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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규민 Sep 18. 2023

단편소설_ 피식자의 만찬 #4 (마지막 화)

더미라는 별명을 왜 붙였는지 혹시 기억합니까? 왜 대답을 못 하십니까? 기억이 안 나는 건가요, 아니면 부끄러운 건가요? 몸이 떨려서 말도 잘 안 나오는 건가요? 그건 게임 캐릭터 이름이었습니다. 우리가 중학생일 때 유행한 온라인 게임이었는데, 정확히는 캐릭터 이름이 아니라 몬스터 이름이지요. 플레이어가 칼이나 활을 들고 쳐부숴야 하는 대상. 더미는 자기보다 더 거대한 몬스터의 의지대로 사람들을 공격하는, 일종의 꼭두각시 인형 같은 거였어요. 생긴 걸 보면 인형보다는 좀비에 가까웠지만요. 고등학교 복도에서 당신이 나를 보고 지은 표정을 잊을 수 없습니다. 깜짝선물을 받아 놀란 얼굴 같았어요. 내가 반에서 인기가 많고 반장까지 하고 있음을 알고 나서는 실실 웃기까지 하더군요. 당신이 퍽 살가운 목소리로 나를 따로 불러냈을 때, 같이 학교 뒤쪽의 인적 없는 곳까지 가면서 나는 희망을 놓지 못하던 게 기억납니다. 당신도 변했을지 모른다고, 어쩌면 나쁜 일은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스테이크를 먹던 그날, 눈앞에서 더미의 모습이 일시정지한 순간…… 나는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누가 보면 영락없는 미친놈으로 보였을 거예요. 하지만 미친놈이라기엔 내 머리는 아주 빠르게 상황을 정리했습니다. 사실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니었거든요. 혹시 잘 고쳐지지 않는 버릇이 있습니까? 나에게는 나 자신, 아니 더미와 대화하는 것이 오래전 습관이었습니다. 처음엔 연습 때문이었어요. 무대에 서서 깊고 단호한 음성으로 말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았거든요. 내 안에서 더미를 완전히 몰아내지 않고서는 도무지 잘할 수 없었습니다.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더미를 몰아내기 위해서는 더미에게 인격을 줘야 했어요. 존재하지 않는 걸 몰아낼 방법은 없으니까. 사람들 틈에 있다가 갑자기 다른 사람 영혼이 들어온 것처럼 움츠러들 때, 혼잣말처럼 더미에게 사라져달라고 부탁하는 겁니다. 더미는 간혹 내 일에 훼방을 놓았고 언제는 멋대로 나타나 내 동료들에게 어눌하게 말을 붙이기도 했어요.


그래도 이렇게 큰 사고를 친 적은 없었으니, 나는 놀랍기도 하고 다소 황당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벌어진 일이라기에는 너무 끔찍하지 않습니까? 아무리 복수하고 싶었기로서니, 어떻게 사람의 다리를 산 채로 잘라 와서 구워 먹을 생각을 하냐는 말입니다. 그런데 웃음을 그치고 더 생각해보니 그럭저럭 수긍하게 되었습니다. 더미는 스테이크에 손도 대지 않았잖아요. 더미는 나 역시 자신의 복수에 함께해주기를 바란 게 아닐까요? 자신의 소원을 성취하자, 더미는 마치 옛날 공포영화에 나오는 원혼처럼 엉성한 모습으로 희미해졌습니다. 나는 스테이크 두 접시가 놓인 테이블 앞에 홀로 남았습니다. 눈을 감았습니다. 아, 더는 모른 척할 수 없겠더군요. 낯선 기억이 마치 머리에 주사를 맞는 듯 흘러 들어오는 기분이었습니다. 모든 일이 터무니없이 손쉽게 진행되었더군요. 당신 SNS를 찾는 것도 금방이었고, 당신이 필리핀 어디서 사업하는지도 알아냈습니다. 약간 과장을 보태자면, 일을 맡기는 것 역시 해외 물품을 직구할 때처럼 손쉬웠습니다.


