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oname Mar 20. 2024

마흔-264 무능한 나에게 고함

무능해도 버림받지 않아.

요즘 나는 무능하다.

사실 작년부터 그랬다.

정확히는 정신과 약을 복용한 그 3개월이 이 무능함의 시작이었다.


어릴 적 IQ 검사에서 130은 넘진 않았지만 친구들 중에는 내 아이큐가 가장 높았다.

그래서 친척 동갑내기의 질투를 사서 또 왕따를 당했었다.


내게 질투를 피하는 방법은 무능해지는 길이었다.

그러면 동성들 사이에서 질투를 피할 수 있다.


가장 최초로 나의 '유능함'에 대한 질투로 조롱을 받은 기억은 초등학교 1학년 때이다.

만점을 받은 나에게 같은 학급 친구는 생식기와 동음이의어를 사용해서 나를 조롱했다.

친구들은 당혹스러워 하는 나를 보며 모두 비웃었고, 그런 나의 반응을 보고 '너 정말 예민하고 이상하다'며 또다시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그 뒤로 나는 다 맞을 수 있어도 한개씩은 의도치 않게 틀리는 이상한 습관이 생겼다.

나는. 조롱의 대상이 되거나 질투의 대상이 되고 싶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니 참 끔직하고, 슬펐던 것 같다.

종종 내가 너무 잘난 척을 한 것 같으면 그때의 그 수치심과 모멸감이 올라와

스스로를 힐책하는 버릇이 있다.


그럴때면 혼잣말로 "이상아, 이상아, 이상아, 정말 부끄럽고 수치스럽다. 왜 그랬어!!!"라고 말한다.

그리고는 이내 "괜찮아. 그럴수 있지. 내게 아무 영향도 줄 수 없는 일이야."라고 타이른다.


명상을 하면서 이 수치심은 그래도 견딜만한 정도가 되었는데, '이불킥'이라는 것을 넘어서는 차라리 죽어 버리고 싶은 수치심이었다.


그러고보면 어떤 감정이든 차라리 죽어버리고 싶을 지경의 강도로 느꼈었는데, 요즘은 그렇지가 않다.

그러니까 요즘은 더더욱 무능하다.


꼭 해명하고 싶은 부분은 기술사 중에 멍청한 상태인 사람은 나 밖에 없다는 이야길 꼭 하고 싶은데,

그말을 했다간 또 어떤 비난을 들을지 모르니 그냥 잠자코 그들의 유능함에 고개를 끄덕이는 수 밖에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두려움에 의해서 멍청한 짓거리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어제는 명상을 하면서 내가 팀장으로 있던 시절 팀원이셨던 분(모두가 고문관이라고 칭했던)께 사죄의 명상을 했다.


사람이 겪어봐야 안다고,

공포를 느끼는 상황에서 시야가 좁아지고, 사소한 실수를 하게 되는 것.

뇌가 패닉 상태에 빠져 아무리 듣고 또 들어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는 걸 요즘 알게 되었다.


꼭, 이렇게 겪어 봐야 아는 걸까.



놀라운 점은 이렇게 무능하고, 실수를 연발하는 중에도 예전처럼 엄청난 수치심에 휩싸이지 않는다는 거다.


이렇게 소시오패스가 되어가는걸까 싶지만

정말로 이쯤되니 나의 무능함을 받아들이게 되고, 실수를 나라는 사람의 존재가치와 분리할 수 있게 되었다.


옛날 같았으면 여기 17층이니 저 창문 틈 사이로 뛰어내릴까 했다는 거다.


지금 나는 약간 두려움에 차있긴 하다.

화장실에 자주 간다는 지적에 소변을 참다가 방광염에 걸린 성인이라니...


뭘 어쩌면 좋을지 생각해보다가

건강검진에 뇌CT촬영을 신청했다.

정밀 검사를 좀 받아보고 싶은데, 사실은 지금 이게 여러가지 무의식의 콜라보레이션이라는 걸 알고는 있지만


내가 좀 알아야할게 있다.


'무능해도 버림받지 않는 다는 것.'

'실수를 해도 쓸모없는 존재가 되는게 아니라는 것.'


세상은 나를 비난하고, 공격하고, 조롱하는 곳이 아니라는 것.

나는, 그리고 너는, 우리는 충분히 존재하는것 만으로도 제 역할을 다하고 있다는 것


하필 꼼꼼하지 못한 내가 가장 꼼꼼해야하는 일을 하면서 이 고생을 하는게 종종 또 웃긴다.

일전에 명상센터에서 주방일을 돕다가 당근 채썰기를 못해서 욕먹은게 생각나네.


당분간 계속 무능할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평생 무능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어쩌겠나.

나는 살아있고, 나를 사랑해야 하는 것을


살아가고, 사랑함은 무능함과는 전혀 다른 문제인 것 같다.

굳이 엮어보자면 그건 모두 두려움과 관련된 문제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적어도 무능하다고해서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건 아니라는 거다.


그러고보니 전에 프리랜서로 일할때,

정말 무능했던 퍼블리셔분이 계셨는데, 그 분은 파트장님께 정말 귀염을 받았었다.

(물론, 기라니까 기라는 시늉을 했지만...)


온갖 기억이 다 나는구나.

그런데 왜 숫자는 틀린거지?

예전엔 이보다 더 복잡한 보고자료도 삽시간에 만들었는데.


좀 편안해져야할 것 같다. 사무실에서도.

요즘엔 사람들이 자기들 끼리 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웃고 장난치는게 부러운 지경이 되었다.


외로운가보다. 사무실에서도.

작가의 이전글 마흔-265 견고한 세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