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둘이 함께 받은 PT
동네 친구와 함께 PT를 시작했다. 친구는 첫째 육아휴직이 셋째까지 이어져 7년 만에 복직을 앞두고 있었다. 내가 다니던 수영장에 붙어있는 헬스장으로 다니기로 하고 3개월 PT를 등록했다. 금액이 다른 곳의 반이라 그런지 아파트 단지로 둘러 쌓인 초등학교에 붙어있는 입지 때문인지 오전만 이곳에서 수업한다는 코치의 수업시간은 빈자리가 거의 없었다. 2:1로 수업해도 가격은 1:1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수업 첫날, 체육관을 둘러보니 에어로빅 왔다가 화려한 솔이 달린 복장으로 러닝머신 뛰는 사람도 있고 헐렁한 운동복 입고 온 아저씨도 있었다. 코치는 붙는 옷을 입어야 근육 움직임이 잘 보여 수업 때는 타이트 한 옷을 권한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진지하게 거울 보며 근력운동 하고 있는 이들은 모두 위아래 쫄쫄이를 입고 있었다. 우리도 쫄쫄이를 입고 다음 수업부터 오기로 했다.
둘이 같이 배우지 않았으면 민망해서 수업 시간을 어떻게 보냈을까 싶다. 쫄쫄이 입고 체육관에 들어서는 것은 매우 어색했다. 둘이 서로를 보며 어색해하며 수업하는 장소로 향했다. 붙는 옷을 입으니 수업 때 확실히 '여기가 움직이는지 보세요' 할 때 도움이 되기는 했다. 한 명이 동작을 하고 쉬는 동안 다른 한 명이 동작을 했기 때문에 결국 각각 운동하는 시간은 1:1이나 2:1이나 비슷한 것 같았다. 오히려 등근육이 움직이는 걸 보거나 팔근육 중 '여기'를 보라고 가리킬 때 서로의 몸을 보며 이해하니 쉬웠다. "어깨가 솟았네요, 라운드 숄더도 있고요, 미는 힘이 약하네요, 당기는 힘은 좋네요"라는 말을 들을 땐 비교할 몸이 있어 쉽게 이해됐다. 둘 다 공부했던 몸이라 어깨가 솟아 있고 가슴이 나오며 움츠리고 다녀서 인지 라운드 숄더된 게 비슷했다. 이제라도 내 두 어깨와 등을 쫙 쫙 펴리라!
코치는 간단한 식단 가이드를 카톡으로 보내주었고 근육 운동을 하는 월, 수, 금 이후에 40분씩 러닝머신을 뛰고, 수업이 없는 날도 와서 러닝머신을 뛸 것을 권했다. 그대로 운동하며 지키면 한 주에 0.4-5kg씩 빠질 거라고 예고한 식단은 아침에 계란 한 알과 사과 한 알을 먹고, 점심과 저녁은 한 끼는 샐러드에 단백질을 챙겨 먹고, 한 끼는 일반식에 밥만 반 공기로 줄여 먹는 것이었다. 점심과 저녁은 그날 상황 따라 배치하면 된다고 했다. 놀랍게도 우린 가이드 대로 매일 운동하고 식단을 지켜갔다! 아이들 어린이집 데려다주고 같이 운동하러 와서 그날의 운동을 소화하고 같이 장을 보러 가기도 했다. 운동하기 전에는 운동할 시간을 어떻게 내나 싶었는데 점점 운동하는 걸 중심으로 생활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수업 전엔 늘 몸무게를 재니 저녁 식사시간과 내용에 신경 쓰게 되고 다음 날 수업이 있는 날은 신경 쓰여 일찍 눕게 되는 식이었다. 운동만큼이나 잘 쉬고, 잘 먹고 특히 잘 자는 게 중요하다고 들은 터였다.
코치 말대로 식단하고 운동하니 몸무게가 하향곡선을 그려갔다. 운동 목표를 바른 자세로 잡아 일상 생활 하면서도 앉는 자세와 걷는 자세를 살폈다. 운동할 때는 거울로 어깨가 솟아있는지 살피고 일부로 한 번씩 내리려 했다. 자세에 신경 안 쓰고 걷다 보면 어느새 발의 바깥 날로만 디디며 걷고 있었다. 내 신발들이 왜 다 같은 곳만 닳는지 비밀이 풀리는 순간이었다. 러닝머신 위에서 뛸 때도 발바닥 전체로 딛는 걸 느끼며 뛰려 했다. 하지만 너무 뛰기 지루한 날엔 드라마를 보며 뛰었다. 친구가 재밌게 보는 스우파를 따라 보기도 했다. 그러면 시간이 훨씬 잘 가고 보던 프로그램이 안 끝나 조금 더 뛰기도 했다. 자세를 신경 쓰며 뛰는데 우선순위를 두었지만 너무 뛰기 싫은 날은 정신을 티브이에 팔면서라도 40분 시간을 채워 뛰었다.