죄책감이란 참으로 단순한 감정이에요. 명칭이 잘못 붙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죄책감은 죄 지은 사람이 느끼는 감정이 아니라 균형이 망가졌을 때 느끼는 강박증에 가깝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죄를 지었더라도 내가 그 이상 고생을 하면 마음이 크게 불편하지는 않더라고요. 내 입장에서 생각을 해보세요. 이게 웬 날벼락입니까? 윤리적인 고민 따위는 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몽유병 환자가 밤중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쓰레기 매립지 한복판에 서 있게 된다면 딱 그런 기분일 겁니다. 나는 찬찬히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당장 내 앞에 조리되어 있는 스테이크, 냉동실에 소분된 고기들. 고기를 포장하던 비닐에는 사람 피가 묻어 있지요. 음식물쓰레기로 배출하기에는 아무래도 꺼림칙했습니다. 실내를 환기하는 것도 괜찮을지 걱정되었습니다. 혹시 이 고기 냄새가 이상하다는 걸 누가 알아채기라도 하면 어쩌지 싶었거든요. 나는 테이블 앞에 앉아 담배 피우며 찬찬히 계획을 세웠습니다.


외로움, 아니 적적함이라고 할까요. 혹은 억울함이라고 해야 할까. 죄책감을 느끼지 못한 대신 나는 이런 감정들을 맞닥뜨렸습니다. 수습할 계획은 금세 세울 수 있었어요. 나는 더미처럼 감정에 휩쓸려 과한 일을 벌이지는 않으니까. 남은 고기도 냉동실에 넣어 함께 얼리고, 믹서기를 구해 곱게 갈아서 락스와 함께 배수구에 버리면 그만이겠죠. 담배 한 갑을 다 피우는 데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실내를 담배 냄새로 가득 채운 뒤 나는 창문을 열었어요. 바깥 공기와 취객들 소음이 흡사 폭우처럼 실내로 들이쳤습니다. 그때도 이렇게…… 눈물이 났던 것 같습니다. 나 자신이 평범한 사람이라고 느낀 적이 언제였던가. 아주 어릴 때였겠지요. 또래 아이들의 표적이 되기 전, 내가 남들과 다르다는 생각은 한 톨도 하지 않던 시절. 창밖 사람들을 보고 있으니 한 가지가 분명해졌습니다. 나는 이제 저 세계에는 속할 수 없겠구나. 저렇게 웃고 떠드는 이들 사이에 함께할 수는 없겠구나. 무슨 수를 쓰더라도.     




피곤하지는 않으신가요? 말이 너무 길었습니다. 오늘 여기 오는 데 얼마나 많은 준비를 했는지 몰라요. 당신 전화를 받고 내가 의심부터 할 수밖에 없었던 점을 이해해주십시오. 사과를 하고 싶다니요. 그 세월을 건너 나를 만나 용서를 구하고 싶다니. 전화번호를 어떻게 알았느냐고 묻고 싶었지만 실은 그런 건 의미가 없지요. 당신은 오랫동안 준비한 게 분명한 목소리로, 마치 대사를 읊는 초짜 배우처럼 말을 이어갔습니다. 다리가 잘린 뒤, 아무 일도 못 하고 지난날만 돌이켜봤다고 했습니다. 예전부터 궁금했습니다. 사람은 왜 자신을 해치는 존재를 이해하고자 온 힘을 다하는 걸까요? 정작 괴롭히는 쪽은 아무 생각 없는데, 괴롭힘당하는 쪽은 늘 고민에 빠지기 마련입니다. 당신도 과거의 잘못을 돌아봤다고 했어요. 당신에게 그런 짓을 할 인간이 누가 있는지 하나하나 되짚어보았다고. 분노, 복수심, 억울함과 슬픔을 거쳐 당신은 모든 걸 뉘우치고 싶게 되었다고 나에게 말했습니다.


이곳으로 오라고 약속을 잡긴 했지만, 도무지 생각 정리가 안 되더군요. 무언가 꿍꿍이가 있을 거라는 의심이 끊임없이 고개를 들었습니다. 경찰에 신고라도 해둔 건 아닐까? 아니면 직접 복수하려는 게 아닐까? 만일 정말 사과하고 싶은 거라고 해도 여전히 문제였습니다. 이제 와서 용서를 구한다니 너무 이기적이지 않나요? 더미의 마지막 모습, 내 안에서 소멸된 더미를 떠올리면 나 역시 당신에게 복수하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당신이 이곳에 오기로 한 시각에 나는 근처 건물에 앉아 핸드폰을 꺼냈습니다. 건물 CCTV를 통해 당신을 지켜봤어요. 약속 시간보다도 이르게 당신은 힘겹게 계단을 올랐습니다. 한쪽 다리가 부자연스러운 걸 보니 당신이 맞는 듯한데, 얼굴이나 전체적 인상은 전혀 다른 사람 같았습니다. 머리숱이 휑한 데다 눈에 띄는 주름까지 있어서 길에서 마주치면 결코 못 알아볼 듯했습니다. 나는 당신이 계단을 다 오를 때까지 기다렸다가, 잠시 뒤 이곳으로 왔습니다.


