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인시 Oct 20. 2021

이제 내 스윙도 조금 낫다

      가만히 보고 있냐고!” 

 

    처음 미국에서 사귄 친구들과 함께 점심을 먹다가 마음에 드는 남자아이가 있는지 궁금하다고 했다유난히 날렵하게 체육시간에 운동장을 뛰는 모습이 언제 봐도 질리지 않던 아이가 문득 생각났다. 

찰리? 걔 귀여워” 

며칠 후 체육시간이 되었다. 친구들과의 대화가 있어서였는지 유난히 그 아이가 더 눈에 들어오는 날이었다. 그날은 발리볼인지 풋볼인지를 했고, 이런 스포츠를 해야 할 때면 최대한 남들 눈에 띄지 않으며 시간은 어물쩡 넘어가 주기를 바랐다. 

그때였다. “  가만히 보고 있냐고!” 제대로 수비든 공격이든 하지 못한 내게 찰리가 소리를 질렀다. 공보다 빠르고 무섭게 날아드는 소리에 그만 쪼그라들어버렸다


    스포츠는 아니라도 운동을 하긴 했다 당시에는 치어리딩마음에 드는 애가 있냐 했던  무리도 같은 팀이다 보니 친해졌다치어리딩 트라이아웃을 겁도 없이 도전한 것은 친구를 사귀려면 운동을 해야 한다고 했고 무엇보다 구기종목이 아니면 된다는 생각이었다마침 그때 눈에  기회였다어릴 적부터 공이 날아오거나 누구를 향해 공을 던지는 것이 무서웠다타고난 스포츠맨십이 없었기에 그것은 공에 맞거나 공으로 맞추는 것이라 여겼다올해까지 공이 있는 스포츠는  번도 참여하거나 배우지 않았다요가발레각종 댄스를 꾸준히 배우며 몸을 사용하는 것을 꺼려하지 않았음에도


    골프 배울래실력이 늘면 같이 치면 얼마나 좋겠니” 

열여덟  한 번그리고 올해  그렇게  번을 아빠가 권하고 엄마도 반색하던 골프 배우기가 올해가 돼서야 시작됐다공이 날아오는 운동이 아니니 해볼 만도 했다그런데 의외의 복병공을 제대로 맞추지조차 못할  땅을 클럽으로 내려치곤 했는데 그때마다 나는  소리에  쪼그라들었다

또 하나.  소리에 남들이 놀라면 어쩌지했다거의  달 동안 클럽을 크게 들었다가도  바로 앞에서 속도를 늦추는 엉뚱한 행동을 했다 모습이 답답했던지선생님은 ‘싸가지 없게’ 클럽을 들어서 ‘에라 모르겠다!’ 하며 내려와 던져버리라고 했다앞뒤로 연습하는 사람들의 거침없고 유연한 몸짓을 보면서 내일을 기약했다늘지를 않으니 포기하려다가도 우선 와서 하다 보면 해지고참고어느 순간부턴가 공이 맞기 시작하고 겁이 줄어들기 시작하면서 골프가 재미있었다미국의  심리학자가 재정의 했다는 ‘몰입 개념  자체였다수행하는 활동에 전적으로 빠져들어 자아가 사라지며 시간이  깜짝할 새에 흘러가는 정신 상태라 했다골프 연습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나서는 머릿속에 아무 생각이 없고 어느새  시간이 지나있는 것이다처음에 연습장에 나가기 시작했을 때는 삼십 분도 채우기 버거워서 남들이 시간 연장하는 것이 신기했는데요즘에 와서는 연습시간이 거의 끝이 났는데 ‘요걸 살려서 조금만  연습했으면’ 할 때가 있어 두어 번 시간연장까지 해보았다아침산책을 갔다가 간단한 업무를   연습장에 가는데가끔은 업무에 대한 고민이나 의뢰인과의 대화가  끝나서 잡생각이 많다가도 장갑을 끼고 공을   맞추면  뒤로는 몸이 알아서 한다맑고 유쾌한 정신이 남는다.

    그뿐이랴. 생산성도 올리고 소원했던 사이도 잇는다골프 말고도  가지 취미 강습을 듣는데 이들을 전후로 업무 생산성이 오른다 (물론 하루에  번인 개들과의 산책만 한 것이 없긴 하다). 이만큼은 끝내고  것이라는 마음이 발동하는 것이다. ‘게으른 손은 악마의 작업장이다라고 하지 않았던가특히 친구와 함께 연습을 하기로  날은 시간관리에 더욱 탄력이 오른다유학  대학시절을  친구와 함께 보냈다졸업  한국에 오고는 일을 시작하고 어울리는 무리도 달라지다 보니 다시 말을 걸었을 때는  친구와 마지막으로 대화한 것이 이삼 년도  됐더라시간이 지나서   말도 없을 뻔했는데 같은 운동을 하며 관심사를 공유하고 연습도 하다 보니 가끔  시절을 함께 떠올리면서 함께 웃게도 되었다. 한편 골프를 배우도록 권했던 가족과는 열정적으로 대화할 이야깃거리가 또 하나 늘었다.

    여기에 하나를 보태고 싶다. 바로 자연스러운 만남이다. 혼자 살면서 사교에 대한 갈망을 느끼기도 한다. 한편 무너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정해둔 일과는 최대한 지키려 한다. 자연스레 일상에 함께 머무르는 자가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속을 잡고 일정을 미루지 않아도 되는 만남. 함께 연습장에 다니는 친구와의 짧지만 잦은 만남이 유독 즐거운 것은 아마 그런 바람까지도 충족되어서일 것이다. 매일을 공유하는 만남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으며 사교의 양보다는 질에 더욱 집중하게 된다.                                                          

초보인 내게 친절하게 많은 것을 알려주는 친구와 해줄 것이 빵 사주는 것밖에 없는 나


    나는 전히 연습장에서 앞뒤를 힐끔거리며 나은 내일을 기약한다. 그래도 이제 내 스윙도 조금 낫다. 이것은 나에게 생소한 것이다. 못 하는 것에 도전한 적이 없어서다. 어린 시절 나와 가장 친했던 한 친구는 웬만한 체육종목은 쉽게도 해냈다. 운동회 때가 오면 그 친구는 계주를 도맡고 트랙을 뛰었고, 나는 그 모습이 자랑스럽고 감격스러워서 목이 터져라 응원하면서 응원 만을 그저 내 몫으로 여겼다. 


    골프를 배우고 나니 공이 있는 스포츠도 배워볼 만하다 싶다농구공을 샀다. 산책하며 봐 둔 동네의 한 골대에서 농구공을 던져보았다서른이 넘어서야 드디어 해보았다던졌다 들어간다 다섯 들어갔다

이전 04화 집은 메타포, 집안일은 명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