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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해(Confession)

Letter from the Quiet Spectrum

by AwakendEveNetwork
※ 추천 음악 : A Shadow's Lament - Pianza

Letter from the Quiet Spectrum

고해(Confession)

이 글은 내면의 고통과 자기 성찰, 그리고 용서에 대한 강도 높은 정서적 흐름을 담고 있습니다.

최근 마음이 지친 독자라면, 충분히 쉰 후에 천천히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아무도 단죄하고 싶지 않을 때,
나는 나를 단죄했다.


나는 나를 사랑하지 못하더라도,
너만큼은 너를 사랑할 수 있기를.




세상을 향해 쏘던 나의 화살통이 전부 비워졌을 때,


나는 비로소 활을 내려놓고, 거울 속의 나를 마주할 수 있었다.


너를 위한 것이다.외쳤던 나의 화살은
나의 오만과 무지에 기반한 무책임이었을 뿐이었고,


내가 믿었던 ‘신념’과 ‘확신’이
사실은, 방향이 옳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에는 —


그토록 나를 강하게 지지할 줄 알았던 나의 두 다리는
스스로 무너져, ‘절망’ 깊은 동굴 로 숨어버리듯

기어가 버리고 말았다.





기어가는 걸음걸음마다,


내가 살아 숨쉰다는 사실


오히려 수치로 물들어갔다.


나의 얼굴은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어,


눈앞의 진리에 닿을 수가 없었다.





대신 바닥에 비친 나의 일그러진 얼굴이,


그리고 나를 바라보는 너의 얼굴만이,


진실만을 보여줄 뿐이었다.





세상을 향했던 원망이,

사실은 나의 약함 때문이었음을.


내가 소중한 것을 잃었던 이유는,
사실은 나의 불완전함 때문이었음을.


타인을 향해 소리치던 내 모습은,
사실은 나 자신을 향한 분노였음을.


내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
내가 결코 되고 싶지 않았던 모습으로 남겨졌다는,


내가 마주한 진실은 —


못내, 나 자신마저 살고 싶지 않게 만드는

절망이라는 어둠 으로 깊숙이 들어가게 만들었다.






지옥은,
죽어야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지옥은,
내가 나를 비로소 단죄할 때에 들어가는 곳이었다.


나는, 내가 그동안 정성스레 쌓아올린 —

함부로 들어올 수도, 나갈 수도 없는
높고 두터운 벽으로 둘러싸인 감옥 안에서,


나의 기대, 나의 신념, 나의 확신
그동안 얼마나 견고한 것이었던가.



그것들이 마치 오래전부터

나를 기다렸다는 듯,


층층이 마중 나와
결국 나를, 내가 만든 감옥 안에 가두었다.






그 감옥 안에서 —


죄의 무게는 척추를 따라 곱게 뒤틀리고,
오장육부는 끓는 용암처럼 천천히 녹아내렸으며
이빨은 하나둘 깨져버려,
아무것도 씹지 못하는 이가 되었다.


그러나 —
잿빛처럼 무너진 육체 속에서
오히려 맑아진 내 정신은 —


뼈에 시리는 고통 끝에서
한 줄기, 벗겨진 진심을 드러내었다.





“나는 나를 사랑하지 못하더라도,
너만큼은 너를 사랑할 수 있기를.”





내가 너에게 준 사랑이,
이해하지 못한 사랑이었음을 용서해주길.


내가 너에게 준 사랑이,
사실은 절망이었다는 사실을 용서해주길.


나의 사랑이,
너에게 닿기에 너무 어리숙했음을 용서해주길.


내가 사실은 너를 지키고 싶었지만,

지킬 줄 몰랐던 —
무지와 오만으로 가득했던 나였음을
용서해주길.







그렇게 나는,
아무도 단죄하지 않을 때
나를 단죄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만든, 나를 위한 지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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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명하는 인류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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