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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나무 Dec 26. 2023

첫 마라톤 참가기

"마라톤 같이 하실래요?"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면 맞이하러 나와주는 이는 칸타다. 칸타는 둘째가 다니는 어린이집 보조교사인데 큰 아이가 다니던 초등대안학교의 교사였다. 큰아이를 교문까지 데려다주면 저 멀리서 칸타의 목소리가 들렸다. 칸타의 목소리는 커서 아이를 맞이하는 기쁨에 찬 목소리가 들리면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큰 아이는 쑥스러워하면서도 칸타의 맞이를 좋아했다. 둘째가 어린이집에 잘 들어간 날에는 현관에서 칸타와 가끔 안부를 주고받기도 했다. 오전에 어린이집에서 일하고 오후에는 그림책 수업을 준비하다는 것도 현관에서 나눈 대화로 알게 되었다. 나는 운동을 시작했다는 얘기와 달리기도 한다는 얘기를 했던 것 같다. 어느 날은 칸타가 마라톤을 신청했다고 하더니 같이 하자고 권했다. 


"그럴까요?" 카톡으로 마라톤 신청링크를 받았다. 대회 이름은 '서울오픈 마라톤'이다. 한강변을 따라 뛰는 코스다. 뛴다. 내가 나가도 되는 대회인가? 칸타는 5km를 신청했다고 하는데 나는 이왕 하는 거 10km를 해보고 싶다. 대회까지 참가하는데 평소 뛰는 것보다 조금 더 멀리 뛸 수 있게 연습해보고 싶다. 


대회를 신청해 놓으니 달리기 할 때 자세가 달라졌다. 신발끈을 묶을 때면 긴장감이 돌았다. 달리기 페이스를 어떻게 계산하는 건지 헷갈렸는데 대회를 앞두니 머리에 쏙 들어왔다. 10km를 뛰는 페이스가 7이면 70분이 걸린다는 거다. 한 시간 안에 들어오려면 페이스 6이 되도록 연습해야 한다. 내 페이스는 7 안으로 들어와 본 적이 없다. 이 실력으로 나가도 되나? 대회 요강을 보니 10km 시간제한은 90분이었다. 이 시간 안에 들어와야 기록을 재준다. 5km는 기록을 재주지 않았다. 칸타는 첫 참가라 5km만 해보겠다고 하고, 나는 고민 끝에 10km에 도전하기로 했다. 


집주소로 등번호와 대회 기록용 칩이 도착했다. 놀이동산 입구에서 주는 긴 끈형태인 칩을 신발끈에 묶고 달리라고 나와있었다. 집에서부터 등번호를 달고 칩도 제 위치에 잘 달고 나섰다. 마라톤 까막눈 둘이 각자 알아서 연습을 하고 대회장에서 만나기로 했다. 지하철 잠실나루역에 내려 대회장 방향 출구를 찾는데 사방에서 운동복을 입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난생처음 이렇게 운동복을 입은 사람들을 한꺼번에 본 적은 처음이다. 짧은 핫팬츠를 입은 사람도 있고 긴 바지 운동복을 입거나 타이즈를 신었다. 티셔츠는 춘천마라톤 참가 기념 티셔츠를 입은 사람도 있고 보스턴마라톤 기념티를 입은 사람도 봤다. 처음이라 몰랐는데 마라톤대회에서는 계절에 맞는 기념 티셔츠를 많이 주는 모양이었다. 기념품을 보고 대회를 참가하기도 해서 기념품이 좋은 대회는 마감이 빨랐다. 사방의 발걸음이 통통 거리는 듯했다. 운동화를 신고 대화장으로 향하는 모습에 활력이 넘친다. 대회장이 어딘지 물어볼 필요가 없다. 무리에 같이 휩쓸려 걸으면 되었다. 


