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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인시 Oct 23. 2021

요단강의 얼굴

프리랜싱 에피소드

           <최종본 잘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추가로 더 송금해 드렸는데요, 맛있는 식사 하시며 그동안의 피로를 푸셨으면 좋겠습니다.>

    이 일은 맡지 않으려고 했다. 복음서를 다뤄본 경험이 없었고, 무엇보다 성경의 문체나 어법 그리고 심오한 종교 용어나 맥락을 파악하는 작업만도 얼마나 걸릴지 가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그 복음서에 대한 편집 작업을 끝내자마자 재의뢰로서 번역을 제의 받은 터라 전 작업을 통해 프로젝트와 친숙한 내가 맡는다면 여러모로 의뢰인에게 수월할 것이었다. 한편 재의뢰를 받으면 마음이 약해져서 상대방의 요구에 맞춰주지 않고는 못 배기겠다. 전 작업을 마친 후 상대가, ‘이것도 가능할까요?’ 하면 핵심 분야가 아니더라도 기본기를 갖춘 분야라면 노력과 조사를 더해 해내자는 주의다. 또 한 번 일을 맡겨주는 상대에 대한 고마움과 전 작업에서 얻은 일의 방향이나 방식에 대한 확신이 있어서다. 그럼에도 선뜻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케이.’ 불현듯 떠올랐다. 요단강을 건널 때 옆에 나란히 걷던 친구. 사역자 케이. 성경 지식이 아예 없지는 않고, 난 케이의 친구니까 할 수 있는 일이다.

<하겠습니다.>


    복음서를 몇 권을 구해 훑어본 후 작업을 시작했다. 참고자료를 잔뜩 펼쳐놓고 한 줄 한 줄을 해치우며 내려갔다. 그리고 이 구절에 다랐다.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지팡이를 내밀어 홍해를 갈랐듯, 여호수아도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로 하여금 요단강 물을 밟게 하여 강을 갈랐습니다. (…) 이스라엘 백성은 항상 물이 넘치던 요단강 가운데를 마른땅 같이 건너갔습니다.’

    홍해, 요단강, 이스라엘… 케이가 보고 싶어 요르단에 잠깐 머물렀다. 뜨거운 태양에 달구어진 홍해 물에 몸을 담갔고, 예수님이 세례 받은 바로 그곳이라는 요단강을 케이와 건너며 “언니, 저 건너편이 이스라엘이에요.” 하기에 의외로 얕고 폭도 좁은 요단강을 내려다보던 고개를 들어 강 건너를 바라봤다. 길고 하얀 천을 몸에 두른 사람들이 물속에 풍덩풍덩 빠지고 있던 광경. 몇 년을 대화 없이 지냈던 친구와의 기억이 되살아나면서 복음서 구절 속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강’을 ‘마른땅같이’ 지나는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래, 이 프로젝트를 끝내고 꼭 케이에게 안부를 묻겠다. 다짐했다.


