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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나무 Dec 14. 2023

살기 위해 운동한다

- 중년의 운동법

술을 마시던 시험공부를 했던 밤을 새우고도 다음날 평소대로 생활했다. 하루 못 잔 것은 다음날 자고 나면 되었다. 하룻밤 새는 것쯤이야 거뜬했던 20대의 기억이다. IMF여파가 졸업 때까지 가서 예정에 없던 대학원을 가게 되었다. 수십 통의 입사원서가 불합격되고 대학원에 가게 되면서 어떻게든 잘 해내리라고 마음을 독하게 먹었던 것 같다. 컴퓨터를 전공하며 잘 안 맞아 전과까지 생각했던 터라 대학원 수업은 쉬울 리 없었다. 수업마다 돌아오는 발표, 과제, 시험을 다 해내기 위해 연구실에서 밤을 새우는 날이 많았다. 지도교수님이 새로 부임해 오신 분이셨다. 대학원에 갈 계획이 없던 내가 갑자기 갈 수 있었던 이유도 새 연구실에 자리가 생겼기 때문이었다. 연구실의 첫 제자였던 나를 데리고 교수님은 매주 모교로 세미나를 다녔는데 나도 발표차례에 있었다. 원정수업을 가기 전에 알아들을 수 있게 수업준비를 하고 내 발표차례일 때는 발표연습을 하고 또 해서 갔다. 그 시절에 요가학원을 어떻게 다니게 되었는지는 20년이 지난 지금에선 떠오르지 않는다. 기억나는 건 학교 근처였다는 것과 밝은 빛의 반짝거렸던 나무바닥과 동그란 얼굴에 큰 눈을 가졌던 귀엽고 어렸던 선생님의 모습이다. 수수한 차림의 선생님이 알려주는 수업 내용은 평범했다. 그래서인지 수업 가는 길이 한 번도 부담스럽지 않았던 것 같다. 쉬운 동작들을 선생님의 안내에 따라 하다 보면 책상 앞에서 잔뜩 굳었던 몸이 펴졌다. 쉬운 동작들이라도 선생님처럼 몸을 만들려면 끝까지 포기하지 않아야 할 수 있었다. 앉아서 양 발바닥을 붙인 채 두 발을 몸 쪽으로 바짝 당기고 배를 앞쪽으로 접으며 정수리를 땅으로 향하게 하는 자세가 있었다. 자꾸 멀어지려는 두 다리를 움켜쥐고 허리를 앞으로 숙일 때면 손안에 잡힌 몸이 튕겨 나갈 듯 팽팽해졌다. 버티며 가만히 그 자세로 있다 보면 중력이 일을 했다. 무거운 머리가 점점 아래로 떨어졌다. 머리가 천천히 허리근육을 늘리고 당겨 결국은 정수리가 땅에 닿았다. 그러고 나면 뭔가 해낸 것 같은 뿌듯함이 밀려왔다. 오늘도 해냈다. 연구실에 돌아가서도 뭐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1년을 요가를 했다. 수업마다 포기하지 않고 몸을 늘려가고 동작을 만들어가고 하다 보니 어디 가도 뻣뻣한 걸로 빠지지 않던 내가 유연하다는 말을 듣기 시작했다. 살면서 가장 열심히 운동했던 내 기억의 한 조각이다. 


그러고 보니 나에게 운동은 몸을 쓰는 기쁨, 재미라기보다 힘든 일을 극복할 때마다 만났던 방법이었다. 힘들 때마다 운동을 만나고 운동을 하며 얻은 힘을 다시 일상에 연결시켜 이겨내고 했다. 일을 그만둔 지 10년이 훌쩍 넘었지만 언제라도 다시 일을 시작할 수 있다고 여기게 되는 건 이직을 준비하며 쉬는 동안 큰 아이가 생기고 육아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아이를 세 살까지 내가 키우기로 결심했다. 일을 쉬는 중이었어서 나만 결심하면 되었다. 학업과 취업을 이어가며 여러 성취를 이뤄가는 과정에 갑자기 튀어나와 나를 온통 흔들어대던 불안이 있었는데 그때는 안정되지 않은 어린 시절 때문이라고 여겨졌다. 아이가 세 살까지가 중요하다는 말이 너무 동의되었다. 아이의 삶이 안정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삼 년 정성을 쏟았다. 띠, 띠, 띠, 띠~~~~~! 하고 기다리던 네 살이 되었다. 뒤돌아보니 아이는 어제와 별 반 다르지 않게 작은 아이였다. 살면서 가장 당황스러운 순간을 꼽으라면 아이가 네 살 되던 날이라고 할 수 있다. 입시를 끝내고도 휴식기가 있고, 회사에서 프로젝트를 6개월 1년씩 하고도 휴가가 있는데 3년 육아를 끝냈는데 아무도 나의 휴식을 보장해주지 않았다. 게다가 육아는 이게 끝도 아니었다. 그때부터는 그럼 언제가 육아의 끝일까 가늠했다. 애초에 기준이 아이가 아니라 내 안에 불안에서 시작해서 아이 성장 어디에 선을 긋기란 쉽지 않았다. 게다가 내가 일했던 곳은 야근도 많고 출장도 많았다. 한 프로젝트가 시작되면 출장이 이어졌고 시스템 오픈 날이 잡히면 비상이었다. 같은 부서에 여자 과장님들이 아이가 열이 난다고 어린이집에서 연락이 오면 발을 동동 구르는 것을 보았다. 주재해야 하는 회의 스케줄에 상관없이 아이는 열이 났다. 거기로 돌아가 일과 가정을 해낼 수 있을까. 이제와 아이를 잊고 일할 수 있을까. 일터로 돌아가기를 머뭇거리는 사이 시간이 흘르고 둘째가 생겼다. 돌아갈 문이 닫혔다는 생각도 들었고 둘째까지 키우고 나면 무슨 할 일이 생기겠지 한편으론 새 문이 열릴 거라는 기대도 들었다. 경단녀 같은 단어를 들을 땐 움츠려 들고 캐나다 이민에서 돌아온 친구가 하던 일을 원격으로 계속할 수 있다며 들고 온 걸 보니 유지, 보수 쪽은 할 일이 있겠구나 싶기도 했다. 둘째까지 어린이집에 보내고 나니 경력을 보유했던 시절에서 10년이 넘게 흘러 있었다. 이제 내 시간을 우선에 두고 무슨 일을 할지 찾아봐야지 하는데 남편이 박사과정을 시작하고 싶다고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남편도 회사 상황이 여의치 않아 몇 년을 미뤄 온 일인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이제 무엇을 할지 알아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는데 남편은 원서만 넣으면 갈 수 있다고 했다. 그날부터 말로만 듣던 불면의 밤이 찾아왔다. 아이들이 잠들면 생각이 한 더미씩 쌓아 내렸다. 잠들었다가도 새벽에 벌떡 일어나 앉았다. 가슴이 답답해져서 새벽예불이 시작되는 4시쯤엔 산사는 깨어있겠지 싶어 산으로 갔다. 대중을 깨우는 새벽 종성, 법당의 종소리를 떠올렸다. 칠정례와 반야심경, 이어지는 예불을 떠올리며 법당 쪽으로 뛰어갔다. 한 시간이면 다녀올 수 있었다. 그러다 달리기로 이어지고 헬스로 이어졌다. 중년의 중심이동을 멘붕을 이겨내며 요란하게 해냈다. 운동하며 차근차근 내 생활을 다시 잡아갈 수 있었다.  


