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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규민 Nov 18. 2022

단편소설_ 죽은 시인의 하이웨이 #4

숲, 이파리, 나무들. 나무라는 생명체는 가만히 보면 이상한 구석이 있다. 낮이랑 밤에 완전히 다른 생물처럼 보이는 것이다. 색깔이 모두 같아지기 때문일까. 낮의 나무들은 꼭 초등학생 그림처럼 짙푸르고 색깔도 다채로운데, 밤이 오면 시커멓게 하나로 뒤엉켜 공룡의 등줄기처럼 보인다. 후배와 나는 도로변 졸음쉼터에 차를 세운 참이었다. 나는 차 밖으로 나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여느 때처럼 무의미한 생각에 빠져들었다. 나무의 시점으로 우리를 봐도 그럴까. 우리도 낮과 밤에 완전히 다른, 이상한 생물처럼 보이지 않을까. 때로는 세상 모든 사람이 나보다는 똑똑하다는 생각도 든다. 다들 추악한 충동을 느낄 텐데도 교묘하게 잘 숨긴다. 마치 쓰레기통이 없으면 휴지를 주머니에 넣어두는 시민처럼 질서정연하지 않나. 유명인의 사생활이 드러날 때, 우리는 어쩌면 그의 미숙함을 경멸하는지도 모른다. 아무도 모르게 숨기고 다녀야 할 치부를 대낮에 드러냈으니 비난받는 것이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밤은 찾아오고, 우리는 가까운 이에게도 말 못 할 비밀을 안고 잠에 든다. 사실 윤동주 일기에 관한 소식은 선생님이 한 달쯤 전에 나에게 먼저 털어놓은 바 있었다. 윤동주가 동성 학생에게 감정을 느꼈다는 설정은 물론 쓰지 않기로 했다. 이 바닥에서 몇 년 구른 사람이라면 그렇게 결론 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 일기가 정말 진짜인지 검증을 맡길 생각조차 하지 않았고, 그게 진짜임이 분명해질까 무섭기까지 했다. 선생님과 나는 후배를 먼저 집에 보낸 뒤 밤이 늦을 때까지 작업실에 남아 이야기를 나눴다. 말은 내가 먼저 꺼냈다. 윤동주가 동성애 성향이 있었다는 설정은 소모적인 논란만 낳을 거라고. 그 설정을 무작정 싫어하는 쪽과 무턱대고 옹호하는 쪽이 서로 헐뜯을 것이며, 작품 자체에는 아무도 관심 없을 거라고. 끝없는 싸움이 벌어지고 언론과 인터넷은 기름을 부을 거라고. 그러니 만에 하나 이 일기가 진짜라 해도 공개하지 말아야 한다고 나는 주장했다.


선생님은 짐짓 내 말에 못 이기는 척했지만, 애초에 내가 그 말을 해주길 바랐다는 것은 훤히 알 수 있었다. 우리는 그때부터 일기에 관해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작업은 지지부진했고, 선생님은 곧 플랫폼 보이콧을 선언하며 자취를 감추었다. 보이콧이라니. 터무니없는 핑계였다. 나는 선생님이 강원도에서 앞으로의 작업 방향을 정리하고 있을 거라 여겼다. 그런데 후배가 고속도로에서 선생님 이야기를 꺼내니 내심 당황했다. 후배에게도 윤동주 일기에 관해 털어놓았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예 없는 일처럼 넘어가려던 게 아니었나? 그런데 왜 후배에게 더 자세히 상황을 공유한 걸까. 후배는 윤동주 시인의 변호사라도 되는 것처럼 스스로 이야기에 몰두하는 것 같았다. 윤동주 일기를 있는 그대로 반영해야 한다는 쪽으로 마음을 굳힌 듯했다. 우리가 강원도에 도착하면 나서서 선생님을 설득하겠다고, 그게 작가의 양심이 아니겠냐고 특유의 단정 짓는 말투로 열변을 토했다.