수업 때 자세를 하나씩 배우며 "신중하게"라는 얘기를 가장 많이 들었다. 무게를 들어 올릴 때도, 내릴 때도 신중하게 하라는 얘기를 들으면 웃음이 났다. 겉으로 웃진 않았지만 신중하게 동작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이 어색하기도 하고 재밌기도 했다. 그리고 신중하게 하면 더 힘들었다. 스쿼트 자세를 따라 할 때도 신중하게 발 너비를 조정하고, 내려가는 방향을 신경 쓰고, 바른 자세인지 살피며 앉은 채 접힌 주름도 살폈다. 위로 올라오며 발바닥 전체로 누르는지 느끼며 신중하게 올라왔다. 코치가 어떨 땐 잘했다고 하고 어떨 땐 아니라고 하는지 신중하게 들으며 어딜 기준으로 얘기하는지 묻고 확인했다. 친구와 같이 하는 건 수업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수업이 끝나고 같이 얘기하다 보면 코치의 말들이 다시 이해되는 것들이 있었다. 친구와는 다른 일로 만났다가도 운동 수업 때 배운 것들을 다시 해보며 서로 자세를 봐주기도 했다. 쉬지 않고 운동 사이클을 둘이 열심히 돌려갔다.
그러는 사이 나는 몸무게가 빠질 만큼 빠졌다 싶어 느슨해 질까 하던 때였다. 이 정도면 되지 않나 싶어 주말에 식단 신경 안 쓰고 와서 여느 때와 같이 수업 시작 전에 몸무게를 재는 시간이었다. 앞서 체중게에 올라간 친구에게 코치가 "더 빼오셨네요" 하는 거 아닌가! 코치는 놀라워했고 나는 '아, 쟤 계속하네' 하며 짜증이 났다. 어쩔 수 없이 나도 다시 고삐를 쥐게 되었다. 이게 같이 운동하는 장점이지 한숨 푹 쉬면서. 그리고 수업이 끝나면 또 러닝머신 위로 올라가 같이 따로 뛰었다. 다음날 이면 아이들 등원시키고 둘이 운동하러 오고 반복하는 사이에 친구의 복직 일이 다가왔다. 기간이 정해져 있다는 것은 확실히 집중력을 높여주는 요인이었다. 7년 만에 복직을 앞둔 친구가 이제 일터와 아이 셋 육아를 병행해야 하기 위해 몸을 잘 만들어 놓는 흐름을 내가 끊을 순 없었다. 오늘은 정말 하기 싫구나, 하는 날도 나가 운동하러 가고 오늘은 정말 뛰기 싫구나, 하는 날도 체육관에 가서 러닝머신에 올라갔다.
3개월이 지나갔다. 코치는 이렇게 열심히 운동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며 수고했다고 했다. 나도 이렇게 열심히 운동해 본 적이 없다. 직접 해보니, 함께 운동한다는 건 이렇게나 즐거운 일인데 왜 이제야 알게 된 걸까? 여중, 여고를 다니며 체육시간 말고 따로 운동한 기억이 없다. 운동을 하지 않았으니 함께 운동한 기억도 없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그나마 재밌게 운동한 건 피구 정도 일 텐데 운동 강도나 지속력에서 비할 게 아니었다. 함께 하는 운동은 효과도 좋았지만 사람을 사귀고 알아가는 괜찮은 방법이기도 했다. 운동을 함께 하지 않았다면 친구를 이렇게 까지 잘 알지는 못했을 것 같다. 몸 상태를 코치와 함께 얘기해 가고 개선해 가면서 우리는 서로의 몸에 대해서, 몸에 담긴 서로의 역사에 대해 이해하게 되었다. 몸은 그 사람의 살아온 세월이 담겨 있다. 오랜 공부로 솟은 어깨, 아이 셋 육아하는 동안 비뚤어진 골반, 셋째 수유하며 휜 허리 같은 것들 말이다. 그리고 러닝머신 시간을 견디기 위해 본 프로그램들을 통해 서로의 드라마와 예능 취향도 알게 되었다. 나눌 이야기는 더 많아졌고 공통의 화재거리도 늘어났다.
친절한 코치님은 친구가 복직하고 체육관에 못 와도 혼자 운동을 이어갈 수 있는 동작들로 구성해 알려주었다. 친구는 뜨겁게 3개월 운동을 마치고 복직해서 예상대로 힘든 해를 보냈다. 그러나 운동으로 몸을 만들고 시작해서 인지 아이 키우다 복직한 다른 친구들처럼 퇴근 후 집으로 출근을 이어가다 갑자기 입원했다는 소식이나 장기를 떼어냈다는 근황을 알려오는 일은 없었다. 다행이었다. 친구는 드물긴지만 체육관에 들려 근육운동을 이어갔고 자기 전에 꼭 프랭크를 하고 잔다고 했다. 나는 바른 자세를 몸에 더 붙여 놓고 싶어 PT를 한 번 더 연장했다. 친구와 함께 닦아놓은 운동길을 이제 혼자 고군분투하며 이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