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식 게임

by 안녕나무

학부모들 테니스 모임에서 게임을 했다. 8명이 두 팀으로 나눠서 1번부터 4번까지 순번을 정하고 각 팀의 1,2번이 복식게임을 시작했다. 1게임 승부가 정해지면 이긴 팀에서 1번이 나가고 3번이 들어온다. 이런 식으로 해서 포인트를 많이 쌓은 팀이 이기는 방식이었다. 이걸 호주식 게임이라고 했다.


나는 가위바위보를 해서 진 팀의 3번이 되었다. 화요클럽에선 다 같이 초보들이라 서브만 성공해도 득점이라 재미도 덜하지만 긴장감도 덜 하다. 학부모 모임은 시대회에 나가 수상하는 사람부터 초보들까지 실력차가 크다. 서브만 성공하면 랠리가 시작되니 서브에 대한 부담감이 컸다. 재밌자고 하는 게임이지만 이래저래 긴장이 많이 되었다.


게임하기 전에 코트에서 다 같이 마주 보고 공을 주고받으며 몸을 풀었다. 랠리가 잘 되는 팀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공을 주고받고, 초보 쪽은 사방으로 튀는 공 잡으러 다니기 바빴다. 그래도 확실히 달라졌다고 느낀 건, 공이 날아올 때마다 한 팔로 방향을 잡고 가서 친 것이다. 스윙이 가다 마는 건 여전했다. 잘하는 사람들의 공은 너무 빨리 와서 방향 잡고 스텝 가고 할 시간이 없었다. 역시 실전은 실전이었다. 멀리서 공이 천천히 날아올 때 방향 잡고 스텝 얼마나 갈지 생각하고 갈 수 있는 거지, 다다다닥 달려가기가 바빴다.


서브는 잘 들어갈 땐 잘 들어가더니 안 들어갈 땐 네트를 못 넘기거나 폴트 되거나 아웃되었다. 잘하는 사람도 서브실수를 했다. 하지만 두 번의 서브 기회 중에 한번 못 넣으면 그다음은 잘 넣어 서브로 실점하는 일은 없었다. 나는 5:5 상황에서 서브 실수를 연이어해서 한 포인트를 잃고 나왔다.


빠르게 공이 오가는 거 보고 있다가 내가 막아야 하는 범위인 줄 모르고 공을 그냥 보내기도 했다. 물론 여러 개 잘 보내서 경기 흐름을 잘 이어주기도 했고 얼떨결에 발리로 공을 막아내기도 여러 번 했다. 후반으로 갈수록 발도 안 움직이고, 서브 실수도 잦아졌다.


게임은 레슨보다 운동량이 적어 서 있기 추웠다. 레슨은 반팔에 계절에 맞는 긴팔 하나 입고 쳐도 20분 내내 뛰어다녀야 해서 추운 줄 몰랐는데 게임은 주로 잘하는 사람들이 뛰어다니며 공을 치고 나는 앞에 서 있는 시간이 많았다. 나중에는 잘 치는 사람이 벗어놓은 잠바를 빌려 입고 서 있었다.


저번보다 실력이 늘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내가 봐도 늘긴 했다. 하지만 같은 시간에 '엄청' 잘하게 된 아빠 한 분이 있었다. 가장 잘하는 분과 내 눈에는 거의 비등한 실력이 되어 나타났다. 공이 네트를 살짝 넘어가며 바닥으로 빠르게 꽂히는 게 보기에도 시원했다. 나는 앞에 춥게 서 있다가 점수 낼 때 내 쪽을 공략하는 걸 알게 되니 좀 그랬다. 레슨으로 올라간 재미가 게임하며 확 떨어져서 왔다.


12.3 계엄사태 이후 일상이 어디까지 계속될 수 있을까 걱정했었다. 집합금지로 못 할 수도 있겠구나 했던 종산제를 했고, 다음날 잡혀있던 테니스게임도 했다. 언제까지 이 사태가 이어질까. 하루하루 다시 맞이하는 일상이 너무나도 소중하게 느껴지면서도 뭘 해도 마음 한편에 돌덩이가 얹혀 있는 것 같이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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