이제 일어나서 내 맞은편 의자에 앉으십시오. 아무리 당신이 그러고 싶다고 해도, 불편한 다리로 계속 무릎을 꿇게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이 자리에 앉아 나와 함께 창밖을 내려다보면 좋겠습니다. 그다지 높은 건물은 아니지만 밤거리를 구경하는 것은 퍽 재미있는 일입니다. 사람들이 길목에서 서로 질서를 지키는 모습이 흥미롭거든요. 가끔 상상하곤 합니다. 누군가가 식칼을 하나 들고 저 번화가에서 살인을 시작하면 어떻게 될까. 몇 명이나 죽일 수 있을까. 극악스러운 말처럼 들리겠지만, 사실 나는 인간의 선량함에 감탄하는 것입니다. 이유 없이 자신을 해치는 존재가 없을 거라는 믿음이 맑은 개울처럼 저 거리를 흐르고 있으니까요. 테러범들은 질투 때문에 그 끔찍한 짓을 자행하는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은 테러가 벌어지면 혼비백산하지만, 놀라운 속도로 테러를 진압하고 피해를 복구하며 다시 한번 평화로운 거리를 되찾을 겁니다. 스스로 깨끗해지는 개울처럼 말입니다.


요즘은 혼자 있을 때면 조용히 더미에게 말을 걸어보곤 합니다. 하긴 이제 연기 따위도 그만두고 사람들을 피해 늘 혼자입니다만. 더미는 다시 나타나지 않을 건가 봐요. 내 안의 추악하고 부끄러운 자아였는데, 사라지고 보니 빈자리가 이토록 크게 느껴질 줄은 몰랐습니다. 그래서 내가 당신을 용서할 수는 없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만 해도 더미에게 죄를 짓는 기분이군요. 나는 더미를 대신할 수 없으니까요. 이 말이 변명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나는 정말 더미와 다른 사람 같습니다. 당신을 다시 마주한 순간, 당신이 내 앞에 대뜸 무릎을 꿇은 순간 아무 분노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자식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버지가 되고 싶다고 하셨지요. 당신 인생에 그런 건 불가능할 겁니다. 우리는 선량함을 믿지 못하는 존재로서 평생을 살아갈 수밖에 없어요. 강물을 더럽히는 오물, 사회에 끼지 못하는 괴물이지요. 그럼에도 내가 당신과 이렇게 대화하고 있는 것은…….


당신에게 부탁이 하나 있기 때문입니다. 아주 사소한 것입니다만, 내겐 어려운 일이에요. 사람 고기를 먹은 뒤로 이런 일을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내가 이뤄온 모든 걸 뒤로한 채 도망다녔거든요. 더는 내 얼굴을 스스로 바라볼 수가 없고, 카메라에 내 모습이 기록되는 건 물론 남들 눈에 뜨이고 싶지도 않거든요. 이 모든 일이 우연이라고 종종 위안합니다. 누구에게든 일어날 수 있는 불행이었다고요. 우리는 어쩔 수 없는 대로 행동한 거라고요. 어떤 거대한 존재가 벌을 내린 게 아니라 그저 운이 없었을 뿐이라고요. 그러니 내 부탁을 꼭 들어주세요. 혹시 내 손을 잡아줄 수 있습니까? 악수를 해도 괜찮을까요? 아주 잠깐이어도 괜찮습니다. 내 손으로 당신의 존재를 느끼고 싶습니다. 정말 당신이 내 앞에 와 있는지, 당신이 고통을 거쳐 무릎 꿇은 게 사실인지, 이 모든 게 진짜인지 확인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손을 뻗어보십시오. 아주 천천히. 천천히. 천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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