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였을까? 어디를 갈까 궁리하며 매일 걷기를 시작하는 나의 모습은. 늘 걷기에 진심인 나와 달리 우리 가족은 나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 그도 그럴 것이 둘레 길을 걷는다 해서 누가 알아주는 것도, 돈을 주는 것도, 상을 주는 것도 아닌데 힘들고 어려운 일을 왜 굳이 사서 하냐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누가 뭐라던 나만 좋으면 되는 거 아닐까? 나에게 걷기란 엄마의 시간이며 아내의 시간인 동시에 한편으로는 또 집안일에서 벗어나는 시간이다. 오롯이 내가 누릴 수 있는 그 시간이 그래서 나는 정말 행복하다.
초록 초록한 나뭇잎들의 흔들거림 사이로 눈이 부시도록 빤짝거리는 햇살은 나를 어린 세계의 시간으로 흙길을 밟으며 걷고 있는 아이의 발걸음으로 옮겨준다. 그때의 향수를 흩날리며.
커다란 책가방을 메고 터벅터벅 길을 걸어가며 길 둑에 앉아 노오란 민들레 꽃을 뜯고, 강물에 꽃잎을 떨어뜨리며 미소를 짓고 있는 그 어린아이의 얼굴로, 선생님을 따라 널따란 초록 잔디에 누워 뭉게구름이 가득한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며 동시의 한 구절을 써 내려가던 아이의 마음속으로, 뙤약볕 햇살 아래 운동장 흙더미 속에서 돌멩이를 주우며 개미랑 이야기 나누던 아이의 손등으로, 들로 산으로 뛰어다니며 솔방울을 줍고 잠자리를 쫓아다니던 아이의 두 다리로.
그때부터였을 거라 생각한다. 내 걷기의 시작은!
타고난 나의 두 다리는 탄탄하고 단단한 나의 큰 자랑이었지만 동시에 불만거리가 되곤 했다. 어느 여자아이들처럼 여리고 곧은 다리를 바랐지만 50이 다 돼가는 지금의 내 다리는 여전히 굵직하다. 그래선지 지금도 자동차 운전보다는 자전거를 타고 골목골목을 누비는 시원함이 좋다. 유유자적 내 맘대로, 내 발길대로 홀로 여유롭고 편안하게 튼튼한 내 다리로 걷는 것도.
걷다 보면 생각이 많아진다. 한 고개를 넘어 앞을 보면 끝없이 펼쳐지는 하늘과 구름을 보며 저 앞에는 저 끝에는 뭐가 있을지 하늘은 매일 저 모습일지 상상을 한다. 그러다 문득 현실로 돌아오더라도 내가 이 길을 밟고 지나가면 또 누가 지나갈까? 나는 또 언제 이 길을 다시 밟으러 올까? 오늘 나를 반겨주는 꽃들이 아름답고 발끝에 전해지는 흙의 부드러움과 촉촉함을 온몸으로 느끼며 혹여나 이 모습을 놓칠까 아쉬워 나는 얼른 사진기의 셔터를 마구 누르게 된다.
엄마의 사진엔 꽃밭이 있어
꽃밭 한가운데 엄마가 있어
그녀의 주변엔 꽃밭이 있어
아름답게 자란 꽃밭이 있어
초록빛 머금은 새싹이었지
요즘은 걷다 보면 ‘엄마의 프로필 사진은 왜 꽃밭일까’란 노래를 부쩍 많이 흥얼거리게 된다. 어릴 적 아이는 걷고 걸어 꽃밭 가득한 사진의 주인공이 되어 나이를 먹어가고 있다. 또 그렇게 걸어가겠지. 발걸음에 시간이 더해 새로운 프로필 사진의 한 부분을 채우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