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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명인 Sep 13. 2017

자아성찰(1)

최저애정량

버스정류장에서 한 소년을 만났다. 그 소년은 걸어오는 내 등 뒤로 시선을 다급히 던지며 초조하고 불안한 모습을 감추지 못했다. 소년의 그런 불안정한 모습은 정류장과는 어울리지 않아서 나도 모르게 흠칫 놀라고 말았다. 뒤를 돌아보고 나서야 소년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인위적으로 상기할 수 있었다. 이윽고 버스가 도착했고 그가 타려는 버스가 내가 타려는 버스가 같았던 것임을 알게되었다. 그에게는 한없이 떨리는 버스였으려나. 나에게는 그저 그런 무덤덤한, 돌이켜보면 몇 번 버스인지도 기억나지 않는 그런 버스일 뿐이었는데.


소년의 불안한 모습은 곧바로 나를 깊은 사유 속으로 빠트렸다.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 되었으리라 짐작해본다. 세상에서 그 무엇도 두렵지 않은 개구쟁이의 나이도 아닌, 그렇다고 세상에 적응해서 대수롭지않게 하루를 살아가는 시기도 아닌 애매한 나이. 어설프게 커버린 때라 귀여워보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젊은 청춘이라 말하기엔 어리고 어린 나이. 그런 그에게서 본 불안은 금방이라도 옆구리를 푹 하고 찌르면 그대로 주저앉을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태어남은 우리가 스스로 결정한 것이 아니라서, 우선 세상에 던져지고 나서야 우리가 태어난 이유에 대해 찾게 된다. 그런데 살아가는 의미를 도대체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태어나서 일정 시기까지 우리는 반드시 누군가의 사랑과 도움이 필요하다. 우리는 스스로 먹을 것을 구하지도, 위협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킬 수도 없게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것 뿐만이 아니다. 먼저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저도 살아도 되겠습니까?' 라고 묻고 친절과 호의를 얻어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금새 타인의 존재에 대한 압박으로 찌그러지고 말 것이다.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싶겠지만 사랑받지 않고서는 인간은 살 수 없고, 사랑받기 위해 인간은 살아간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실제로, 사랑받으면 양지 바른 곳에 묻혀 존재가 영원토록 빛날 수도 있다. 반면에 사랑받지 못한다면 모두가 그 존재의 소멸을 간절히 원하고 또 원하게 될 수도 있다. 누구에게나 '나'라는 존재가 하나씩 예외없이 주어지기 때문에 삶의 의미에 대한 위와 같은 고민은 죽을 때까지 그만 둘 수 가 없다.


찌르면 주저앉을 것 같이 위태로워 보이는 그 소년을 보면서, <한 인간이 태어나서 타인에 의해 찌그러지지 않고, 자기만의 최소한의 삶의 영역을 구축하는데 성공해서, 세상과 맞서다 상처입고 피와 눈물을 쏟게 되더라도, 난 살아가도 괜찮은 사람이야 난 사랑받기에 충분한 사람이고 행복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야 라고 삶의 의미를 결코 놓치지 않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아야할까> 생각했다.


과도한 사랑이 오만방자한 인간을 만드는 것처럼, 겸손하고 조심스럽고 남에게 미움받을까 두려워 눈치 보는 인간에게는 아직 사랑이 부족한 것이리라. 그래서 작은 호의라도 받으면 금방 사랑에 빠지고 작은 비난이라도 들으면 하루종일 우울해지는 것일 터다. 사람들의 비판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것도 문제일 수 있지만 그보다 더 슬픈 일은 사람들의 비판에 자신의 존재이유를 부정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다.

"여러분들 모두 제가 죽기를 원하니 제가 기꺼이 죽겠습니다."

누구도 이렇게 말할 수는 없는 법이다.


저마다의 '나'에게는 피할 수 없는 책임이 있다. 그것은 바로 나 자신을 사랑스러운 존재로 끊임없이 만듦으로써 세상에서 나의 존재이유를 잃지 않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가 살면서 주고받는 사랑은 생존과 직결되는 가장 숭고한 위상을 갖는다.


사색의 끝에 뒤를 돌아보니 그 소년은 아무일 없다는 듯이 핸드폰을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 소년의 앞으로의 삶이 찌그러지지 않기를, 최저애정량이 채워지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사실 그 소년과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내가 그 소년을 통해 본 것은 어쩌면 애써 태연한 척 하지만, 찌그러지고 싶지 않은 애정결핍에 시달리는 내 본모습이었을지도 모른다.


"제발 저를 소중히좀 다뤄주시면 안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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