나는 찬바람 속에서 눈을 감고 그간 있었던 일을 되짚어보았다. 관자놀이에 자갈 하나가 박혀 있는 듯 아까부터 편두통이 욱씬거렸다. 테이블에 전등을 켜고 선생님과 함께 몇 번이고 들여다보던 일기 스캔본이 눈앞에 떠올랐다. 문제가 되는 윤동주의 중학생 시절, 다시 말해 동성의 학교 선배에게 연정을 품었다는 기록은 아주 짤막했다. 하지만 펜으로 또박또박 쓴 글씨를 보면 매 문장 사이 기나긴 고민이 필요했음을 알 수 있었다. 윤동주는 자신이 길가에서 꺾은 풀꽃을 너무 오랫동안 주머니에 넣어 다녔다고 썼다. 그게 무슨 뜻인지 나는 바로 알 수 있었다. 주변인이 증언하길, 윤동주는 특이하고 예쁜 꽃이 있으면 그걸 꺾어 외투 단춧구멍에 브로치처럼 끼우고 다녔다고 한다. 어느 오후에 윤동주는 파랗게 핀 들꽃을 꺾어, 그 형에게 같은 꽃을 달아주고 싶었다고 썼다. 그러나 결국 용기를 낼 수 없었고, 꽃잎은 주머니 속에서 곤충처럼 바스라졌다고 일기에 적혀 있었다.


“그게 전부라는 거지.”


후배는 어느새 나를 따라 밖으로 나와 있었다. 나는 차에 기댄 채 팔짱을 끼고 나무들을 올려다보았다. 후배는 패딩 주머니에서 전자담배를 꺼냈다. 누가 보면 절친한 친구라고 오해할 법한 모습이었다. 나는 후배가 대답하기 전에 말을 덧붙였다.


“게다가 그 시대에는 남자가 남자에 대해서 그런 글을 쓰는 게 아주 특이한 일도 아니었을걸. 남자 선배를 좀 동경할 수도 있지.”


그렇게 말하고 보니 내 목소리는 너무도 급박한 것 같았다. 사실 알고 있었다. 나도 일기를 읽었으니까. 그 형에 대해 윤동주가 쓴 문장들은 분명 동경 이상의 것이었다. 후배는 아무 말 없이 발끝을 내려다보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빨대에 대고 공기를 빨아들이는 것 같은, 전자담배 특유의 소리가 우리 사이에 맴돌 뿐이었다. 후배는 몇 번의 연기를 더 뿜어내고 나서 헛기침을 했다.


“선배는 그런 생각 안 해보셨어요? 윤동주는 뭐랄까, 너무 정답 같잖아요.”


“그래서 온 국민이 좋아하는 거잖습니까.”


“네, 그렇죠.”


후배는 미간을 찌푸리며 마지막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까슬까슬한 머리를 손으로 문지르며 전자담배를 도로 주머니에 넣었다. 그러고는 나랑 똑같은 자세로, 차에 비스듬히 기대고 서서 커다란 나무들을 올려다보았다. 우리 뒤편으로 작은 트럭 하나가 빠른 속도로 스쳐 지나갔다.


“그거 아세요? 윤동주 시를 다 읽어봐도 안 나오는 장면이 있는데요. 다른 사람과 몸이 맞닿는 장면이 안 나와요. 악수도 안 하고, 포옹도 안 해요. 친구랑 투닥거리거나 심지어 동물을 쓰다듬지도 않아요. 자기 자신과 악수나 하는 정도죠. 딱 한 번, 어린 동생 손을 잡는 장면이 있는데, 그때도 금방 놓아버리거든요. 심지어 순이라는 대상을 사랑한다고 하는데, 순이에 대한 시에서도 몸이 닿는다는 언급은 없어요.”


“그거야 옛날 사람이니까.”


“아뇨, 윤동주 시에서는 다른 사람들이 거의 항상 멀리 떨어져 있어요. 화자는 혼자 상상속에 있거나, 예전에 사랑했던 사람을 그리워해요. 어떨 때는 다른 사람들에게 말을 거는데, 그쪽에서 대답이 없기도 해요.”


“…….”


