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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인시 Oct 10. 2021

아크릴 상자에 갇힌 여섯에게

내 하루를 채우는 또 다른 것을 만나다.

먼지가 쌓이지는 않았을지

    무엇보다 잠들 수 있게 도와주었습니다. 잠을 못 드는 것은 머릿속에 생각이 많을 때인데, 억지로라도 가만히 따라가다가도 그것을 내팽개치고 자고 있더란 말입니다. 아, 침대에 누워 전화기 화면을 눈이 빠지도록 보고 있는 날도 잠이 안 옵니다. 그런데 '이것'을 안 이후로는 눈을 감아버릴 수 있고 그러다 보면 잠에 빠져들 수 있었습니다. 이게 뭐냐면 오디오북입니다. 이것도 ‘북’입니다. 끔찍이 아껴서 닳기라도 할까 봐 여섯 당신을 아크릴 박스에 넣어서 처음 보관할 때만 해도 오디오북은 별로 듣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건 독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거부감까지 들었거든요.

 

단순노동을 할 때 오디오북을 들으면 일 하는 내내 즐겁기 때문에 그 시간을 기다리기까지 합니다. 성우의 목소리나 배경음악이나 효과음이 더해져 집안이 흥미로운 소리로 가득 차고, 그럴수록 집중하게 되는 것입니다. 집안을 소리로 채우면 덜 외롭다는 어떤 연구가 있던데 나는 창문만 열어놓아도 기분전환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도 오디오북이 좀 더 낫습니다. 문학 속에 많은 이야기와 사람들이 있는데 과연 도서관은 인류의 일기장이라는 비유가 적절합니다.

퇴계 이황 선생께서 책을 읽는데 어찌 장소를 가릴쏘냐 하셨답니다. 그분의 비법을 다 알 수 없지마는 내 나름대로 그렇게 생각할만합니다. 샤워를 할 때도 책을 듣습니다. 생각을 하고 싶을 때는 일부러 끄기도 합지만, 원하면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종이책도, 오디오북을 재생하는 전자기기도 물에 닿아서는 안될진대 오디오북은 틀어두면 페이지를 넘길 필요도 없고, 소리가 욕실 안에 퍼지니 물 묻히지 않고 잘 듣고 있습니다. 


오디오북으로는 주로 문학을 듣습니다. 오디오북이 되는 책들이 주로 문학인가 봅니다. 종이책으로는 비문학만 읽어왔는데 오디오북은 그게 많이 없어요. 까탈스럽게 굴면 아무것도 못 듣게 되어 그래도 마음이 가는 것을 골라 듣기 시작했고 이제는 문학에 제법 재미가 붙어요. 그래서 유명 서점에 갔더니 문학 섹션에 발길이 가기도 하고, 아는 책을 여러 권 만나기도 하고요. 

 

여섯 당신들을 덜 아끼게 된 것은 아니고요, 그런 것이 있더란 말입니다. 아직도 여섯 당신과 같은 종이책을 사거나 대출하기 위해서 서점으로 도서관을 다닙니다. 가는 길에 오디오북을 듣기는 하지만. 

이것을 쓰면서 아크릴 상자 위로 먼지가 쌓이지 않았나 궁금합니다. 오늘 한번 확인하고 먼지가 쌓였다면 떨어낼 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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