더미는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들여다보다가 문득 내 얼굴을 보게 됩니다. 그의 눈앞에서 나는 정의로운 사람입니다. 낯선 사람 같았을 겁니다. 더미가 기억하는 나와 드라마 속 나는 다르니까. 세월이 십 년쯤 흐른 데다, 예전의 나는 괴롭힘당하는 친구를 모른 척하던 인간이니까.


그때부터 지옥이 시작되었다고 더미는 말했습니다. 나로서는 믿기 힘들지만, 그 전까지는 멀쩡히 살고 있었다더군요. 계산적인 눈으로 보자면 더미는 분명 성공한 사람이었습니다. 임대로 내놓은 상점이 을지로에만 세 채라고 합니다. 그중 두 채는 꽤 유명한 음식점이고 나머지 하나는 우리가 만나는 지금 이곳이었습니다. 얼마 전까지 술집으로 이용되었는데, 술집 사장이 장사를 그만둔 뒤 비어 있다고 하더군요. 아버지가 유산으로 남긴 건물들이라고 했습니다. 예전에도 더미는 부잣집 도련님으로 유명했지요. 더미는 굳이 부동산을 최대한 활용해 돈을 모을 의지도 없이, 그저 방치하는 듯했습니다. 남들이 일하는 시간에 도대체 무얼 하는지 궁금했지만 물어볼 수는 없었어요. 더미는 건조한 어조로 이야기했습니다. 내가 정의롭게 학교 폭력에 대처하는 모습을 보자 괴로웠다고. 나를 정의의 사도로 여기는 댓글들을 보자 악몽이 되살아났다고. 온 세상이 다시 자신을 따돌리는 기분이었다고.


당신은 이 말을 들으니 기분이 어떻습니까. 우스운가요? 억울한가요? 재수가 없었다고 생각합니까? 나는 무서웠습니다. 정말이지 압도적인 공포를 느껴서, 그 외에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더미의 목소리가 그렇게 차분할 수 없었거든요. 그동안 홀로 얼마나 괴로운 시간을 보내고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해서, 도대체 어떤 복수를 하려고 나를 다시 찾았을지 두려웠습니다. 지금 주위를 둘러보십시오. 이 공간은…… 어쩐지 눈에 익지 않습니까? 언젠가 악몽에서 본 것처럼요. 흰 벽으로 사방이 꽉 막혀 비명을 질러도 아무도 모를 것 같았어요. 그런데 더미는 의외의 말을 이어나갔습니다. 내가 다시 친구가 되어주길 바란다더군요. 잡지에서, 인터넷 기사에서, 텔레비전에서 나를 볼 때마다 괴로워 확 죽어버릴 생각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과거의 일이 나 때문이 아닌 것도 안다고 했어요. 그래서 나를 찾아와 이해받고 감정을 풀어보기로 했다고 더미는 말했습니다.


친구가 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그때는 알지 못했습니다. 물론 번거로운 조건이 붙을 거라고 예상은 했습니다. 유명한 연예인이 되면 그런 일은 흔하니까요. 지인을 위한 사인을 당당히 요구하거나 길에서 어깨를 붙잡고 사진 찍자고 한다거나, 그런 일이야 종류도 다양하죠. 하지만 더미는―지금 생각해보면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만―그따위 일에는 관심도 없었습니다. 그냥 주말에 여기서 가끔 만나자고 하더군요. 미리 연락을 할 테니까 시간이 되면 여기로 와서 저녁을 먹으라고요. 이런 곳에서 저녁을 어떻게 먹자는지 의아했으나, 다음 주에 다시 와서 보니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옛날에 쓰이던 냉장고 안에는 음식 재료가 들어 있더군요. 더미는 냉장고에서 스테이크와 이런저런 양념을 꺼내 요리를 시작했습니다. 해묵은 자책감과 더불어 아주 낡고 오래된 감정이, 더미를 향한 반가운 마음이 고개를 들었습니다. 더미는 폐건물 같은 이곳에서 나에게 스테이크를 한 접시 대접했습니다.


당신에게는 미안하지만, 그 고기에 대해 설명을 안 할 수가 없군요. 비계가 좀 많기는 하지만 그런 건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였어요. 더미는 그것이 해외에서 공수해온 물소 고기라고 했습니다. 현지인들은 스테이크로 먹지 않고 주로 스튜를 만들어 먹는데, 유럽인 중에 입맛이 까다로운 미식가들이 이 고기를 구워 먹는다고도 했어요. 내가 그 말을 얼마나 믿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다만 더미가 피식피식 웃던 얼굴이 눈앞에 선합니다. 인상적일 수밖에요. 더미는 그 고기 이야기를 할 때가 아니면 결코 웃거나 농담하는 법이 없었으니까요. 더미는 배가 고프지 않다며 내가 먹는 모습을 보고만 있었습니다. 나는 고기에 대해 일부러 많이 물어보았습니다. 이런 건 누가 알려줬는지, 평소에도 이런 별미를 자주 먹는지, 특수한 고기만 취급하는 매장이 국내에도 있는지. 더미는 친절히 대답해주었지요. 국내에 취급 업체가 있지 않다고, 해외로 나가야 구할 수 있다던 말이 기억납니다.


