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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팥 Sep 18. 2020

그 바람은 우리 잘못이 아니야

우리 좋은 마음만 해요

아침 7시면 버스를 탄다. 올해 초 다니는 직장이 아주 먼 곳으로 이전을 했고, 별다른 차선이 없던 나는 열심히 최선을 다해 새벽을 열고 출근 중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정류장과 집이 가까워 버스 앱을 보고 버스 도착 5분 전에 나가 버스를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버스를 자주 이용하는 사람이라면 아는 사실이겠지만, 가끔 버스 정류장에 태울 사람이 없고 신호등도 잘 들어맞아 정지 없이 버스가 오게 되는 날이 있다. 그럴 땐 버스 도착 5분 전 갑자기 버스 도착 1분 전으로 바뀐다. 긴박한 순간이다. 이걸 타야 지하철의 러시아워를 피할 테니 사력을 다해 전력질주를 한다. 여름엔 에어컨 버스가 시원하니까 달리기를 해서 버스를 타도 견딜만했는데, 오히려 요즘같이 애매한 날씨엔 기사 아저씨가 에어컨을 안 틀어주실 때도 있다. 래서 전력질주를 다해 버스를 탄 날은 마스크를 쓰고 숨을 헐덕거린다.

딱 어제가 그랬다. 덥고 답답해 시원한 아침 공기를 마시려 버스 창문을 열었더니 아뿔싸. 바람이 내게로 오지를 않고 앞자리에 앉은 아저씨의 숱 없는 머리칼을 춤추게 했다. 당황한 아저씨가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매만졌다. 나는 허겁지겁 그 창문을 닫고 다른 자리로 가서 앉아 창문을 열었다. 버스가 정류장을 지나칠수록 많은 사람들이 가득 들어찼다. 참 부지런한 사람들이야. 이렇게나 일찍 각자의 이유를 가지고 길을 나서다니. 창문 틈으로 불어오는 바람에 나는 모르는 사람들에게서 동지애를 느다 가슴이 주책없이 뜨거워졌다.

사람들이 가득 들어찬 버스가 방향을 바꿔 지하철 역을 향해 전력을 다하자 바람의 방향이 또 바뀌었다. 앞을 향하던 바람이 이제 뒤를 향해 불어오고 또 누군가 열어놓은 창문에 양 옆에서 불어오던 바람이 섞여 불기도 했다. 람은 참 알 수 없었다. 그렇게 출근길 아침, 모처럼 창문이 열린 버스 안에 앉아있으니, 바람이라는 게 우리네 사는 모습과 참 많이 닮았다는 생각 문득 들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인생 마치 의도하지 않은 바람의 방향처럼 왔다 갔다 했다. 나는 좋은 일을 했다 생각했지만  결과적으로 좋지 않았던 일이 많았다. 난 최선을 다했다 생각했지만 다른 이들에겐 그 최선이 별로였던 적도 종종 있었다. 남이 한, 아무 뜻이 없던 일이 내겐 큰일이 되어 돌아오기도 했으며, 나는 나름 큰 마음을 먹고 했지만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버린 것도 있었다. 그렇게 누구 하나의 잘못이지도, 나만의 잘못이지도 않았다. 알 수 없는 바람처럼 그냥 스쳐갔고 흘러갔고 남아있다가 또 없어지기도 했다. 시간이, 세월이 지나고 보니 모든 것은 그스쳐가는 바람 같았다. 훅 불어오고 또 천천히 흘러가 버렸다. 


다만, 어느 날 앞자리의 사람이 열어놓은 창문에서 불어온 그 바람이 내 이마에 닿았을 때 시원하게 내 피로를 날려줄 수 있는 미풍이기를 바라본다. 내가 누군가의 옆을 스쳐갈 때 무심코 그이에게 부는 바람도 내가 맞이하기 바라는 대로 그랬으면 좋겠다.

런 생각을 하다 보니 버스가 역에 도착했다. 버스를 내리며 아침 바람이 내게로 오는 걸  느꼈다. 이제, 정말 가을이 는지 바람 끝이 참 시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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