    케이는 그녀의 어머니의 자존심이었다. 작은 눈구멍에 유달리 큰 검은자위가 빛이 나서 똑 부러져 보였으며 눈꼬리는 살짝 쳐져있어 웃을 때면 강아지처럼 귀엽다. 차림새나 말투에서 보이는 예술가적 면모가 있어 자유분방해 보이는 첫인상의 아이였다. 알고 보니 그녀는 술 한 방울 입에 대지 않고, 독립적이며, 철저했다. 어린 시절부터 반장을 도맡아 하고 성적도 좋았다고 했다. 영특한 어린 딸의 잠재력을 높게 산 어머니가 마음껏 흡수하고 펼치도록 그녀를 넓은 미국 땅으로 보냈다. 나는 그녀의 어머니를 여러 번 만났는데 온유하게 말하는 작은 여인이며 진한 눈썹을 가졌고 그것보다 진하게 강인함이 배어있었다. 요르단에서 함께 밥을 먹던 중 케이에게 물어보니 케이의 어머니는 이제 케이가 한국에 와서 가족들과 함께 지내기를 은근히 바라신다고 했다. 그분은 나를 볼 때마다 두 팔을 벌려 반겨주셨으며 가끔 반찬도 챙겨주셨다. 그런 기억이 남아서인지, 나는 케이가 매정하다고 느꼈다. 그 순간 마주 보고 있던 케이의 반짝이는 눈이, 내가 보기에, 처음의 타고난 것이나 알고 있던 순수함이 아닌 그녀를 사로잡은 열망이 언뜻언뜻 비치어 반짝이는 것으로 느껴졌다. 식사 내내 덤덤히 웃는 표정인 것도 그랬다. 그런 속내를 말하지는 않고, ‘나도 네가 얼른 한국에 와서 쭉 살았으면 좋겠어.’라는 말로 대신했다. 케이는 왜 좋은 학부에 입학해 상위권의 성적을 거두었는데도 그것을 활용하지 않고 있는지, 이것이 그녀에게 행복인지 의무인지 아니면 그 둘 다 인지, 그러하다면 어떤 생각을 통해 그렇게 받아들일 수 있었는지 따위의 생각들을 이어가며 말없이 저녁식사를 마쳤다. 그 후로 일주일쯤 지나 한국으로 돌아가는 나를 케이가 공항에서 배웅했고, 돌아가던 길에 비행기 스케줄이 예정보다 많이 지연된 것을 알고 다시 공항으로 돌아와 함께 커피를 마시고 돌아갔다.

    하루 종일 걸었으니 오늘은 맛있는 것을 먹자며 벼르었던 그날의 저녁식사보다 강렬했던 내 머릿속의 의문들은, 몇 년 뒤, 복음서를 번역하다 ‘요단강’ 구절에 다르자 알 수 없는 미안함과 비슷한 감정과 함께 다시 떠올랐다. 약 삼 주 간의 복음서 프로젝트 중 어느 때보다 집중하고 앞뒤 맥락을 단단히 잡아가며 성경을 읽었는데, 케이를 한번 떠올리기 생각하자 내내 그때의 케이의 눈과 내 의문들이 생각났다. 일이 끝날 때쯤에는 그녀의 마음을 알 것도 같았다. 없던 신앙심이 갑자기 생긴 것은 아니다. 다만 누구나 어떤 것을 추구하면서 살아갈진대 이것은 케이가 추구하는 바다. 그리고 성경의 모든 말이 어떤 방식으로라든 참말이라면 (케이와 많은 기독교인들이 그런 믿음 가운데 산다.) 케이가 하는 일보다 중요한 일이란 없을 것이다. 종교적 이념이란 생각해보려고 하면 숭고하고 거대해져 버려서 쉽게 와닿지 않는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비슷할까. 건강을 최고선으로 삼거나 봉사활동을 하거나 제로 웨이스트 같은 사회 캠페인에 동참하는 사람들의 신념과 그들이 마땅히 여기는 이론이 케이의 사역은 같은 것이라고. 나에게도 그런 여러 믿음과 이념들이 있다.


    더 얹어준 돈에 대해서. 작업 내내 우리는 서로를 존중했다. 손수 작성한 복음서를 직접 나에게 맡기고, 다른 어떤 이도 통하지 않고 교류를 해서일까. 그에게서 개척교회의 이미지 같은 것을 보았다. 또 그 의뢰인에게서는, 이제와 서야 어렴풋이 알 것만 같은 케이의 바로 그 이념 같은 것도 느껴졌다. 그 돈은 함부로 쓰여서는 안 되었다. 케이에게 부치기로 했다. 지금도 지구의 어디에 있을지 모를 그 친구에게 안부를 전하며 부치면 좋은 쓰임이 될 터였다.


<케이야 잘 지내지. 계좌번호 알려줘라!>

‘요단강’을 건너버린 줄 알았던 관계가 성경 구절의 ‘요단강’으로부터 다시 이어지는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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