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얼마 전에 선생님이 저한테 좀 이상한 소리를 하셨거든요.”
“얼마 전에?”
“플랫폼 보이콧하기 직전에요. 선생님이 강원도로 가신 이유가 따로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후배는 잠시 눈치를 보다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드라마 기획 초창기에 어떤 사람이 선생님을 찾아왔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윤동주 드라마 만든다고 언론에 뿌렸잖아요? 그러고 얼마 안 돼서 누가 밤중에 작업실로 왔다는 거예요.”
“누가?”
“말하자면 제보자인데, 아주 모르는 사람은 아니고요. 며칠 전부터 이메일을 엄청 보냈다고 하더라고요. 윤동주 시인에 대해 사람들이 모르는 게 있다면서요. 드라마 만들 거면 꼭 알아야 할 게 있다고.”
“어차피 그런 미친놈들 한둘이 아니잖아.”
나는 앞선 차 한 대를 추월한 뒤 후배를 보았다. 후배는 목이 뻣뻣이 굳은 듯 정면만 주시하고 있었다. 무시하는 말투로 들렸을까. 그래도 사실은 사실이었다. 드라마 제작실에 자기 아이디어 반영하라며 이메일 보내는 자들은 수두룩했다. 자기 말대로 쓰면 상 받는 건 일도 아니라고 전화로 호언장담하는 이도 종종 있었다. 후배는 헛기침을 하더니 마치 새로운 개념을 가르쳐주는 수학 선생님처럼, 약간 답답하다는 듯이 차근차근 설명을 시작했다.
“윤동주 시집이 사후에 출간된 거잖아요. 시집 내려고 펜으로 써서 정리해둔 원고가 있었는데 끝내 생전에 출판을 못 했죠. 주변 분들이 그 육필 원고랑 노트에 남아 있는 시들을 모아서 나중에 시집을 냈잖아요. 그래서 우리도 그 육필 원고 스캔본 보면서 토론하고 그랬잖아요. 최대한 윤동주 시인 눈으로 보려고.”
원고지에 세로로 쓰인 글자들을 뚫어져라 보던 나날이 눈앞을 스쳤다. 후배도 나와 비슷한 기억을 떠올리는지 다시 한번 말이 없었다. 얼핏 보기에 후배는 진중한 사람 같지는 않았다. 같이 일한 지 일 년도 안 됐는데 헤어스타일은 벌써 두 번 바뀌었고―막 기른 단발에서 평범한 남자 머리로, 그다음엔 스크레치 넣은 반삭으로―말투를 보면 그냥 나이만 먹은 고등학생 같았다. 그런데도 글을 읽거나 쓸 때, 특히 스토리 회의를 할 때는 완전히 다른 영혼이 빙의된 것처럼 차가운 눈빛을 보이곤 했다. 후배는 점점 조용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이었다.
“그런데 윤동주 시인의 노트를 보면 썼다가 지운 문장도 있잖아요. 마음에 안 들어서 죽죽 그은 것도 있고, 시집 엮을 때 뺀 문장들도 있고요.”
“「곡간」 같은 시 얘기하는 거 아닙니까? 이 땅에 드물던 섬나라 사람이 길을 묻고 지나간다, 그런 구절이었던 거 같은데.”
“네, 맞아요.”
마치 시험을 앞둔 수험생들처럼, 우리는 달달 외운 시구절들에 대해 생각했다. 후배가 말한 대로였다. 우리가 아는 윤동주 시 중에는 그가 생전에 노트에 써둔 걸 복원해 출판한 경우도 있었다. 그렇다 보니 원본이라 할 만한 육필 원고에는 윤동주가 쓰며 고민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당시 조선에 온 일본인에 대한 묘사도 노트에 기록되어 있었으나, 훗날 시집에 실을 원고에는 그 문장이 잘려나가 있었다.
“우리는 다 컴퓨터에 글을 쓰잖아요. 그런데 윤동주는 노트에다가 펜으로 글을 썼단 말이죠. 아까 말한 것처럼, 썼다가 지우면 보기 싫게 흔적이 남겠죠. 그 흔적을 보면 자기검열하는 것 같아 부끄럽기도 했을 거예요.”
“윤동주라면 그랬겠지.”
“더군다나 엄청 깔끔한 성격이었잖아요. 노트도 깔끔하게 쓰고 싶었겠죠.”
“그것도 그랬겠지.”
“그래서 시에다가 담지 못할 사적인 생각들을 써둔 노트가 따로 있었다는 거예요.”
그때 내 핸드폰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모르는 번호였다. 안 그래도 머릿속이 복잡한데 전화까지 받을 여력은 없었다. 나는 후배가 방금 한 말에 대해 생각했다. 전화가 끊어진 뒤에는 고개를 돌려 후배를 쳐다보았다. 후배는 왠지 초조한 낯빛으로 내 시선을 피했다. 나는 후배가 할 말을 대신 해주는 느낌으로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세상에 공개되지 않은 윤동주의 비밀 일기 같은 게 있다, 그런 얘기를 하는 겁니까?”
“…….”