해보니 중년에게 운동은 살기 위해 꼭 해야 하는 것이었다. 다시 일을 시작하던, 집에 있던 말이다. 일을 언제 시작하게 될지 모르니 늘어지지 않게 하루를 살려했었는데 운동을 뭐든 하나 했으면 되었을 것 같다. 달리기는 나에게 바닥까지 떨어진 자신감을 되찾아줬다. 내 몸을 스스로 힘으로 달려 멀리까지 데려다 놓을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기록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멀리 뛰어갈 수 있는 게 좋았다. 친구와 5km를 뛰어가서 짬뽕 한 그릇을 먹고 5km를 뛰어 돌아왔다. 뛰어갔던 거리만큼은 내 구역이 되는 기분이었다. 근력운동을 친구와 함께 시작하고 1년 정도 지속했었다. 근력운동에서 운동의 효능감을 극적으로 느꼈다. 맥주 한 모금을 마셔도 얼굴이 빨개지고 술자리에서 꾸벅꾸벅 졸아 같이 어울리자고 마시는 술이 오히려 자리를 방해하는 꼴이었다. 그랬던 내가 언젠가부터 술을 마셔도 취하지 않았다. 맥주 한 잔을 다 마셨는데 끄떡없으니 함께 어울리던 이들이 모두 놀랐다. 나중엔 재밌어서 남들 다 맥주를 마실 때 따로 소주를 시켜 먹기도 했다. 딱 3잔을 마시고 남은 술병은 주머니에 넣어왔다. 근육량이 중요하다는 게 뭔지 알게 되었다. 한 겨울에도 달리기 하고 온 날은 오전에 반팔을 입고 지내야 한다. 몸에 열이 나기 때문이다. 겨울 산행을 앞두고 영하의 날씨에 맞게 복장을 갖추면서 달리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몸에 열을 나게 하는 방법으로 달리기 만큼 좋은 게 없다. 곧 다가올 완경과 갱년기를 염두해 저축하는 마음으로 근력운동을 놓지 않는다. 적금 넣듯 근육을 저축한다. 이 근육으로 내 힘으로 수저를 들 수 있고, 손을 뻗어 물을 마실 수 있다. 이 힘이 간절히 필요할 날이 나에게도 곧 올 것이다. 


운동도 구력이 붙는지 요샌 재밌게 운동한다. 이사 와서 같이 배드민턴을 하자는데 나는 안 한다고 했다. 공놀이는 자신이 없다. 그런데 친구와 같이 헬스 했을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같이 운동하는 게 얼마나 재밌는데! 게다가 생활리듬이 맞아 같이 운동할 수 있는 이들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그것도 이사 온 동네에서! 배드민턴은 예상보다 훨씬 더 재밌었다. 운동 효과도 40분 러닝머신 뛴 것만큼 땀 흘리며 뛰었다. 공을 치는 것은 눈과 뇌, 팔과 다리리의 협업을 계속 훈련하는 일이었다. 나이들 수록 떨어지는 기능이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남편은 물건을 놓칠 때마다 스스로 깜짝 놀라며 한숨을 내쉰다. 이제 내가 나이 들어갈 거라는 것도, 몸의 기능이 떨어질 것이라는 것도 받아들여진다. 그러니 더 운동을 놓지 않게 된다. 건강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기 위해서 말이다. 중년에 운동은 살기 위해 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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