대회장 입구에는 바람을 넣은 큰 아치문이 서 있다. 저 문이 출발지점이고 저 문을 통과해야 기록이 시작된다. 돌아올 때도 저 문을 통과해야 기록이 남겨진다. 그룹신청자들에게 배정된 대회 부스들이 양 옆에 길게 있다. 동네 크루들, 대학교 동아리, 직장인들이 티셔츠를 맞춰 입고 있다. 설렘과 즐거움이 곳곳에 즐비하다. 칸타와 나는 이 신세계가 신기해 두리번거렸다. 시작 시간이 다가오자 무대 위에 진행자가 올랐다. 마라톤 복장을 하고 마이크를 잡으신 분이 스트레칭 체조를 이끌어준다. 출발 순서는 풀코스, 하프, 10km, 5km 순이다. 빨간 모자를 쓴 페이스 메이커의 풍선에 쓰인 숫자를 확인하고 자기 목표에 맞게 따라가면 되었다. 페이스 6을 목표로 하는 사람은 6이라고 쓰여 있는 풍선을 따라 뛰면 된다. 자기 칩에 기록된 시작시간과 끝 시간으로 자기 페이스가 결정되니 앞서 가려 나설 필요도 없고 뒤에 간다고 걱정할 것도 없다. 스스로 자기 기록과의 싸움이었다. 


긴장이 고조되며 시계를 보고 있는데 신나는 노래가 울려 퍼졌다. 출발 준비를 맞춘 대열이 춤을 추기 시작한다. 웃음이 나며 긴장이 풀린다. 자유롭게 몸을 흔들고 있으니 축제에 온 것 같다. 마로톤은 축제구나! 분위기가 오를 대로 오르자 총소리와 함께 풀코스가 제일 먼저 출발했다. 간격을 조금 두고 다시 총소리와 함께 하프참가자들이 출발했다. 그다음이 내 차례다. "팡!" 10km 참가자들이 출발했다. 한강 따라 있는 2차로에 마라톤 참가자들이 한 차선을 차지하자 자전거들이 엉켰다. 운영요원들이 마라토너들이 다 지나갈 때까지 길을 막고 있어서 진입하려는 자전거 무리들이 쌓인 곳도 있다. 잘 기다리는 사람도 있지만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는 사람도 있다. 남은 한 차선으로 반대방향의 자전거들이 끊임없이 온다. 주차장으로 진입하는 구간을 건널 때는 차들이 빵빵거렸다. 마라토너들 대열이 살짝 벌어지면 운영요원의 저지봉을 무시하고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차도 있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달리다가 멈칫해야 하는 상황이 생겼다. 그래도 갈 길이 바쁜 참가자들은 이리저리 피하며 달렸다. 상황을 탓하고 멈출 시간이 없다. 1km 지점마다 입간판이 서 있어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 있었다. 2.5km 지나니 5km 참가자들은 벌써 반환해야 했다. 5km 반환점을 넘으니 돌아갈 길만 남았다. 떼로 달리니 훨씬 덜 힘들었다. 같이 가던 사람이 뒤로 처지기도 하고 내가 뒤로 처지기도 하고, 먼저 갔던 사람이 쉬고 있어 앞서나가게도 되었다. 반환점에 음수대가 있었다. 물이 반쯤 채워진 컵 하나를 집어 입만 살짝 축였다. 다 마신 종이컵을 상자에 던져 넣는데 마라토너 느낌 제대로 났다. 


출발지점 아치문으로 돌아왔다. 통과 시간을 재니 페이스는 6. 대가 나왔다. 페이스 7 안으로 찍은 적이 없는데 신기록이다. 대회빨이 있었다. 칸타는 5km는 너무 빨리 끝났다며 다음에는 10km에 참가하겠다고 선언했다. 운영부스로 가니 참가자 모두에게 참가 코스별로 매달과 간식을 주었다. 간식 봉지에는 바나나, 빵, 음료수가 들어 있었다. 하나씩 입 안에서 녹아 사라져 갔다. 칸타와 한쪽에 앉아 끊임없이 들어오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풀코스 참가자들이 들어오는 모습을 보니 체형만 봐도 풀코스 참가자인지 알아볼 수 있었다. 하나같이 말근육에 군살이라고는 없었다. 대회 수상도 봤다. 1위 기록을 보니 나의 딱 반이었다. 10km를 30분 초반대에 들어와야 수상권에 들 수 있었다. 세상에는 달리기를 이렇게 빨리 하는 사람도 있구나! 평소라면 뒹굴거리고 있을 일요일 아침, 잠시 맛본 달리기 세상은 어마어마했다. 나도 어울려 신나게 놀고 꿈인가 생시인가 하며 돌아왔다. 또 다녀오고 싶다. 언젠가는 말근육들과도 나란히 뛰어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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