“엄청 외로운 사람이었을 거예요. 하숙집에 친구들이 항상 붐볐다고 하지만, 친구들에게 완전히 속을 터놓을 수는 없었을 거예요. 그런 사람은 남들 눈에 정답처럼 보이죠. 모범생처럼 보이고요.”


나는 거기까지만 듣고 후배에게서 고개를 돌려버렸다. 이렇듯 잠깐 차를 세우고 대화한다고 해서 후배 생각이 바뀔 거라 기대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후배는 내가 예상한 것보다도 훨씬 완고히 일기에 있는 대로 써야 한다고 믿고 있었다. 후배는 추운 바깥에 남아 발끝을 내려다봤고, 나는 차 안으로 들어왔다. 아무도 없는 차에서 느끼는 적당량의 고립감. 그대로 시동을 걸지 않고 오래도록 앉아 있고 싶었다. 드라마는 문제 없이 방영될 것이다. 진작에 알고 있었다. 무난한 방향으로 만들어져 많은 이에게 사랑받을 것이다. 드라마는 결코 작가만의 것이 될 수 없다. 적지 않은 투자금이 걸리고, 투자자들은 작가의 창작윤리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강력한 의지로 이익을 가져가고자 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궁금한 점은 있었다. 선생님은 왜 후배에게 이 모든 걸 알려주었을까. 설마 후배가 말한 대로 훌륭한 작품을 쓰는 것이 좋아서, 그 때문에 윤동주 일기에 미련이 남았던 걸까.


“이제 가죠.”


후배가 보조석에 들어와 앉으며 말했다. 나를 전용기사로 아는 것 같은 말투에 헛웃음이 나오면서도, 이런 식으로 행동하는데 그다지 밉상이 아니라는 건 참 그것대로 대단한 재주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윤동주 일기에 관해 벌써 알고 있었다고 후배에게 말할 수는 없었다. 그랬다가는 드라마에 일기 내용 넣으면 안 된다고 선생님을 설득한 얘기까지 해야 하는데, 어쩐지 부끄러운 일이었다. 나는 시동을 켜고, 자동차가 꼭 피가 도는 것처럼 서서히 따뜻해지며 진동하는 것을 느꼈다. 어깨와 목을 주무르며 밍기적대는데 후배가 옆에서 다시 입을 열었다.


“선배.”


“왜요.”


슬슬 운전할 마음가짐을 하자, 내 입에서는 지극히 사무적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내비게이션을 보니 조금만 더 가면 고속도로를 빠져나갈 예정이었다.


“우리나라 위인 중에 동성애자가 있어요?”


“글쎄, 없지 않습니까?”


후배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조금 시간이 흐른 후 알 수 있었다. 그럴 리가 없다는 말을 하려는 거였다. 그 별처럼 많은 이 중에 과연 한 명도 없었겠느냐고. 그냥 드러낼 수 없었으니 우리가 기억 못 하는 거 아니냐고. 나는 가속페달을 밟아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내비게이션의 기계음을 들으며 대답할 말을 찬찬히 골랐다.


“후배, 윤동주는 이제 단순한 위인이 아니잖습니까.”


“…….”


“무슨 말인지 아시죠? 하나의 상징이잖아요. 독립운동이라든지 민족이라든지.”


“누가 그렇게 정한 건데요.”


“모두가요. 다들 합의한 거예요. 사람들은 그런 상징적인 이미지가 훼손되는 걸 극도로 싫어해요.”


“훼손? 이게 왜 훼손이에요?”


후배의 매서운 눈길이 느껴졌다. 슬슬 짜증이 났다. 단어 꼬투리를 잡아 논점을 흐리는 것이 후배의 습관이었다. 나는 결국 이렇게 대답했다. 복잡한 생각이 싫은 사람들 마음도 헤아려야 한다고. 그게 우리 일이다. 드라마 시청자는 모두 사느라 바쁘고, 날마다 높은 사람 눈치를 보며, 알 수 없는 말을 견디며 살아간다. 그들에게 이해하기 쉬운 세상을 하나쯤 만들어주는 것도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 아닌가. 후배는 한참이나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거칠어진 호흡을 숨기느라 조용히 심호흡을 했다. 후배의 목소리도 점차 격앙되어갔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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