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 대잔치 인간관계 대파티
베트남에 다녀오고, 운전면허도 끝나갈 즈음. 나는 휴식기에만 할 수 있는 또 다른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망가진 인간관계 회복 프로젝트
새벽 1시 전시장 뒷 편에서 울면서 퇴사를 말한 날부터 나는 그 동안의 일상을 돌아보기 시작했고 그제서야 깨달은 것 중 하나는 내가 사람을 피하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사람 만나는 것도 좋아하고 술자리 분위기도 좋아했었는데 어느 순간 모든 약속들에 안나가거나 약속을 잡지도 않고 있었다. 스트레스와 피로감으로 인한 홧병과 우울증이 모든 약속을 기피하게 만들었다는 걸 그제야 깨닫다니. 근데 아마 나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모른 척했을 뿐. 날카롭고 우울하고 화가 많았기에 약속에 나가서 즐겁게 놀 자신이 없었다. 나 스스로가 무거우니 타인의 즐거움을 즐겁게 받아들일 자신도 타인의 아픔을 위로해줄 자신도 없었기에 아예 그럴만한 상황들을 피해버렸다. 집에 혼자 있는게 가장 편했고 잠을 푹 못자니 매사에 예민했다. 그렇게 퇴사를 하기까지도 인간관계를 끊고 살았었다.
그러나 퇴사는 만병통치약이라고 했던가. 3월 1일 퇴사와 함께 마음과 몸의 여유를 되찾자 다시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졌다. 미루고 미뤘던 약속들, 나가지 않던 모임 사람들에게 '자유 퇴사인'이 되었다고 연락을 돌리기 시작했다. 소심한 나는 혹시 사람들이 날 싫어하거나 안만난다고 하면 어쩌지 싶었지만, 다행히 그리 나쁘지 않게 살아왔던 건지 미뤄뒀던 약속들을 하나 둘 잡아나갈 수 있었다. 문제는 다른데 있었다. 바로 나의 '체력'
백수가 약속을 잡을 때 문제점이 무엇이냐..하면은 나의 스케쥴보다 회사를 다니고 있는 타인의 스케쥴이 우선시 된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선약이 있거나 모두가 이해할 만 한 큰 일이 있지 않는 이상 백수는 '그 날짜 말고!'라고 할 발언권이 매우 약해진다. 그러다보니 주 2~3회는 기본, 주말 내내 집들이 스케쥴이 잡히는 엄청난 일정이 나오고야 말았다. 아무리 쉬고 있다고는 하지만 내가 과연 저 스케쥴을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도 E는 E였던지라.. 사람들을 만나는 일은 생각보다 더 기분이 좋았다. 못다했던 이야기들, 새로운 이야기들을 들으며 '그 시간동안 나만 힘들었던 건 아니구나' 싶었다. 나이가 들수록 마냥 즐거운 일보다는 고민거리가 더 많아져 갔고, 세상에 괜찮은 회사는 없다는 걸 깨달았다. 수능과 취업이 인생의 최대 고비인 줄 알았던 친구들은 어느덧 정답 없는 고민들과 마주하고 있었고 그렇게 나와 너의 답없는 고민을 웃고 떠드는 자리가 끝나고 나면 위로가 남았다.
그렇게 한 2주쯤 지나니까 걱정하던대로 체력이 부족하기 시작했다. 출퇴근을 하는 것도 아닌데 술자리가 늦어지면 졸렸다. (하품하면 왜 하냐고 물어봄.. 백수도 피곤해...) 점점 늘어가는 하품을 참아가다가 하이라이트 주간을 맞이하게 되는데....
토요일 전 직장 언니들 집들이, 일요일 대학동기 집들이. 요리가 취미인 나는 집들이를 하면 내가 음식을 하곤하는데 2일치 음식을 준비하는 일은 죽음이었다. 닭다리 구이, 파스타, 짬뽕탕과 수육... 어째 다들 손도 많이가는 음식만 했다. 요리에는 요리과정만 있는게 아니다. 메뉴 구상부터 재료 준비와 손질 그리고 상차림과 설거지까지..... 어째 약속시간보다 그 앞뒤가 더 힘들었다. 그래도 만족스러웠던 집들이 한 상 대공개!
저 집들이를 마지막으로 쓰러졌다. 사전적 의미 그대로 쓰러졌다. 온몸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아팠다. 운동하는 것보다 더 힘들었다. 정신적 행복감은 충족이 됐는데 육체적 피로감이 비례해서 쌓였다. 기절해서 잠들고 일어나 멍하니 티비를 보는데 문득 이게 평안하다는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딱히 고민도 걱정도 없는 일상에 좋은 사람들과 만나서 술 한잔 하는 일. 다시 취업을 한다면 느낄 수 없는 시간이겠지.
다시 취업을 하더라도 조금은 평안하게 사람들 만나면서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는 시간이었다. (다시 스포하지만 놀랍게도 바로 다음 회사에서 이 다짐 무너졌음. 대체 무슨 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