“그런데 그 노트에 대해 아는 사람이 선생님을 찾아와서 윤동주는 사실 이런 사람이다, 라고 얘기를 했다는 거죠. 선생님이 잠적한 것도 다 그거 때문이라는 거고.”
“그렇죠.”
후배는 자꾸 내 쪽을 힐끔거리다가 아예 창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렇듯 중요한 이야기를 선생님이 나에게 안 하고 자신에게만 한 게 난감하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나는 머릿속으로 상황을 정리하느라 바빴다. 윤동주 일기가 만일 정말 있다면, 그게 여태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국민 시인이 아닌가. 미발표 원고가 있다면 진즉에 공개되었겠지. 그러니 그 일기라는 게 애초에 가짜일 가능성이 높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런데 후배의 상태가 점점 이상해졌다. 꼭 등짝이 가려운 사람처럼 패딩을 입은 채 부스럭대더니, 창문을 열고 바깥공기를 들였다. 나까지 찬물에 세수한 듯 정신이 말짱해졌다. 이어지는 후배의 말은 더욱 기묘하게 들렸다. 우리가 꿈속에 있는 게 아님을 알려주는 겨울 바람, 섬뜩한 속도로 곁을 지나쳐 가는 덤프 트럭, 조명도 켜지 않은 차 안에서 점점 낯설어지는 후배 목소리……. 우리는 어느새 칠흑처럼 어두워진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앞으로 오래 머물 장소에 처음으로 발을 들일 때, 우리는 누구나 잠시 멈춰 서서 주위를 둘러보게 된다. 후배가 작업실에 합류했을 때도 딱 그런 모습이었다. 전해 듣기로 몇 년간 독립영화를 만들어왔다기에 은근 자존심을 내세우지 않을까 싶었으나, 후배는 직업 탐방을 나온 견학생마냥 입을 벌린 채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때 우리 작업실은 꼭 신대륙을 찾아 밤바다를 항해하는 선실처럼 곳곳에 지도가 붙어 있었다. 윤동주의 삶을 드라마로 쓰기로 막 결정한 무렵이었다. 작업실 한쪽 벽면에는 윤동주 생전의 고향 지도를 커다랗게 붙였고, 당시 학교의 교실 풍경을 담은 그림과 연희전문학교의 정경도 여기저기 정리해두었다. 후배가 들어오기 전, 나는 선생님과 함께 밤이 깊을 때까지 윤동주의 생애를 추적하며 토론하곤 했다. 실종된 사람의 자취를 찾아가는 것처럼. 작업실에 후배가 진심으로 감탄하는 듯해 내심 우쭐하던 기억도 난다. 과로에 시달리고 돈은 적게 벌어도, 우리가 꿈꾸는 곳에 닿을 수 있으면 다 괜찮다는 생각.
그처럼 낭만적인 생각을 입밖으로 꺼낸 적은 없지만, 속으로는 다들 비슷한 마음가짐일 것이다. 그러지 않고는 버틸 수 없는 바닥이었다. 드라마는 오늘날 가장 대중적인 이야기 예술이고, 그만큼 많은 이가 한두 마디씩 품평을 얹는다. 그럴 자격은 모두에게 있다. 어떤 드라마가 대중의 심기를 거스르는 순간, 그 드라마를 직접 본 적 없는 사람조차도 아무 거리낌 없이 비난에 동참한다. 초등학교 교실에서 말 한마디 섞어보지 않은 아이를 따돌리는 것처럼. 그러므로 선생님은 문제의 그 이메일을 정독하며 우선 겁을 먹었을 것이다. 직접 본 적이 없는데도 그 표정을 훤히 상상할 수 있었다. 이메일에는 윤동주 일기의 몇 장이 사진으로 첨부되어 있었다고 한다. 한자가 섞인 글자들과 낡아빠진 종이. 모를 수 없는 필체였다. 사진은 세 장이었다. 그중 하나는 글쓰기에 재능이 있는지 모르겠다며 한탄하는 글이 쓰여 있었다. 1935년, 고종사촌 송몽규가 신춘문예에 당선된 무렵 같았다.
후배는 그 문장을 정확히 기억하진 못했지만, 친구를 축하해줘야 한다는 다짐을 꾹 눌러 쓴 일기였다고 한다. 선생님이 그 다짐을 읽으며 그것이 윤동주 일기가 맞음을 확신했다고 후배는 말했다. 혼자 보려고 쓴 일기일 텐데도 부럽다거나 질투 난다는 말이 없었으니까.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감정을 흉한 충동인 양 감추는 태도, 늘 책상 앞에 앉은 모범생처럼 자기 자신을 절제하는 모습. 그건 우리가 수 개월 동안 시, 산문, 각종 논문과 서적은 물론, 당시 지인들의 증언과 몇 없는 사진들 속 표정을 통해서도 수없이 그려온 윤동주 그 자체였다. 선생님은 그제야 그간 온 이메일을 꼼꼼히 읽어보았다고 한다. 신원미상의 그 사람은 할머니에게서 유품으로 윤동주 일기를 물려받았다고 했다. 원래는 할아버지가 젊을 때부터 수많은 책과 자료를 모아두었는데, 할아버지가 먼저 돌아가시며 그 유품을 할머니에게 넘겼고, 결국 자신이 물려받았다는 거였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