이상하다는 생각을 안 해보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더미는 원래 이상한 사람 같았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너무한가요? 하지만 사실이 그랬습니다. 더미는 많이 망가져 있었습니다. 내 눈을 오 초 이상 마주 보지 못했고, 식욕도 없어 보였어요. 말을 하지 않을 때는 그림처럼 앉아 나를 물끄러미 볼 뿐이었습니다. 나는 점점 과거로 돌아가는 기분이었습니다. 어릴 적 친구들과 숨바꼭질을 하는데, 숨어 있는 친구 중 한 명을 잊어버리고 집에 온 기분이랄까. 세월이 흘러 나는 어른이 됩니다. 그리고 익숙한 골목을 밤중에 걷다가, 나처럼 늙은 그 친구를 마주치는 겁니다. 아, 물론 나는 친구가 될 자격이 없습니다만…… 어쩌면 아주 옛날처럼 단짝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나 봐요. 더미는 아버지에게 배운 부동산 투기에 관해 이야기했습니다. 법과 제도에는 마치 인터넷게임의 버그처럼 언제나 허점이 있다고도 했습니다. 평소라면 아무 관심이 없을 대화지만, 나는 더미의 말에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어요.


누구와도 친구가 될 수 없었고, 누구도 믿을 수 없었으며, 누구에게도 성욕을 느낄 수 없었다는 이야기. 더미는 말하다 말고 무언가 떠오른 사람처럼 빙그레 웃곤 했습니다. 돌이켜보면 더미는 그때 기분이 제법 좋았던 모양입니다. 그날 헤어지기 전에 나에게 냉장고를 보여주었습니다. 시뻘건 생고기가 냉동실에 소분되어 있었습니다. 저걸 다 먹으려면 며칠이 걸릴 것이다, 너랑 먹으려고 아껴둔 것이다, 저걸 다 먹어치울 때는 우리가 다시 친구가 될 것이다……. 아, 내 입으로 말해보니 알겠습니다. 더미는 나를 완전히 손에 넣었음을 그때부터 눈치챈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서야 이렇게 노골적으로 말하진 않았겠지요. 실은 처음부터 명확한 일이었습니다. 방관자에 불과한 나에게도 분통이 터질 정도였다면, 그토록 괴롭힌 당신에게는 얼마나 복수하고 싶었을까요? 가슴속에서 짐승이 짖는 듯 강렬한 분노에 잠을 설쳤을 테지요. 그러니 더미는 어쩔 수 없이 잔인한 계획을 세웠을 겁니다.     



     

한때는 당신 같은 사람을 머릿속이 궁금했습니다. 왜 저런 짓을 할까? 왜 가만히 있는 사람을 구타하고 괴롭히는 걸까? 그게 나만 궁금한 것은 아닙니다. 세상 여러 이야기에는 악당이 나오는데, 그들에게는 알고 보면 다 사연이 있지요. 가족을 지켜야 해서, 소중한 사람이 있어서, 큰 배신을 당해서 독해졌다는 식입니다. 당신은 이런 이야기를 보면 무슨 생각이 듭니까? 누군가는 이해해주는 것 같아서 마음이 찡한가요? 아, 그럴 리 없지요. 적어도 학창 시절의 당신은 그럴 리가 없습니다. 당신은 애초에 이야기를 진지하게 듣지 않기 때문입니다. 무언가 고민하고 타인의 말을 경청하는 건 늘 다른 사람들 몫이었습니다. 자신에게 무슨 사연이 있고 정당성이 있는지를 스스로 생각할 리가 있나요. 그러니 이야기를 쓰고 읽는 사람들은 서로를 위로할 수밖에 없습니다. 악당에게도 사연이 있을 것이다. 그들도 우리와 다르지 않은 사람이다. 그들도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당신이 지금 어쩔 줄 모르는 것도 이해가 됩니다. 평생 안 하던 일을 하게 생겼으니, 좌절하는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하지만 창밖을 다시 보십시오. 저렇게 많은 사람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한밤이 되었는데도 지칠 줄 모르고 술 마시며 대화하는군요. 저들 중 누군가는 오늘 집에 들어가지 않을 것입니다. 어떤 이는 무책임한 일을 벌일 테고, 또 어떤 이는 말해서는 안 될 비밀을 털어놓을지 모릅니다. 그 모든 일에는 별 이유가 없을 거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우리는 하고 싶은 일을 해버린 뒤 나중에 이유를 가져다 붙입니다. 누군가는 그게 위선이라 비웃을 테지만, 실은 이유라도 만들어 붙이는 성의가 중요하지 않을까요. 당신이 지금 이 꼴이 된 것도 최소한의 성의를 보이지 않아서니까요. 어쩔 수 없이 나쁜 짓을 했다고 변명하거나 용서를 구하긴커녕, 당신은 행복한 삶을 과시하느라 바빴습니다. 아내와 간 고급 레스토랑과 필리핀 해변에서 찍은 사진, 당신과 축구하는 걸 유독 좋아하는 어린 아들의 모습.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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