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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규민 Sep 18. 2023

단편소설_ 피식자의 만찬 #3

당신에 대한 더미의 복수심은 이미 감정의 차원을 넘어서 있었습니다. 마치 누군가에게 복수를 명령받은 것 같았다고 할까요. 새삼스레 분통을 터뜨리거나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어요. 나는 두 번째 식사 때 직접 요리했습니다. 이곳에 들어왔더니 더미는 피곤한 듯 의자에 앉아 건성건성 손을 들어 보이더군요. 주방에 들어가보니 상태가 엉망이었습니다. 시멘트 가루가 바닥에 널려 있었으며 싱크대도 깨끗해 보이진 않았어요. 조명이 어두워 망정이지 환히 밝히면 가관일 듯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더미는 칼질도 어설펐고 후라이팬을 드는 폼이 어색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는 당황스러워서 생각을 못 했지만, 근본적인 의문이 들기 시작했어요. 더미는 왜 나에게 굳이 직접 음식을 해주는 걸까. 그것도 이렇게 비밀스러운 곳에서. 그리고 왜 자신은 스테이크를 먹지 않는 걸까. 나는 익어가는 스테이크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습니다. 이번에는 더미의 몫까지 요리해 식탁으로 가져갔어요.


식사가 시작되었고, 나는 간단한 안부를 물었습니다. 대답이 없었습니다. 침묵이 시작되었습니다. 나이프가 스테이크를 가르고 그릇을 긁는 소리가 싸구려 공포영화 효과음처럼 사방을 메웠습니다. 더미는 팔짱만 끼고 있었습니다. 뭔가 말하고 싶은데 입을 못 떼는 것 같았어요. 그렇게 오 분이 흘렀던가. 어느 순간 내 핸드폰은 더미의 손에 있었습니다. 더미는 당신 SNS에 접속해, 가장 과거 게시물부터 보게 하더군요. 나는 마치 웹툰을 보듯 사진을 한 컷씩 넘겼습니다. 왜 이런 걸 보라고 하는지 그때는 알 수 없었습니다. 그 사진들 속 자상한 남편, 온화한 아버지가 당신일 줄 몰랐으니까. 게시물은 대략 한두 달 주기로 올라온 것 같았습니다. 그 이미지들을 통해 보니 당신 아들은 정말 빨리 자라나더군요. 엉금엉금 기던 아이가 걷기 시작하고, 환히 웃으며 엄마 아빠를 부르고, 머리털은 또 어찌나 윤기 있게 자라나던지. 당신이 지키는 골대에 공을 차 넣으며 펄쩍펄쩍 뛰는 영상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이를 바득바득 갈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는, 아니 더미는…… 당신 아들에 손댈 생각은 결코 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럴 수 있는 인간이었다면 어릴 적 당신에게 그렇게 당할 일도 없었겠지요. 더미의 표적은 처음부터 당신과 나뿐이었습니다. 나는 당신 사진들을 멍하니 넘기며 더미의 말을 들었습니다. 당신이 필리핀에서 사업을 한다고 했어요. 거기는 적은 돈만 지불해도 청부살해를 할 수 있다고, 믿기 힘들겠지만 공공연하게 운영되는 폭력 조직이 있다고 했습니다. 원한이 있는 사람들은 그곳에 함부로 가지 말라는 인터넷 기사도 있더군요. 공권력 역시 매수된 경우도 허다하다고요. 하지만 더미가 궁금해한 것은 그 이상이었습니다. 적은 돈으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많은 돈을 지불했을 때는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살인당하기보다 더 고통스러운 일이 뭐가 있을까? 어떤 일을 벌여야 당신이 가장 고통스러워하며 자신의 죄를 뉘우치게 할 수 있을까?


더미는 학창 시절 이야기를 그때 처음 꺼냈습니다. 당신 명령에 따르지 않은 적이 한 번 있었다고요. 당신이 여자 화장실에 숨으라고 했다고. 중간 칸에 들어가 문을 잠그고 있다가, 양쪽에 여자애들이 들어와 앉으면 핸드폰을 칸막이 위로 들어 몰래 사진을 찍으라는 거였죠. 더미는 그 일만큼은 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선생님 담배를 훔쳐 오라거나 싸움 잘하는 애에게 물을 뿌려보라는 명령도 따랐는데, 그 일은 할 수 없었다고. 더미가 명령을 거부하자 당신은 차츰 분노했습니다. 처음에는 웃으며 어깨동무를 했고, 그다음엔 협박을 했고, 마지막으로는 정색하고 더미를 남자 화장실로 불렀습니다. 삼십 분이라고 했습니다. 점심시간이었고, 인적이 드문 꼭대기층 화장실이었어요. 더미는 그곳에서 삼십 분 동안 쪼그려뛰기를 해야 했습니다. 당신은 담배 피우며 더미를 교관처럼 내려다보았어요. 중간중간 핸드폰 보며 낄낄대거나 다른 친구에게 전화하는 둥 딴청을 피우기도 했지만, 결코 더미에게서 눈을 떼지는 않았습니다.


