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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인시 Sep 29. 2021

탄탄한 열 개의 다리가 10km를 걸어내자 해는 저물고

30대 독거 여성이 미련 없이 잠 드는 법

 


    “체이스가 얼굴이랑 팔다리는 마르고 늘씬한데 힘은 무지 좋대요?”


    동물병원 진료를 마치고 수납을 하고 나오는데 직원이 말했다. 나와 함께 사는 개 두 마리는 모두 힘이 좋다. 비결은 하루 세 번, 도합 10km 정도 거리의 산책이다. 이 개가 걷는 뒷태를 바라본다. 다리는 탄탄한 근육질이고 네 발로 탕탕 경쾌하게 땅을 밀어낼 때마다 잔근육이 비친다. 옆에서 걷는 다른 개는 또 어떠한가. 떡 벌어지게 타고난 몸에다 인공으로 조성된 길 위로만 걸으려하는 체이스와는 달리 풀이 우거진 오르막 길을 거침없이 밟는다. 좋아하는 것이 다른 두 개 모두가 만족하는 산책길에 보태고자 앞뒤를 분주히 살핀다. 사람이나 차가 오가지 않을 때를 보고 줄을 넉넉히 잡는다. 어느새 하나는 닦아놓은 길로, 다른 하나는 길 옆으로 무성한 수풀 속으로 몸이 반쯤 잠긴 채 헤치며 걸어가고 있다. 이 광경이 우습고, 다른 개성을 가진 둘이 사랑스운 마음에 그 뒷모습을 카메라로 담는다. 


비결은 하루 세 번, 도합 10km 정도 거리의 산책이다


    아침산책은 일출 전에 나가 해가 뜨는 것을 보고 들어온다. 두 개들은 눈을 뜨는 동시에 몸풀기까지 마치는지 궁둥이를 들썩들썩 거리고 바닥에 킁킁 대면서 나를 잡아 이끈다. 또 어떤 날은 내가 앞선다. 타닥타닥 타박타박 아스팔트를 밟으면 하늘부터 본다. 하늘은 밤처럼 캄캄한 까망이 아니고 남색이다. 새벽 날씨는 다 엇비슷해서 그것으로 그날 날씨를 짐작하기는 어렵다. 조금 걷다 보면 멀리서 해가 오르는지 점차 하늘색이 바뀐다. 하늘이 유난히 주홍빛인 날이 있다. 그런 날은 한낮에도 해가 바짝 뜨지 않고 구름에 가리는 날인 경우가 많다. 


    산책은 끼니처럼 내 일과에 리듬을 준다. 지루할 틈이 없다. 아침산책을 다녀오면 간단한 청소와 샤워 후 오전에 할 일을 한다. 그리고는 점심을 먹는다. 두번째 산책 후 또 할 일을 하고, 이런 흐름은 마지막 산책 전후에도 비슷하다. 이렇게 하루를 보내고 나면 잠이 잘 온다. 한편 정해진 일과로 지내다보면 가끔은 종종 짧은 권태나 불안 같은 것들—특히 자기 전—이 찾아온다. 막연한 생각이고, ‘이렇게 살아도 될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영원히 지낼 수 있다면 바랄 것이 없다’하는 생각도 동시에 드는 것이 요상하다. 두 가지의 미래를 모두 펼쳐본다. 탁. 

    얼마 지나지 않아 잠이 온다. 세 번의 산책과 오늘의 일과에 모든 활력을 쏟았기 때문이다. 권태는 짧게 머문다. 


    나는 산책하며 매일 다른 것을 본다. 날씨가 매일 다르고, 몸의 상태도 그렇다. 매일 다른 사람들을 보고 새로운 곳을 탐험하기도 한다. 또 익숙한 산책로를 지나도 날마다 상황이 다르다. 어떤 날은 멀리서도 한 눈에 띄는 푸르고 큰 사마귀를 본다.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져 두 개와 운동화며 다리에 흙탕물이 튀도록 뛰기도 한다. 놀라운 순간들을 만난다. 지루할 틈이 없다. 


    두 마리 개들의 탄탄한 다리만큼, 산책은 내 마음도 길들여왔나싶다. 한껏 달린 하루의 끝에 어느샌가 어둠이 가득 찬다. 내 작은 방에 깃든 어둠이 가져다주는 휴식을 온몸으로 맞이한다. 두 개와 내가 미련없이 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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