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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아라 Jun 29. 2024

추억이 된 그림(1)

남산 캐리커처 

2년 전 엄마와 이모가 서울에 놀러 온 적이 있다. 까마득한 옛날 옛적 이야기 같은 코로나 팬데믹 시절, 실내에서는 마스크를 써야 했던 시기. 실내로 가기보다 실외가 좋을 것 같아 남산으로 두 분을 모시고 갔다. 


남대문 시장에서 사이좋게 두 분께 어울리는 모자도 사고, 옷도 샀다. 옷을 계산할 때는 이동상점 사장님께 이체를 했는데 예금주인 상점 사장님 이름이 엄마와 이모의 이름과 비슷해 세 분이서 한바탕 호탕하게 웃으며 반가워했다. 엄마는 하하하하 호탕하게 웃고, 이모는 수줍게 웃고. 지나고 나서 더 선명하게 기억나는 순간이다. 


남대문시장에서 이미 엄마의 다리 체력은 다 소진되어 남산타워까지는 남산케이블을 이용했다. 걷기 참 좋은 날씨였지만 이모 보다 엄마가 더 다리가 좋지 않았다. 평생 농사 일하며 조리원 일, 집안일 한 이모보다 예닐곱 어린 엄마가 다리가 더 좋지 않은 것은 왜일까 생각하기도 했더랬다. 


남산 팔각정에 도착하니 우리처럼 나들이 나온 사람들로 시끌 복작하였다. 서울 전경이 다 보이는 곳에서 인증샷도 찍고, 벤치에 앉아 사람 구경하며 아이스크림도 먹고 가려는데 엄마가 캐리커쳐 존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남산에 온 것도 기념인데 그림으로 남기자는 것이었다. 나는 캐리커쳐 그림 스타일을 좋아하지 않아 그려지고 싶지 않았지만 엄마와 이모가 같이 자매 그림으로 남기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 두 분을 앉히려고 했는데 이모는 한사코 거절을 하셨다. 엄마는 싫다는 이모는 놔두고 나보고 같이 그리자고 하여 얼떨결에 캠핑 의자에 30분 정도 앉았다. 


캐리커쳐 화가는 능숙하게 우리를 그려주었고 고급 액자까지 추가를 해주었다. 엄마는 조금 닮은 것 같지만 내가 나 같지 않은 그림 스타일은 뒤로 하고 화가가 들이는 스케치, 색감, 시간, 품에 비해 가격이 꽤 있어서 가성비가 절로 생각났지만 관광지에서 괜히 실랑이 벌이고 싶지 않아서 가격을 받아들였다. 정작 2년이 지난 지금 그 가격이 얼마인지 생각이 나지 않는 것은 참 다행이다. 


엄마는 이렇게 관광지에서 사진 대신 그림을 남긴 적은 처음이라고 하며 흡족해했고, 나는 그런 엄마를 보며 그리길 잘했다 생각했다. 이모가 같이 그렸으면 더 좋았겠는 아쉬움은 뒤로 했다. 


그렇게 남산에서 즐거운 한 때를 보내고 나중에 제주도에서도 이렇게 셋이 즐겁게 보내자고 다짐했었지만 1년 뒤 이모가 암 투병 중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고 나니 셋이서 제주도는 영영 갈 수 없게 되었다.  



엄마와 나의 이 캐리커쳐 그림을 볼 때마다 한사코 그리길 거부했던, 남산에서 전망 좋은 곳에서 자기를 찍어달라고 하던, 엄마와 만날 때면 밤새 수다를 떨며 웃고 우시던, 어릴 때 나를 챙겨주고 맛있는 음식을 해주셨던 나의 이모가 떠오른다. 


언젠가 엄마가 떠나고 나면 엄마와 이모와 함께 했던 남산에서 기억이 그림 안에서 자동 재생되겠지. 가격이 생각나지 않는 이 그림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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