나는 함부로 공감하거나 화를 내지 못한 채 묵묵히 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더미의 표정이 너무 이상했거든요. 자신의 복수에 대해 핑계를 대는 거라면 화를 내거나 격앙되어야 할 텐데, 더미는 어쩐지 슬픈 얼굴이었습니다. 더미는 그 시절 당신에게 고마워했던 순간들이 가장 치욕스럽다고 했습니다. 그날도 가장 사람 없는 화장실로 데려간 당신에게 고마웠다고, 아무도 그 꼴을 보지 않게 해줘 고마웠다고 했습니다. 한번은 누가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려 당신과 더미가 동시에 깜짝 놀라 마주 봤다고 합니다. 당신은 얼른 일어나라 했고, 더미는 꼭 자신이 공범이라도 되는 것처럼 벌떡 일어났대요. 제3자가 보지 않으면 폭력도 폭력이 아니라는 듯, 둘만 아는 일은 없었던 일이 된다는 듯……. 당신 다리를 자른 것도 그 때문이었습니다. 더미는 당신에게 주변 그 누구도 몰라볼 수 없는 표식을 남기고 싶었다고 했습니다. 혼자 공을 차는 아들을 보며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당신이 눈앞에 그려진다고요.


미안하지만, 당신이 불쌍하다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의아한 마음이 들어 공감할 여유가 없었는지도 몰라요. 이것도 직업병일지 모릅니다만, 상황이 이상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습니다. 더미는 왜 이런 이야기를 나에게 자백하듯 털어놓는 걸까요? 내가 무슨 속셈인지 알고? 당신 SNS는 사고당했다는 게시물 이후로 띄엄띄엄 올라왔습니다. 구체적으로 적혀 있지는 않은데, 당신은 어떤 이유로 다리를 잃었는지 모르는 것 같더군요. 이대로 내가 신고하면 어쩌려고 더미는 나에게 모든 걸 털어놓았을까. 혹시 나에게도 무슨 짓 하려는 건 아닐까. 그러나 더미는 나를 빤히 쳐다볼 뿐이었습니다. 마치 일시정지해놓은 화면을 보는 것 같았어요. 자신이 할 말은 끝났다는 듯, 이제 내가 무언가 말해야 한다는 듯. 그렇게 침묵이 찾아오자 순간 이 모든 상황이 남의 일처럼 분명해졌습니다. 더미가 나를 이곳에 부른 이유 말입니다. 왜 나는 고기를 먹고 있는지, 왜 더미는 먹을 수 없는지, 왜 우리는 친구일 수밖에 없는지.  



   

지금 내 표정이 어떻습니까?     




내면의 거울에 대해 말한 것 기억하시는지요. 나 자신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 하나 마음속에 넣어두고 살아간다고 했습니다. 그게 없어져버렸으니 지금은, 당신 앞에서는 부적절한 말이겠습니다만…… 꼭 다리가 하나 잘린 기분입니다. 예전과 같이 연기하며 살아가기는 영 틀린 것 같아요. 신체 절단을 겪는 이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증상이 있다는데, 바로 남아 있는 신체도 변화하는 것입니다. 말단 부위가 바닥에 내팽개친 찰흙처럼 뭉툭해집니다. 정신적으로도 전처럼 돌아갈 수 없게 됩니다. 지금 당신을 마주하니 그게 어떤 뜻인지 알 것 같습니다. 당신은 내 기억 속 누구와도 닮지 않았거든요. 당신은 이제 그저 의문의 범죄를 당한 피해자일 뿐입니다. 의식을 잃고 납치당한 뒤, 며칠이 지나 한쪽 다리가 잘린 채 길바닥에서 발견되었다고 하죠. 결국 여기로 나를 만나러 올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왜 그런 일을 겪어야 했는지 궁금할 테니까. 무슨 답이라도 듣고 싶었을 테니까.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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