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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팥 Jun 14. 2021

조금 바보 같아도 마음 편히 살아간다

마음을 안아주는 생각들

 
오늘도 어김없이 아침 7시에 전철을 탔다. 자리에 앉는 것은 엄두도 못 낼 일이라 그저 긴 줄을 따라 좌석 앞까지만 도달해도 오늘은 운이 좋은 편이라 생각한다. 마침, 내가 가서 설 공간이 보여 사람들 틈을 비집고 들어가려는 순간 아뿔싸, 나보다 한걸음 멀리 서 있던 20대로 보이는 여자 한 명이 나를 흘깃 보더니 잰걸음으로 나보다 더 빨리 그 자리로 착지한다.


하... 오늘도 편하게 가긴 글렀다. 나를 견제하고 먼저 도착한 그 여자 뒤에 비스듬히 끼어서 새카만 뒤통수를 한번 째려보는 것으로 혼자만의 복수를 끝낸다. 내가 더 빨리, 악착같이 가서 서 있을걸. 조금 후회가 된다. 그렇다고 내가 행동이 느리다거나 평소 게으른 사람이거나 한건 닌데, 잘 생각해 보니 나는 사람들 사이의 그 '틈'을 잘 모르는 사람인 것 같 느껴진다.


사회생활을 하거나 친구들을 여럿 만나거나 혹은  사람 많은 곳을 다니다 보면, 그 틈을 정말 잘 아는 들을 마주 할 때가 있다. 약삭빠르게 눈치 보고 자기 이익을 잘 취하는 사람, 요리조리 재고 따져서 나에게만 이롭도록 상황을 잘 조종하는 사람, 아니면 내가 부리기 좋은 호구들만 골라서 사귀고 이용하는 사람. 그런 사람들 말이다. 그들은 정말 작은 틈을 잘 파고든다. 그리고 거기에 더 큰 균열을 만들어낸다. 그 기술은 어쩌면 천부적으로 타고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이들을 생각하다 보면 내가 너무 바보 같은 건 아닌지 짜증이 난다. 믿었던 지인에게 십수 년간 밥만 사주다가 어느 순간 내가 호구라는 것을 깨달았던 순간이 있었다. 직장에서 믿고 잘해주며 자리까지 만들어주고 퇴사했는데도 인사조차 없는 후배도 있다. 하다못해 지하철에서도 늘 자리를 빼앗기기 일쑤다.

그렇다고 내가 마냥 착한 사람아니다. 마음속으로 곧잘 누군가를 미워하고 저주하 싫어하는 사람, 서로 맞지 않아 관계가 끊어져 버린 이도 많다. 내적 악다구니를 가득 품긴 했지만 남들 앞에 나서서 나의 본심과 성격을 드러내는 것 좀 힘들 뿐이다.  또한 두려움이 많아서 솔직한 마음을 말했을 때 상대의 반응에도 겁을 낸다. 


하지만 바보같이 살았던 걸 후회하진 않는다. 어차피 약삭빠르게 살려고 노력해 봤자 잘 되지도 않고 여우짓은 흉내도 잘 못 낸다. 오히려 그렇게 되어보려 어설프게 행동하다 더 우스워진 적 결국 포기했다.

사람은 그냥 생긴 대로 살아야 하는지도 모른다. 내가 좀 어수룩하고, 이 나이를 먹고도 때론 순진하다 못해 천진무구하단 타박까지 듣기도 하지만, 어쩔 수가 없다. 이게 나인걸.


종교를 믿진 않지만 막연한 믿음이 있다. 보통의 선을 따라 사는 것에 대한 믿음이. 복이 돌고 돌아 나에게 닿지 않더라도 생긴 대로 내가 사는 방식을 믿는다. 양보하기 싫어서 빼앗기기 싫어서 악바리를 부리다가 화병을 얻기보단 물 흐르는 대로 천천히, 내 삶이 흐르는 곳의 물이 되어 유유히 살고 싶다.


나와 같은 바보들에게 함께 하자 말하고 싶다. 우리에겐 그리 많은 이익이 오지 못할지라도 이렇게 생긴 대로 웃으며 살아가자고. 우린 이렇게 앙증맞은 새가슴으로도 충분하고 넉넉하게 행복하자고 말이다.




사진/영화 '롤'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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